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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2%의 선택

국민은 아무에게도 절대권을 주지 않았다

by 글사랑이 조동표

숫자 하나가 머릿속을 맴돈다.

49.42%.


예상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재명 50%, 김문수 40%, 이준석이 남은 10%쯤 나눠 갖겠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민심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절묘했다.


49.42% 대 41.15%, 그리고 8.34%에 1%.

진보와 보수가 거의 1대 1.

누군가에겐 실망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선방일 수 있지만, 나에겐 이 결과가 오히려 낯설고 놀라웠다.

국민은 이번에도 절묘하게 줄을 그었다.

누구 하나에게도 완전히 힘을 몰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선거가 끝나면 흔히 ‘이겼다’는 말부터 꺼낸다.

언론은 ‘압승’이라는 단어를 찾고, 정당은 자신들이 시대의 명령을 받들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번엔, 그 흔한 환호조차 조심스러웠다.


49.42%.

압도적인 숫자처럼 보이지만, 과반은 아니다.

즉, 절반 이상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절반의 승리는 곧 절반의 경고다.


이번 선거에는 확신보다 절제를 택한 선택이 더 많았다.

국민은 숫자로 말했다.

“누구든, 너무 나대지 마라.”

“이번에도 실망시키면, 다음은 없다.”


정치는 늘 갈라 치기를 한다.

이쪽 아니면 저쪽, 편 가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국민은 그보다 영리하다.


누구나 진보가 되는 것도, 누구나 보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어느 날은 희망을 택하고,

어느 날은 분노를 택한다.

그 선택은 결국 삶의 체온에서 비롯된다.


집값이 오르면 미래가 멀어지고,

물가가 뛰면 인내심이 줄어든다.

월급이 제자리에 머물면, 어떤 정당의 이념보다

장바구니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번 결과는 선과 악을 가른 것이 아니다.

국민은 누군가를 응원하기보다,

누구든 ‘책임 있게 정치하라’는 과제를 안겼다.


기대는 낮아졌고,

그만큼 인내도 짧아졌다.

사람들은 이제 말이 아니라 결과를 기다린다.


“이제, 좀 나아지나?”

“이번엔 진짜 바꿔줄 수 있나?”

“제발, 말 말고 성과를 보여달라.”


나는 49.42%라는 숫자에서 오히려 위안을 느낀다.

이 나라는 아직,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국민은 어떤 이념도, 어떤 인물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치인이 아닌 ‘정치 그 자체’를 감시하는 눈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나라가 아직 희망을 잃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49.42%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그건 메시지다.

경고이고, 지시이며, 선택이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절대권을 주지 않는다.”

“서로를 견제하고, 함께 일하라.”

“그리고 다음에도, 지켜보고 있다.”


국민의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무게를 아는 정치만이, 다음을 얻을 수 있다.


*사진: 노컷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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