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축분야 입문 프로젝트의 플랜을 계획해 주시던 실내디자인과 교수님은 건축도장 자격증 시험이 다음날 마감이니 어서 등록해 시험을 치르는 것이 좋겠다 권고하셨다.
다소 뜻밖의 자격증명에 놀란 나는 즉각 검색에 들어가 학원을 등록하는 행동으로 옮겼다. 뭐랄까 내가 한 번 한다고 하면 반드시 해낸다는 자신감이 가득 차올라 이 분야에서는 꼭 이룰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알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난생 처음 직업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이건 나를 위한 시험이구나 직감했다. 내가 이전부터 아마추어로 취미생활을 해왔던 가구제작의 연장이라는 생각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나무 공장에 가서 필요한 원목을 사다가 내가 필요한 가구 디자인대로 가구를 만들었던 그 시절, 나는 국내 O고리 닷컴의 열혈 고객 중 한 명이었다. 적합하고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우연히 들른 그 사이트는 나에겐 갈증을 해소하여 주는 오아시스였다.
그렇게 부지런히 재료를 비행기로 실어 날랐다. 그리고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와, 또는 토요일 오전부터 공방으로 가서 다 만들어진 가구를 사포질하고 천연 오일을 발라 말린 후 다시 사포질 하여 결을 다듬은 후에 원하는 색을 칠하는 상도 작업까지 직접 하면서 흥미진진한 취미생활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러하니 나는 이 시험을 즐기며 자격 검정을 할 수 있는 준비된 수험자였던 셈이다.
처음 도장시험을 준비하며 수업을 듣던 날, 프로같은 작업자의 모습이라니 심장이 뛰었다
[건축도장 시험은 시험지에 충실하세요]
강사분은 1회 강의 처음부터 시험지에 충실하라고 말했다. 맞다. 시험지를 보면 작업순서와 작업방법 그리고 주의사항까지 모든 것이 나와 있다. 정말이지 이렇게 다 알려주는 시험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실제로 정답이 되는 과정이 상세히 기록된 그 시험지를 들고도 정작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은 50%가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실기는 어렵고 현장에서의 컨디션이 중요했다. 나도 모의 실기시험을 보는 중에 1회 때는 반의 에이스였다가 2회 때는 실수를 연발하여 강사분의 지적을 한참 받았던 경험이 있다. 그때 강사분은 나에게
"집중이 안 될 때는 호흡을 한 번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세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면서 시험지를 다시 읽으세요. 그러면서 다시 시험에 임하는 겁니다. 이 시험은 얼마나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 순간 실수하지 않으려면 차분하게 호흡을 정돈하세요"
라고 진심으로 충고했다. 그 덕분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초심을 가다듬고 시험 당일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집중하였기에 한 번에 시험에 합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험은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막상 지원하는 수험자들에게는 한 번에 붙기 어려운 시험으로 악명이 높다.
[합판과 각목별로 수성페인트와 에나멜페인트 구별하세요]
1차, 2차 강의에서 각각 작업한 습작이다. 저 판넬에 각목 부분과 합판 부분 다르게 칠해야 한다. 또한 페인트 종류가 다르고 칠해야 하는 부분들을 정확히 측정해서 만들어야 하므로 여간 까다롭지 않다. 쉽게 보고 덤볐다가는 큰 코 다치는 시험의 전형이다.
합판 부분은 각 순서별로 연마를 하는 부분과 하지 않는 부분으로 구별해서 실수 없이 표현해야 하고, 상도-중도-하도 순서에 따라 수성페인트로 각각 표현해 내야 한다. 각목 부분은 시험 당일 주어지는 색상에 최대한 가깝게 조색하여 만들어 내야 한다. 또 유성페인트로 칠해야 하는데 물과 신나 비율이 맞아야 에나멜 특유의 반짝거림을 나타낼 수 있다. 반짝거리지 않으면 오작으로 판정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조색이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패널 부분 좌측 아랫면은 글자와 도형을 시험문제에 맞게 그려야 하고, 우측에는 그라데이션을 조색하여 칠해야 한다. 쉬워 보이지만 이 모든 과정들을 5시간 30분 동안 완벽하게 해내다 보면 멘털이 붕괴되는 것이 어떤 것임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조색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한 편이었다. 연습에서는 조색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시험 당일에는 시간 압박이 겹쳐 긴장하는 바람에 글자 색상에 (연보라색이었다) 약 40여분을 보내야 했다. 마음은 급한데 비슷한 색이 나오지 않으니 머릿속이 하얘짐을 느꼈다. 다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해내자는 생각으로 시험 종료를 알리는 순간까지 붓을 떼지 않고 도형색을 칠했다.
혹시나 오작 판정을 받을까 봐 시험 종료 후에도 시험장을 떠나지 못하고 마음을 졸였지만, 오작으로 분류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돌아왔다. 뒤로는 오작 판정을 받은 어느 수험자의 거친 항의를 들으면서 말이다. 시험 중에 오작 판정을 받으면 어차피 채점을 하지 않으므로 하던걸 멈추고 짐을 싸서 집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시험을 보다 보면 중간에 집에 간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라 나중에는 몇 명만 남아서 끝까지 시험을 마무리하는 독특한 시험장 분위기도 이 시험의 특징이다.
[고득점 기대보다는 합격만 하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나는 60점대로 간신히 턱걸이 합격을 했다. 시간이 너무나 빠듯해 마지막에는 시간 안에 다 해내지 못할 거란 생각에 포기할까 잠깐 갈등도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합격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붓을 놓지 않고 내 모든 에너지를 불살라 페인트를 칠했던 것이 합격 비결이라면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