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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순정 Sep 25. 2019

암 요양병원 르포-3

과부와 홀아비의 인생극장

    입원 후 닷새째가 되자 몸이 좀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적어도 가만히 있다가 남들 아무도 못 맡는 냄새 혼자 맡고 웩웩거리며 화장실로 달려가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 오전, 오후 두 차례 주어지는 간식시간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오후 세 시. 줄을 서서 메뉴판을 확인하니 오늘의 간식은 찐 감자다! 며칠 곡기를 제대로 못 했던 터라,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포슬포슬한 감자를 한 입 베어 물 생각을 하니 입 속에는 벌써 아밀라아제가 분비되기 시작했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개인접시에 감자 두 알을 담았다. 반짝반짝 새하얗게 빛나는 설탕도 보인다. 역시, 감자엔 설탕을 찍어야지~ 하며 숟가락을 푹! 담그자마자,


"안돼에~!"


   작은 비명 소리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뻘 되는 환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내 숟가락을 쳐다보고 있다. 맞다, 설탕은 이제 영원히 안녕해야 한다. 심지어 백설탕이라니, 어색하게 웃으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언니들, 말려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암은 처음이라서요...




"순정이 이제 몸 좀 괜찮니?"

평소 같았으면, '저 아심? 언제 봤다고 반말이신지?'라는 생각을 담아 흰자위를 번뜩이며 쏘아봤을 테지만

"네 언니" 하면서 쪼르르 따라가는 나도 참 많이 변했지 싶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던가, 모두 같은 병을 가지고 있다 보니(종류는 다르지만 다 암이고, 이 중 유방암 환자의 비율은 50%가 넘는 듯하다.) 경솔한 말로 상처 주는 일 없고, 어떤 이야기든 딱! 하면 척! 알아듣는 그녀들. 침상마다 환자 이름과 주치의 이름, 나이가 적힌 명찰이 붙어 있으니 어색하게 서로 나이 물어보면서 호칭 정리할 필요도 없다. 20대 처녀부터 손주 본 할머니까지, 나이는 물론이고 살아온 환경이나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병문안 선물로 들어온 각종 과일 나눠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그야말로 '꿀잼'이다. 실시간 '인간극장'이랄까.


   오른쪽 옆 침상에 자리한 미선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 더 많았는데 넉살도 좋고 쾌활하여 나와 죽이 잘 맞았다. 초등학생 아들이 둘인 그녀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거대 보험회사의 관리자였다고 한다. '사내정치' 잘하는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애들까지 건사하느라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는 이 언니는 쉼 없이 뜀박질을 하다 '암'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초 회사에서 여자 관리자의 존재를 이렇게 표현했다.


   "여자 관리자는, 잘해도 본전이야. 직원들이 다 여잔데, 같이 으쌰 으쌰 하는 게 없어. 여자 팀장한테는 저거 잘하나 함 보자... 요러면서 팔짱 딱 끼고 지켜보고. 반면, 남자 팀장은 와이셔츠 팔 걷어붙이고 짐만 한번 들어줘도 다 좋아하지."


    왼쪽 침상의 주인을 우리는 "김 선생"이라고 불렀다. 삼십 대 중반의 미혼이고, 중학교 음악 선생님인 그녀는 늘씬하고 키도 컸으며, 커다란 눈망울을 빛내며 수줍은 듯 웃곤 했다. 안타깝게도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생일을 맞은 그녀를 위해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각종 과일을 깎아 상을 차리고 노래를 불러주며 작은 생일 파티를 열었다. 생일 기념 외출을 한다며 예쁘게 꾸미고 병실을 나선 그녀는 밤이 깊어서야 커다란 쇼핑백을 메고 돌아왔다. 어디 다녀왔냐고 묻자 가로수길에서 쇼핑하고, 롯데타워 고층에 위치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혼자 우아하게 정식을 즐기고 왔단다. '화려한 싱글'이 따로 없다며, 젊고, 예쁘고, 싱글인 것도 다 부럽다는 철없는 아줌마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에요, 언니. 이게, 생각보다 별로예요. 사실 병 걸리기 전에는 애인 없고 그런 게 크게 아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내가 온전히 기댈 수 있고, 옆에 항상 같이 있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집에 두고 온 자식들은 없지만,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이 많이 보고 싶다고도 했다.  


   "제가, 마지막 순간까지 애들한테 이야기를 못 했어요. 시기가 애매해서. 중간고사도 있고. 그래서 휴직 들어가기 하루 전날 이야기를 했거든요, 얘들아 선생님 이제 못 나온다 그렇게... 그런데 그다음 날, 마지막 출근날에 애들이 제가 좋아하는 노래 불러주면서 직접 쓴 편지를 주더라고요. 진단받았을 때도 안 울었었는데, 그때 저 처음으로 울었어요"


      김 선생 맞은편 침상에 자리한 성희 언니는 우리 방의 터줏대감이었다. 그녀가 이 병실에 가장 오래 자리했는지의 여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냥, 그녀가 가진 '포스'가 그러했다. 딸 나이가 서른이고, 손녀도 보았다 했으니 언니보다는 엄마에 더 가깝겠지만, 그녀는 그냥 왕언니였다. 서울 모처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그녀는 입담이 참 걸걸했다. 어느 부서에나 꼭 있는 (우리 회사에만 있었나?) 정 많은 욕쟁이 부장님 느낌이랄까.

