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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순정 Sep 02. 2019

암 요양병원 르포 -1

회사에서 요양을 할 수는 없다

    머릿속에 온통 '특종' 생각이 가득하던 야심만만한 초년 기자 시절, 소위 '잠입취재'라는 것을 할 기회가 여럿 있었다. 물론 다 기사로 이어지지는 않고 '꽝 나는'(기사 가치가 없거나 취재가 충분하지 못해, 혹은 법적 문제가 예상되어 등등... 기사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강의식 다단계 판매장, 불법 폐차 수출업체, 아파트를 이용한 불법 숙박업소 등등이 주된 잠입 취재 대상이었다. 그 와중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요양병원이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었던 그곳을 진짜 환자가 되어 들어갈 자격(?)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야릇했다. 나이롱 교통사고 환자들이 득시글거리는 2차 병원, 혹은 치매 노인들을 학대하는 노인요양병원이 아닌 (잠입하고픈 취재 환경에 대한 상상일 뿐 모든 병원이 이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암 요양병원에 암 환자가 되어 입원하다니, 뭔가 엉뚱한 방향으로 꼬여도 한참 꼬여버린 느낌이기도 하지만.


    흔히들 암 같은 큰 병에 걸렸다고 하면 서울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을 찾기 마련인데, 이러한 병원들의 경우 전국에서 몰려드는 중병환자들로 미어터지기 때문에 병실 잡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상태가 위중하지 않으면 입원도 잘 시켜주지 않거니와, 수술 환자도 회복이 좀 빠르다 싶으면 피주머니도 못 뗀 채 예정보다 빨리 퇴원을 시켜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때문에, 수술이나 응급처치를 끝냈지만 여전히 일상생활로 돌아가지 못하는 환자들은 보통 2차 병원이나 요양병원, 한방병원 등(이하 요양병원으로 통칭)에 머물게 된다.



    요양병원 입원하기로 결정을 하면, '비용'은 가장 중요한 고려대상 중 하나가 된다. 병원마다 천차만별이긴 하나 시작점부터가 많이 비싸다. 대부분 실비보험으로 치료비 보전이 가능하다고 상담자들은 이야기하지만 그 '실비'라는 것에도 한도는 있게 마련이고, 혹시라도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원이 되지 않는 비급여 약으로 장기간 치료를 진행하게 될 경우 수천만 원 쓰는 것은 우습기 때문에 단기간 요양비로 흥청망청 써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내가 치료받고 있는 병원으로 통원 차량을 제공하는 세 곳의 요양병원을 추린 뒤 상담과 환우 카페 검색을 통해 병원비와 대략적인 운영 방향 알아봤다.


A병원: 주당 200만 원-350만 원. 화려한 보양식 메뉴 제공. 한방병원인데 내 보험은 한방치료비를 지원해 주지 않아 패스. 

B병원: 주당 140만 원어치 이상의 치료를 받아야 입원 가능, 이 금액만 넘기면 치료 권유(강요?) 없음

C병원: 주당 100만 원 초반이나 "대부분 추가 치료를 많이 받으신다"라고 함. 치료 권유 은근히 있다고 함. 한방치료 위주이지만 일반병원으로 등록되어있어 실비보험 가능


    이런 요양병원들은 보통 여러 가지 보조치료를 제공하고 돈을 번다. 고용량 비타민C, 미슬토나 자닥신 등 면역주사, 고주파 온열치료 등등 품목도 다양하고, 하나 둘 추가하다 보면 가격은 끝도 없이 올라간다. 병만 고쳐준다면야 가격이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본원'(수술, 항암, 방사선 등 표준치료를 받고 있는 상급종합병원) '교수님'들은 대부분 보조치료에 대해 회의적이다. 요양병원 환우들을 통해 수집한 본 병원 교수님들의 반응은 대략 이러했다.


"하지 마세요. 치료에 도움 1도 안 됩니다." (단호)

"가급적이면 안 하는 게 좋습니다." (만류)

"뭐 꼭 하고 싶으면 하시던가요. 저라면 안 하겠지만" (포기)

"그거 해서 마음이 편해질 것 같으면 하세요. 마음 편한 게 우선이죠." (공감능력 발휘?)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본 병원 교수들은 하나도 도움 안된다고 하지 말라고 하고, 요양 병원 의사들은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며 적극 권장한다. 심지어 보조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환자에게는 정중히 다른 병원 알아보시라며 입원을 거절하는 요양병원도 있다. 결정은 결국 환자의 몫이지만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뭐 먹을지 고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문제라 단호하게 뚝딱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암 진단 순간부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유약한 정신상태도 냉철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남편과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고 상의를 한 끝에 적어도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보조적인 치료는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국민건강보험 덕에 환자가 직접 본 병원에 지불하는 암 치료비용은 크지 않지만 (중증환자는 치료비 본인부담률이 5%)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들여 치료를 하는 상황인 만큼 표준치료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B 병원. 거절을 잘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거절을 '잘' 하기 위해서는 또 어느 정도의 정신적인 노동이 또 필요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그럴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고 싶었다.  


     보조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자 최소 비용을 어떻게 채울지가 또 고민이었다. 정해진 1주일 입원비는 회당 10만 원의 고용량 비타민씨 두어 차례와 회당 30만 원의 면역주사 세 차례를 맞을 수 있게끔 짜인 금액인데, 이것들을 다 안 맞으면 정해진 입원비를 채우기가 몹시 힘들어진다.


   주사 거부할 거면 요양병원에 굳이 입원은 왜 하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엄마'라는 사람은 집에서 요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초등학교도 채 가지 못한 어린 자녀가 여럿 있다면,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일과 육아는 환자를 배려해주지 않고 바로 들러붙는다. 양쪽 가슴에 절제 수술을 받고 사흘 뒤 돌아간 집에서도, 여전히 집안일을 놓을 수는 없었다. 눈에 보이는 설거지는 해야 하고, 겨드랑이 림프절을 잘라낸 터라 평생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퇴원했지만, 아이가 매달리면 안아줘야 한다. 끼니때가 되면 남편은 "뭐 먹지?" 하고 물어본다. "냉장고에 뭐뭐 있으니 그걸로 차려줘"라고 대답해도 되지만 주방에서 버벅대는 모습을 보다 보면 답답해 결국 내 일이 되고 만다.


     주부는 집이 곧 일터다. 암 걸렸는데 요양하겠다며 회사로 가는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는가? 결국, 고가의 주사제를 맞지 않는 대신 남들 주 1회 받는 물리치료를 일주일 내내 받아서 입원 금액을 채우기로 하고 요양병원 입원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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