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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다고 다 사야 하는 건 아니야

한여름, 겨울 외투를 들고 깨달은 것

by 글사랑이 조동표

어제는 모처럼 잠실에 나갔어.

아내 생일이어서 아들과 셋이서 저녁을 함께 했지.

딤섬을 참 맛있게도 먹었어. 아내도 좋아했고, 아들도 만족한 얼굴이었어.


저녁을 먹고 나서 잠시 옷가게에 들렀어.

정말 옷이 많더구먼.

패션이란 게 계절을 가리지 않는 시대가 되었나 봐. 반팔 옆에 두툼한 패딩이 나란히 걸려 있으니 말이야. 한여름인데도 한겨울 옷이 반값으로 세일 중이었어. 눈길이 가더군.


아들 녀석은 이것저것 골라 입어보고 몇 개를 챙기더라.

나도 괜찮아 보이는 옷이 몇 개 있었지. 아내가 입어보라고 해서 입어봤지. 그랬더니 "멋지다, 잘 어울린다" 하는 거야. 괜히 기분이 좋아지더라.


입어본 옷 들고 계산대로 향했어.

가격도 착하지 뭔가. 5만 원도 안 되는 겨울 외투. 이 정도면 뭐, 부담도 없고 아깝지도 않다 싶었지.


그런데, 계산대 앞에 줄 서 있다 문득 생각이 스쳤어.

"나, 겨울에 입을 옷이 없던가?"

옷장 안에 외투만 몇 벌이더라.

두꺼운 코트, 패딩, 점퍼, 심지어 잘 안 입는 것들도 떠오르더군.


"있지. 많은 걸 넘어서, 넘쳐나지."

"그런데도 또 사려는 건 뭐지?"

"싸니까? 어울려서? 지금 기분이 좋아서?"


그 순간, 이건 단순한 '지름신'이 아니라,

'낭비벽'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꼭 필요하지 않은 걸 사는 거,

기분에 취해 지갑을 여는 거,

지금 내 삶에 정말 필요한 건 뭔지를 묻지 않은 채 손부터 뻗는 거.


나는 결국 그 옷을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갖다 놨어.

아쉬웠지만, 이상하게 후련했지.


요즘은 새 옷 사는 일이 예전처럼 즐겁지가 않아.

그 옷 하나로 세상이 바뀌는 것 같은 그런 기쁨,

입고 거울 앞에 서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그런 설렘,

그런 게 이제는 잘 느껴지지가 않아.


지금 내 옷장에 있는 옷들, 평생 입어도 다 못 입을 것 같아.

지금 신는 신발들, 끝까지 닳도록 신기도 전에 내 수명이 다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 때가 많아.


마음이 늙은 걸까?

아니면 조금은 가벼워진 걸까?


이 여름밤, 겨울 옷 하나 놓고 참 많은 생각을 해봤어.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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