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 구입한 우리 집 소파. 지난 7년간 우리와 동고동락했다. 그동안 이사를 두 번이나 했다. 첫 번째 이사는 전셋집에서 바로 옆 동네 전셋집으로 간 것이었지만 두번째 이사는 달랐다. 내 집마련.마음껏 못을 박아도 되는 내 집으로의 이사였다. (물론 새 집이라서 아직까지도 애지중지한다.)
첫 번째 이사 때는 전세금이 모자라서 돈 걱정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는데두 번째 이사 때는 자꾸만 딴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때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전세금을 반환받지 못할뻔해서 내용증명을 보내고 부동산 사장님과 삼자대면을 하는 등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나는종종 다른 고민에 사로잡히곤 했다.
새로 사, 말아?
첫 번째 이사에서 이미 배웠다. 집이 바뀌어도, 물건이 바뀌지 않으면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27평에서 34평으로 집이 넓어졌는데도 물건이 그대로이니 같은 집에 사는 느낌이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창 밖의 풍경 정도? 동네도 엇비슷하니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걸 알고 있으니, 새 집에 낡은 물건들을 들이기가 더욱 싫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니까, 새 집에는 새 물건을 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물건들이 너무 멀쩡했고,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멀쩡한 물건을 버릴 수는 없고, 결국 나는 기대를 버리기로 했다. 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 큰 물건들은 당근에 올려 팔고, 반드시 가져가야 할 것들만 남겼다. 그리하여 로즈그레이 빛깔의 이 소파는 새 집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소파는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아 긴 시간을 우리와 함께 했다. 지난 7년간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신 소파님의 노고를 떠올려보면 수많은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신혼 시절 함께 앉아 새로 산 75인치 텔레비전에 설레며 영화를 봤던 기억, 지금은 없애버린 거실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을 때 등받이가 되어주었던 기억, 아이가 태어나 낮이고 밤이고 소파 위에서 아이를 안고 수유했던 기억, 소파 위에 아이를 눕혀 모빌을 틀어주었던 시간들.
조금 커서는 200일 기념사진도 소파 위에서 찍었었지. 기념일마다 지저분한 거실을 다 치울 용기가 나지 않아서 오직 소파와 그 근처만 치워두고는 기념할만한 사진을 찍곤 했었다. 추억이다, 추억. 그때마다 소파 너는 묵묵히 우리를 받쳐주었구나. 너는 언제나 조용히 조연이었구나.
사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낮에는 조연으로 바빴던 소파가 밤에는 항상 주연으로 등극했는데, 맡은 배역은 남편의 '침대'였다. 그리하여 소파님은긴세월을 밤낮으로 쉴 틈 없이 성실하게 일한 탓에 최근에는허리가 조금씩 꺼지기 시작했다. 망가진 곳 하나 없이 멀쩡하던 소파가 쿠션감이 예전만 못하자 묻어뒀던 고민이 슬그머니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새로 사, 말아?
결국, 이번에는 새로 샀다. 소파의 허리 때문에 남편의 허리까지 망가뜨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주말마다 소파를 보러 다녔다. 백화점부터 가구단지, 리퍼매장, 각종 브랜드의 대리점까지 모조리 훑었다. 소파의 가격은 그 종류만큼이나 천차만별이었다.
몇 번 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취향과 기준이 생겼다. 문제는 가격과 디자인이 동시에 마음에 들기가 힘들다는 것. 어렵사리 후보를 둘로 좁혔는데, A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고, B는 가격이 마음에 들어 곤란했다. A의 가격은 B의 2.5배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 거실 인테리어를 참고하기 위해 <오늘의 집>이라는 앱을 깔았다. 어쩜 다들 이렇게 예쁘게 해 놓고 사는지. 보기만 해도 저절로 감성이 길러지는 기분이었다. '34평형 거실 소파'를 키워드로 몇 집을 구경하다 보니 A와 유사한 디자인의 소파가 눈에 띄었다.
소파를 눌렀더니 바로 구매링크로 연결이 됐다.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가격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A처럼 생긴 소파의 가격은 B의 60% 수준이었다. 발품에 이어 손품까지 파는 정성으로 마침내 디자인은 A, 가격은 B인 소파를 찾은 것이다!
어머머 이건 사야 해. 가격과 디자인 모두에 마음을 뺏긴 나는 남편에게 링크를 보냈고, 바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구매완료. 순식간에 새로운 소파를 샀다.
이제는 정든 소파를 보내주어야 한다. 다음날 아침 볕이 잘 드는 시간에 소파 주변을 깔끔하게 치우고 사진을 찍었다. 구매처에서 올린 사이즈, 모듈 체결/분리방법, 인테리어 제안 등을 캡처해 당근마켓에 판매글을 올렸다. 가격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올렸다. 오래 골머리를 앓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판매글을 올린 것이 월요일 아침, 그리고 소파가 팔린 것이 오늘, 수요일이다. 감사하게도 손발이 척척 맞는 구매자를 만나 퇴근시간에 맞춰 용달기사님이 집으로 오셔서 소파를 가져가셨다.
먼저 퇴근한 남편이 소파를 미리 분해하고, 소파가 나갈 수 있도록 방해물을 전부 치우고, 소파를 전체적으로 한 번 닦아놓기까지 해서 일이 금방 마무리되었다.남편에게 참 고마웠다.
새로운 소파는 다음 달이나 되어야 도착한다고 한다. 나야 괜찮지만 침대를 잃어버린 남편이 잠자리가 불편할까 봐 걱정이다. 침대로 다시 돌아올지, 할머니처럼 TV를 켜놓고 잠드는 습관을 고수할지 궁금하다.
소파가 팔렸다. 정든 소파가 갔다. 그래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내놓는 결말이 아니라새로운 주인에게 보내주는 해피엔딩이라 다행이다. 가서도 잘 지내거라, 정든 내 첫 소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