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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아나 Apr 07. 2021

조제

딴딴거리며 애절하게 떨리는 기타의 선율이 머리 언저리 즈음으로 차분하게 울려 퍼진다.

열기라고는 쥐뿔도 느껴지지 않는 창문만 멍하니 바라보다, 새벽보다 차갑게 식어버린 손바닥을 들어 하얗게 변한 창문 가까이 조심스레 손 맞닥뜨려본다.

누구도 방문하지 않아 텅 비어 있는 공간, 텅 비어 있는 의자에 멍하니 홀로 앉아 그믐달보다 얇실하게 눈을 감는다.

그믐달보다 얇실하게 눈을 감아본다.

불현듯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처럼 부드럽고, 물안개처럼 희미한 생각들이 피어오른다.

그 애매한 생각을 붙잡으려 그믐달보다 더욱더 얇실하게 눈을 감는다.

막연하던 생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흐릿해졌고, 마침내 흔적도 남지 않고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연처럼.

시간이 훔쳐 가버린 기억처럼.

굳게 닫혀 있는 창문을 뚫고 공기의 맵싸한 차가움이 쾌쾌한 매연과 함께 나의 얼굴로 휘몰아친다.

창밖에서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바람들은 저마다 자그마한 얼음 알갱이들을 움켜쥐고서 비어버린 나뭇가지 언저리로 쏘아져 간다.

코끝 찡하게 만드는 얼얼한 바람이 머물렀다 떠나가 버린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얼음 송이들은 알음알음 촘촘하게 군락을 이루고, 자리에서 밀려난 탁한 먼지들은 아스팔트 위로 무겁게 뿌리내리며 가루눈처럼 소복이 쌓여 간다.

겨울이었다.

동쪽에서 해가 뜨듯, 서쪽으로 해가 지듯. 별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 일과 처럼 낯설지 않은 아픔과 상처들이 싫지만 숨 쉬듯 계속해서 늘어난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특별할 것 없는 무덤덤한 답답함들과 갖가지 감정들을, 미어터질 정도로 울분 섞인 쓰라림들을 어떻게 하면 한숨에 모조리 실어 토해낼 수 있을까.

눈물들을 알음알음 모아두었다가 흐르는 강물에 홀연히 놓아준다면 그 순간에는 어제의 모든 기분과 감정들까지 보이지 않는 아득하고 먼 곳으로, 붙잡을 수 없는 그 너머까지로 멀어질 수 있을까.

창틈 사이로 적막한 노을이 진다. 붉게 물든 낙조 속에서 도로는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어느 순간 도시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으며 나뭇가지들도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점점 번져가는 노을 덕에 도로 위 놓여있는 얼음 송이가 죽는다. 예쁘게 조용하게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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