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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링 Dec 10. 2021

후회


청설모는 외국 출장을 다녀온 터라  2번의 검사를 받아야 했다. 입국 당일에 받은 검사  일주일 뒤에 받는 pcr검사는 출근하기  보건소에 들러서 받고 바로 회사로  예정이었다. 아이는 학교에 갔고 나는 별일이 없는터라 청설모를 따라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동네가 아닌 다른 곳의 아침 공기다.

보건소 주차장이 작아서 우리는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이곳은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는 극장과 강의실이 같이 있는 곳이다. 강의장은 백신접종센터로 바뀌긴 했지만 극장에서 공연은 하고 있다


한 달 전 4단계가 풀렸을 때 나는 어린이 뮤지컬 예매를 했고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공연을 봤었다. 그날 공연이 끝나고 나서 극장 앞에 있는 예쁜 커피집에 들르고 싶었지만 셋이 앉을자리도 없고 아이와 함께 들어가기는 애매했다. 그리고 청설모는 이런 카페를 좋아하진 않는다. 코로나 시국에 어디를 들어가는 것도 무척 조심스러워하는 스타일…

그래도! 오늘은 이른 아침이라 커피집에 자리도 있고 우리 둘 뿐이니 짧더라도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근처에는 구청도 있고, 아트센터도 있으니 이른 아침에도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캐주얼 정장을 입고 목에 출입증 목걸이를 걸고 겉옷은 입지 않았다. 둘씩 셋씩 나와서 종종걸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커피를 들고 카페 밖으로 사라졌다.



카페에 앉아서 맞은편 아트센터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 공기와 분위기와 냄새가 좋았다.


부러웠다. 그들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미대를 안 갔을 텐데, 다른 전공을 했을 텐데,   열심히 내가 좋아하는  뭔지 고민하며 여러 직장에 이력서를  봤을 텐데, 무슨 일이든 내가 할 수 있든 없든 생각 안 하고 열심히 했을 텐데,  손으로 만드는  말고 다른 일을   기회와 시야가 있었을 텐데, 가지 못할 거라고 미리 겁먹지 말고 어디든 도전해봤을 텐데, 나는 특별하고 특별한 일을 할 거라는 생각을 안 했을 텐데,


지금의 내가 과거로 간다면 그렇게 해볼 텐데..



뚜뚜뚜..​

청설모 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사이 나는 남은 커피를 들이켠다. 테이크 아웃할걸 그랬나 고민하며 남은 커피를 바라본다. 그는 지금 가야 한다며, 어차피 회사 가는 방향이라 나를 집 앞에 내려준다고 한다. 나는 가는 길 아무 데나 내려달라고 했다. 걸어가겠다고.

집 근처 큰길에 나를 내려준 그는 마음이 안 좋았는지 십 분쯤 지난  전화를 했다. 나에게 아직도 집에 안 갔냐며 닦달하지만 그래서 전화한 게 아니란 건 안다.

(그리고 나는 집 앞 공원 화장실을 들렀을 뿐이다. 커피를 마시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


​​

이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위드 코로나가 되어 마스크를 벗게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던 아침. 2년 만에 해외출장을 다녀온 그는 이제 자주 출장을 가게   같다고 말하던 날이다. ​


지금은 다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런 희망은 사라졌다.

나는 지금 아이 온라인 수업을 위해 컴퓨터를 켜준 뒤 식탁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핸드폰에 알람이 울린다. 다음 주도 아이 학교는 원격수업이라고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세탁기가 균형이 안 맞아 에러가 났다. 통 안에 있는 이불을 다시 잘 펼친 후에 다시 작동 버튼을 누른 뒤 식탁에 앉았다.


​​


지금의 나는 그래서 ,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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