"앗 ㅆㅂ 왜 또 비가 오고 ㅈㄹ이야 ㅈㄹ이..." 하고 버럭 하다가, 영상 통화 화면에 손녀 얼굴이 뜨면,

"아고아고 우쭈쭈 우리애긔. 그랬쪄요? 아코이뻐! 아코이뻐!" 하며 바로 할머니 모드로 돌변하곤 했다.


   성격도 과감하여 병원 밥 메뉴가 맘에 들지 않으면 민머리로 '불량'사식을 먹으러 나가는 과감한 일탈을 주도하기도 했다.

"입맛이 너무 없다. 라면 먹으러 가자!"

"네 언니, 근데 모자 안 써요?"

"괜찮아, 그냥 다들 스님인 줄 알아"


    하루가 멀다 않고 찾아오고, 하루에도 수 차례 영상 통화를 하는 그녀의 딸과 손녀딸은 긴 투병생활을 견디게 해주는 큰 기쁨이지만, 금지옥엽 기른 딸이 생각보다 일찍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내가 첨에 얘 결혼한다 그럴 때 엄청 속상했거든. 미국에서 멀쩡히 공부 잘하고 있는 애였는데... 갑자기 다 그만두고 들어와서 결혼한다고 그러니까. 그런데 몇 년 지나서 지금 이렇게 되고 보니까. 그 사이에 얘 아빠도 아파서 먼저 가고, 혼자된 담에 내가 이렇게 아프고. 그때 결혼 안 했으면, 한국에 안 왔으면 어쨌을까 싶어. 그럼 우리 아기도 없었을 거 아냐. 내가 요즘 우리 아기 보는 낙에 사는데... 진짜 잘했지, 지금 와서 보면. 정말 사람 일은 언제 어떻게 휘어질지 모르는 거야."


    성희 언니와 기둥을 사이에 두고 직각으로 위치한 침상은 며칠 비어있다가 내가 입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새 주인을 맞았다. 대장암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던 희경 언니는 온화한 표정부터 말투까지 너무나도 자애로운 어머니 느낌이어서 선뜻 '언니'라고 부르기가 어색할 정도였다. 뽀얗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에, 풍성한 정수리 볼륨까지,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부잣집 사모님 상이었다. 두 명의 딸이 다 승무원이라는 그녀는 항상 미소 띤 얼굴에 '솔'톤의 목소리를 유지했는데, 저런 엄마와 평생을 살았으면 승무원 면접은 당연지사 통과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본인이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변 사람들을 살뜰하게 챙겼다.


"언니 커피 안 드시잖아요. 왜 받아오셨어요?"

"응 이거 로비에 택배 아저씨 계시길래 드리려고. 어차피 하루 한잔 공짜로 해주는 건데 목 마르신 분이 드시면 좋잖아"

"어쩜 그렇게 마음 씀씀이가 좋아요?"

"내가 뭘 했다고.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난 그냥 커피 달라고 말만 했는걸?" 하며 소녀같이 웃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과일을 먹으며 깔깔거리고 있는데, 김 선생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언니, 우리 좀 영화 같지 않아요?"

"무슨 영화?"

"하모니! 보셨어요?"

"아 그거... 여자 죄수들이 합창하는 거?"

"거기도 그렇잖아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에서 만나고, 그런데 각자의 인생이 너무나 다른데 하나하나 다 극적이야. 나도 이렇게 막 얘기하다 보니까 언니들 얘기가 너무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되고. 나중에 이것도 영화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아. 아니면 소설을 쓰던가."


    그 말도 맞다. 소설도, 영화도 될 수 있다. 적어도 우리의 이야기에는 확고한 클라이맥스가 확보되어 있지 않은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다시 뛰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넘어진 덕분에 바닥에는 돌멩이뿐만 아니라 꽃도, 벌레도 있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나. 이대로 영영 주저앉게 되지 않을까 두렵지만, 또 다른 넘어진 이들과 친구도 되고, 서로 위로도 주고받으니 영 못 견딜 일은 아니다. 다시 뛰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걸어갈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마음에 드는 곳에서 잠시 놀다 가도 될 것을.


   암(癌)이라는 녀석은, 어쩌면 우리 인생에 클라이맥스를 만들어주는 커다란 바위(巖)가 아닐까. 얼마나 크고 높은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지만, 기어 올라가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들겠지만, 정상을 딛고 서서 아래를 바라보면 무언가 새로운 다른 것이 보이겠지. 안 만났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일단 인생에 이 커다란 돌덩이가 던져진 이상 우리는 올라가야만 한다. 그래도 함께 위로하며 올라갈 동지가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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