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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Dec 05. 2024

흘러가는 시간   흔들리는 기억

이제 나이가 드는가?

   언제부터인가 삶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문득 손에 든 휴대전화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사무실을 몇 번이나 빙빙 돌았다. 서랍을 열어보면, 분명히 가방에 들어 있다고 믿었던 열쇠가 그 안에 들어있다. 이런 작은 실수들이 이제는 익숙하다. 어릴 땐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않을 거야" 하며 어른들을 보고 웃었던 모습들이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얼마 전엔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마친 뒤 카드를 그대로 계산기에 꽂아두고 나온 적이 있었다. 다행히 직원이 뒤따라와 돌려줬지만, 그 순간의 당혹감은 잊을 수 없다. 차에 타려는데 자동차 문이 안 열려서 생각해 보니 차열쇠를 두고 나왔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 한참 동안 가방을 뒤적이다 책상 위에 놓인 걸 발견했다. 그때 문득, "내가 언제 이렇게 덜렁대는 사람이 되었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런 일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한 번은 빨래를 돌리고 나서 세탁기 안에 남아 있는 휴지 조각을 지적받고 한숨을 쉬었다. 다른 날에는 웃옷 주머니에 꽂아둔 채 세탁소에 맡긴 걸 며칠 뒤에야 알았다. 핸드폰, 지갑, 우산, 심지어 안경까지 차에 두고 내린 적이 있다.


   음식물은 어쩐지 손에서 자꾸 흘리고, 약속은 잊어먹기 일쑤다. 매일 먹는 약도 일주일에 한 번은 빠뜨리곤 한다. 손에서 뭔가를 놓치고, 중요한 물건을 깜빡하는 일상이 반복될수록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경고음을 울리는 듯하다. 다리 힘도 빠졌는지 바지를 입거나 벗을 때 한쪽 다리로 버티지 못해 넘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무언가를 놓치고, 잊어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가야 하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예전에는 이런 일들이 무언가를 잃는 과정이라고만 여겼지만, 이제는 그 속에서 삶의 또 다른 풍경을 본다.


   실수들 사이에는 자잘한 웃음거리도 있다. 친구와 만나 그런 실수들을 나누며 "너도 그래? 나만 그런 줄 알았어!"라며 한바탕 웃는 순간, 삶의 빈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이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더욱 깊어지는 인간미다.


   물건을 빠뜨리고, 놓치고, 잊고, 흘리고, 깜빡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은 아니다. 그 작은 실수들마저 나의 삶을 구성하는 퍼즐 조각들이다. 지금은 뭔가를 찾느라 서두르다 넘어지더라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이렇다. '이 모든 게 결국 내 삶의 일부일 뿐.'


   아버지는 늘 키카폰을 외우신다고 하셨다. 집을 나설 때마다 열쇠와 신용카드, 핸드폰을 챙기려는 치밀한 준비성의 표현이다.


   나이가 들며 세상이 주는 변화는 당혹스럽지만, 그 안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여유와 유머를 배우자. 흔들리고 흩어지지만, 그 틈새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며 조금씩 더 나아가야 한다.


- 후회와 깨달음 사이


   좁은 백화점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빼다가 뒷문을 벽에 스쳐버렸다. 찌익, 타다닥 소리가 났을 때 느꼈던 그 심장의 쿵쾅임, 뒤늦게 내려다본 긁힌 차체는 짧은 순간에도 내게 수많은 감정을 안겨줬다. 놀람, 후회, 짜증, 그리고 막막함. 수백만 원의 수리비를 내야 한다는 견적서를 받아 들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힌 질문이었다. '혹시 내가 너무 무심했나?' '주의력이 떨어진 건가?' '나이 들어서 그런 걸까?'


   예전엔 이런 실수가 없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감각이 예민하고 모든 일에 신중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복잡한 생각 속에서 살아가며 작은 부분을 쉽게 놓친다. 접촉사고는 단순히 운전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집중력과 삶의 균형이 드러난 징후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며 삶은 더 복잡해지고, 매 순간 생각해야 할 일들은 쌓여간다. 과거엔 하나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 보니 눈앞의 일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지금 차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잠시 머릿속에서 밀려날 만큼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사고 후에야 깨달았다. 점점 멀티태스킹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을 변명으로 삼을 수는 없다. 나이 듦은 불가피한 현실이지만, 그것이 모든 실수의 이유가 될 순 없다. 오히려 이번 사고는 나에게 작은 교훈을 안겨줬다. '조금 더 천천히, 더 집중하며 살아야 한다.'


   접촉사고로 잃은 것은 돈만이 아니다. 사고 후 남은 찜찜함과 자책감은 내가 얼마나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이가 듦으로 인해 더 중요한 것을 배울 기회도 얻는다. 나약함을 인정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는 법, 그리고 스스로를 더 다독이는 방법을 깨닫는다.


   고액의 수리비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쓰라리다. 하지만 이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주차장에서, 삶의 모든 순간에서 더 조심하고, 더 신중해질 것이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이 들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성숙의 한 걸음이 아닐까?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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