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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Jan 10. 2021

지독한 서울살이에 나도 지독해졌다.

21년 01월 03일



  나는 지독하다.


  이 혹독한 서울살이 끝에 나는 지독해졌다. 아마 지독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탈모 약도 먹기 시작했을 거다. 아마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라는 말은 그냥 만들어진 낭설이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만큼 지독해졌다. 지독한 서울 물가만큼 나도 지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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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얼마나 돈을 아끼고 있는가에 대해 말해준다면, 첫 번째로는 코이카 끝나고 부산에 있던 시절에 있었던 사건, '뱅크 샐러리 가계부 능욕 사건'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집에서 밥 먹고, 커피도 마시고, 취미도 근처 공원을 산책하거나, 지금은 말아먹은 영어 공부와 스페인어 공부를 했었다.  


  그렇다 보니 소비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 삶을 살았는데, 어찌나 돈을 안 썼는지 새로 깐 앱, 뱅크 샐러리에서는 나보고 이번 주에 600원 썼다고 주간 보고서로 알려주었다. 뱅크 샐러리는 나를 더 놀릴 작정이었는지, 하루에 약 85.7원 꼴로 사용했다는 조롱과 특별히 과소비를 한 날이 금요일, 그날에 평소와 달리 무려 거금 600원이나 썼다고 나의 무차별적인 과소비를 우려해주었다. 마지막은 평소보다 돈을 더 사용하셨네요라는 멘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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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지금의 서울 살이도 나의 자린고비 정신을 보여준다. 서울 올라와서 사용한 돈을 계산해 본 적이 있는데 주당 약 4만 원, 한 달에 16만 원을 쓴다는 계산이 나왔다. 물론 살인적인 서울 집값을 뺀 가격이긴 했지만, 그 돈으로 커피 마시고 밥 먹고 잠자고 심지어 치아 건강을 위해 꼬박꼬박 치실도 샀는데도 (뱅크 샐러리가 걱정해주던 600원 보다는 많지만), 그래도 단돈 16만 원을 썼다.


  혹자는 내가 라면만 먹고살거나, 하루에 부실한 한 끼만 먹고사는 게 아닐까 걱정할지 모르지만, 무려 매끼 고기반찬을 해 먹었다. 그 비밀은 시장에 있다. 먼저, 우리 동네 대조시장을 샅샅이 뒤져서 야채 싼 곳을 다 꿰고 있다. 그래서 이제 내 얼굴을 알아보는 곳들도 생겼다. 내가 다가가면 멀리서 이미 큰 봉지에 대파와 양파를 담고 계신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자주 가는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뒷다리살 1근에 2000원에 잔뜩 사 온다. 그리고 통으로 구워서 적당히 한입거리로 잘라서 냉동실에 보관해둔다. 먹을 때는 레인지 돌려서 적당한 양념에 볶아주면 된다. 아마 이런 꿀팁으로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더 이상 후지가 이 가격에 안 팔리겠지만 내 특별히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밥도 잔뜩 하고 얼려두었다. 김치도 중국산으로 사놓고 김치 국물까지 싹 긁어먹는다. 이렇게 사니 한주 4만 원 중 식비는 반도 안된다. 이 정도면 나는 은평구 명예 주부상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식비 아끼듯 대부분의 돈을 아끼고 있다. 교통비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면서 아끼고 있다. 핸드폰비는 알뜰폰을 사용하면서 월 5천 원도 안 든다. 그마저도 요즘은 정부지원금이 나와서 공짜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노래 듣는 것도 웬만하면 유튜브, 리디북스로 책 읽는 것으로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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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 지지리 궁상이다. 그렇게 살아서 행복하냐는 이야기를 한다. 근데 명품을 사서 온 몸에 두르든, 혹은 미슐랭, 입에 닿자 말자 놀라서 까무러칠 음식을 먹든, 혹은 근사한 곳을 놀러 가든. 그런 것들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 부럽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내 그릇에는 이 정도가 맞다. 따라 하다 가랑이가 찢어질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요즘 읽는 책이 있다. 우아하지만 가난하게 사는 법. 읽을수록 이 책이 내게 말하는 것은 돈으로는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나만의 바이브, 나의 리듬이라 할 수 있겠다. 남을 쫓다간 내 밑천이 드러난다. 행복이란 건 쫓으면 쫓으려 할수록 내 손에서 벗어나지만. 가만히 그 존재를 까먹고 무언가를 몰두하다 보면 내 곁에 있다. 여하튼 이런 자기 위안적인 생각만 하면서 요즘 산다.


  그래도 걱정 마시라 고기반찬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유튜브도 보고, 보고 싶은 책도 보고, 이렇게 추운 날 전기장판 속에 누워서 귤도 까먹고. 나는 썩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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