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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순정 Sep 03. 2019

암 요양병원 르포-2

강렬한 항암 부작용의 기억

    베이비 핑크색 페인트 마감에 마블 대리석 테이블, 진품인지 모조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테리어에 관심 좀 있다는 사람들은 알아보는 루이스폴센 조명까지, 도대체 카페인지 병원인지 고개가 갸웃할 정도였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스튜디오에서는 요가 수업이 진행 중이고, 한쪽의 테이블에는 몇몇 환자들이 둘러앉아 병원에서 힐링 프로그램으로 제공한다는 '명화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곳이로구나! 깔끔하고 쾌적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운동과 취미생활을 즐기다 보면 병이 다 나을듯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항암 치료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병실에 짐을 올려다 준 남편이 떠나자마자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나는 동시에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오심이나 구역감이 있을 때마다 추가로 먹으라는 알약을 두 알 입에 털어 넣고 일단 침대에 누워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했다. 그것밖에는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항암 치료에 대해 상담을 해주던 간호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숙취 있잖아요. 숙취랑 비슷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속 울렁거리고 토 하고 하는 게... 아니면 입덧이랑 비교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아 그럼 저는 뭐 괜찮겠네요. 숙취에는 일가견이 있거든요 제가. 라고 여유 있게 웃었는데, 이것은 단순 숙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임신 3개월 차 입덧을 하는 와중에 필름이 끊길 때까지 양폭(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을 수십 잔 마시고 다음날 고깃배를 타는데 어마어마한 파도에 곧 배가 뒤집어질 것 같아서 공포감마저 드는 느낌이랄까. 가끔 술을 진탕 마신 다음날이면 머리를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건 뭐... 뱃속 깊은 곳부터 식도를 타고 구역감이 올라오니 어디를 잘라내야 할지 결정조차도 못 하겠다.


    밥 청소 빨래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아가는 집안일에서도 해방되었겠다, 엄마엄마 하루 백 번 외치는 쪼꼬맹이 상전님들도 옆에 없겠다, 신생아처럼 잠만 자고 싶은데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요의 때문. 사실상 독극물에 가까운 항암제를 빠르게 몸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 적어도 하루 2리터의 물을 마시라고 하는데, 화장실 가기가 귀찮다고 소변을 참으면 또 이것을 머금고 있는 방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꼭 자주 소변을 보라는 것이 항암 교육 간호사의 설명이었다. 몇 시간 전 혈관으로 들어갔던 시뻘건 (환자들은 빨간약이라고 부르는데, 사실상 자몽 주스 색깔에 더 가깝다) 액체가 고스란히 소변으로 배출되는 것을 보면 사실 소변을 참고 싶은 마음은 싹 사라져 버린다.

 

    온갖 냄새에 대한 민감도는 입덧을 할 때의 수준을 가뿐히 뛰어넘어 버렸다. 음식이든, 소독약이든, 냄새의 ㄴ자만 느껴지면 웩웩거리며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부여잡느라 저녁은 자동으로 건너뛰었다. 침대에 널브러져 깜빡 잠이 들었다가 다시 요의에 눈을 떠 좀비처럼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어느덧 밤 10시, 병실 불이 꺼진다. 항암제와 함께 맞은 호르몬 주사(유방암의 원인 중 하나인 여성 호르몬을 억제하는 용도. 강제로 폐경을 시킨다)가 슬슬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하는지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열이 오르다 갑자기 오한이 들어 벌벌 떠는 현상이 오분, 십분 간격으로 반복된다. 가뜩이나 몸도 힘든데 이불을 차냈다 덮었다 뭐 하는 짓인가 싶다. 이게 말로만 듣던 갱년기 증상이구나. 밤새 뒤척이다 새벽 서너 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을 이뤘다.


    "일어나요, 식사하러 가야죠"

눈을 떠 보니 아침 일곱 시 반이다. 일곱 시 반이 아침식사 시간이라니, 올빼미 인간에게는 너무 가혹하다.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어 아침도 생략하고 싶은데 어머니 뻘 나이로 보이는 옆 침대 환자가 거듭 일어날 것을 권한다. 힘들어도 내려가서 숭늉이라도 한술 떠야 된다고, 속이 비어있으면 더 울렁거려서 힘들다고. 입덧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맞는 말인 듯도 싶어 습습 후 후 심호흡을 하며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사는 나름 괜찮았다. 아니, 괜찮아 보였다. 싱싱한 야채샐러드에 두 가지의 나물반찬, 푹 끓여진 미역국과 야채죽, 숭늉, 물김치, 그리고 삶은 달걀 한 개. 꽁치 조림도 메인 요리로 올라왔으나 강렬한 비린내가 구역질을 유발하여 황급히 치워버렸다. 아 이것이 암환자의 모범 식단이구나, 앞으로 나는 이렇게 먹고살아야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숭늉만 겨우 몇 술 떠 넣고는 급히 자리를 떴다. 식당 옆 데스크에서는 프랑스 자수와 명화 그리기 등 취미활동 참가 신청을 받고 있지만 도저히 고상하게 앉아서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슬슬 돈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잠만 자고 숭늉만 먹자고 일주일에 백만 원도 넘는 돈을 쓰고 있는 건가?


 

    본 병원에서 받아온 구토 방지제를 한번 더 입안에 털어 넣고 속을 진정시키려 습습 후 후 하고 있는데 주치의가 간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환자분, 어떠세요? 좀 괜찮으세요?"

"아니요." (단호)

"어떤 게 제일 힘드세요?"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구토도 몇 번 했고요. 본 병원에서 받아온 약 아무리 먹어도 안 들어요."

"구토 방지제 정맥주사제로 놔 드릴게요. 맞으면 좀 덜하실 거예요."

"열이 오르고 오한이 나고 계속 반복돼서 잠을 못 자겠어요. 어젯밤에도 거의 못 잤어요."

"호르몬제 드시나요? 폐경 증상이 오는 것 같은데, 잠을 영 못 주무시면 수면제 적은 용량으로 처방해 드릴까요?"

"네네네네네네!"


    의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비닐팩에 든 투명한 액체를 들고 들어온다. 왼쪽 팔목으로 바늘이 따끔, 서늘하게 액체가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잠시 눈을 감고 긴장을 풀자 플라세보 효과일지도 모르겠지만 속이 한결 편해지고 온몸에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역시 병원이 좋긴 좋구나. 집안일도 안 해도 되고, 애도 안 봐도 되고, 때 되면 밥 차려주고, 말만 하면 턱턱 약 주는 아주 좋은 곳이구나. 생각해보니 산후조리원 이래 처음 느껴보는 호사가 아닌가! 돈 아깝다는 생각은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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