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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Dec 10. 2024

나이 들며 빛나는 것들

익숙함의 편안함

   젊었을 땐 좋은 옷과 물건이 내 가치를 증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싼 브랜드의 옷을 입고, 최신 전자기기를 손에 쥐는 것이 마치 내가 세상에서 중요하고 멋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증표 같았다. 새로 산 구두가 반짝일 때마다 내 발걸음도 가벼워졌고, 친구들이 내 물건을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묘한 만족감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그런 것들에 마음이 가지 않게 되었다. 한때는 손때 묻을까 애지중지하던 가방도 이제는 어디에 툭툭 내려놓기 일쑤다. 새 옷을 입었을 때의 설렘은 줄어들고, 오히려 오래 입어 낡은 옷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물건에 담긴 '값어치'보다 그 물건을 둘러싼 기억이나 감정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결국 '나를 꾸미는 것'보다 '나를 비우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


   비싼 물건을 손에 쥐어야 마음이 채워지던 시절을 지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내 모습이 낯설지만 좋다. 한 잔의 따뜻한 차, 다 헤어진 이불속의 포근함,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그런 것들이 이제는 삶의 진짜 보석처럼 느껴진다.


   젊었을 땐 좋은 옷이 나를 돋보이게 만든다고 믿었다면, 이제는 내 얼굴에 스며든 시간의 흔적과 내 말투, 내 눈빛이 나를 대신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옷은 낡아지고 물건은 잃어버려도, 나의 시간과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물건보다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간다.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서 웃음이 피어나고, 함께 보낸 시간이 따스하게 떠오를 때, 그때 내가 진짜 부자가 된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며 점점 가벼워지고, 또 풍요로워진다. 이제는 무엇을 얻는 것보다 무엇을 남기는지가 더 중요하다.


   오늘도 나는 낡은 옷을 입고, 오래된 물건을 쓰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쌓아간다.


*표지 그림: 빈센트 반 고흐의 '신발'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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