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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제주 여행

딸과 함께한 늦여름의 추억 만들기

by 글사랑이 조동표

짧은 제주 여행

- 딸과 함께한 늦여름의 추억 만들기


- 다시 만난 가족의 시간


해외에서 늦은 여름휴가를 얻은 딸이 귀국했다. 아내와 나는 딸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기다렸다는 듯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오로지 딸을 위한 발걸음이었다. 공주님을 위한 맞춤형 여행은, 이미 검증한 식당과 코스로 정하였다. 거기에 딸의 바람을 가미해서 아기자기한 즐거움도 선사하였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곳은 '마두천 칼국수집'. 뽕잎 칼국수에 전복, 보말이 듬뿍 들어가 있었고, 곁들인 탕수육이 의외의 조화를 이뤘다.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먹거리에서 출발하는 법이다.


점심을 마치고 월령리의 선인장 군락을 걸었다. 자생하는 선인장 사이로 빨간 백년초 열매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거친 바닷바람과 강한 햇살을 견뎌낸 과실들이 온실 속의 화초 같은 공주님께 교훈을 주었다. '예쁘게만 살지 말고 더 강하게 살아라!'



우리는 카페에 앉아 선인장 주스를 나눴다. 짙은 붉은색의 건강한 과즙이 입안에 맴돌았다. '쉴만한물가' 카페에서 바라본 바다 물결은 은비늘 물고기가 뛰노는 듯한 절경이었다. 조용히 명상에 잠기거나 책을 읽는 젊은이 틈에서, 나는 멍하니 바다만 응시하였다.


바다를 바라보며 모든 잡념을 없앤 장소.

이어 찾은 '제주바다목장'에서는 거대한 풍력발전기와 철제 조형 다금바리가 바람에 맞서 서 있었다. 바닷가의 ‘싱게물’이라는 돌담 남탕·여탕은 옛 제주 사람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해녀와 다금바리 조형물
마지막 사진은 해녀들을 위한 여탕.

곱게 물든 저녁놀을 보며 '광어다'에서 광어로 저녁상을 차렸다. 탕수어, 광어회, 미역국이 곁들여졌다.


광어다에서 바라본 저녁놀, 7시까지 먹어야 한다.

숙소는 성읍에 있는 ‘별다락민박’. 이름도 예쁜 민박집에서 첫날밤은 그렇게 조용히 스며들었다.


- 숲길에서 만난 위로


다음날 아침, 제주에 사는 친구가 낚시로 잡은 한치 세 마리를 선물로 문 앞에 두고 갔다. 두 마리를 넣어 끓인 열라면은 아침부터 바다의 향을 품게 했다.


한치를 넣은 깔끔한 열라면

숙소 앞마당 꽃과 나무를 감상하다가 '사려니숲길'로 향했다. 빽빽한 삼나무 숲, 이끼 낀 나무줄기, 피톤치드 향기가 온몸을 감쌌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듯했다.


별다락민박 마당의 꽃과 사려니숲 안내판.
삼나무로 뒤덮힌 치유의 숲.
빽빽한 삼나무 숲길, 사람 엉덩이를 닮은 모습도 있고 공룡의 앞발을 연상케 하는 밑둥도 재미있다.

점심은 송당파크의 '제이팜 정육식당'에서 차돌박이와 오겹살, 그리고 소맥 한 잔.


모든 고기가 입안에서 고소하게 녹는다.

오후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브리 감성이 가득한 '도토리숲 스튜디오'를 거쳐 '성이시돌목장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곳은 라테 맛과 분위기가 블루보틀의 감성과 닮았다고 한다. 고소하고 진한 우유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렸다.


도토리숲 스튜디오와 인근의 아이스크림 가게.

비가 뿌리기 시작하여 숙소 근처에서 가기 좋은 '김정문 알로에 농원'에 들렀다. 다양한 알로에 선인장을 구경하며 제주 농업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했다.


알로에 인생을 산 김정문의 혼이 깃들인 곳.

그리고 찾은 곳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버려진 국민학교 분교를 개조한 갤러리는 작가의 삶과 제주의 오름 사진들로 가득했다. 루게릭병에도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그의 눈빛이 작품에 남아 있었다. 두모악(頭毛岳), 한라산의 옛 이름을 붙인 이 갤러리는 제주의 빛과 바람, 그리고 인간의 고독을 담은 성소였다.


아담하면서도 느낌이 있는 갤러리.
마지막 사진은 방문객들의 소감을 적은 강상문집 모음. 나도 한 페이지를 장식했음.
제주의 바람, 빛, 오름.
국민학교 분교를 개조한 갤러리
무지개 사진이 이채롭다. 뛰어난 감성이 엿보이는 사진들.
제주에 가면 꼭 들를 갤러리 중 하나.

저녁은 친구가 선물한 한치를 데쳐 막걸리와 곁들였다. 아내와 딸은 런던보이스와 보니엠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오랜만에 가족의 리듬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 태풍 같은 날씨, 그리고 성산일출봉


셋째 날 새벽, 천둥과 번개가 쏟아지고 정전까지 이어졌다. 공포의 밤이었다. 육지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무서운 비바람, 하늘을 두쪽 내는 듯한 천둥과 벼락. 자연의 노여움은 곧 위대함이었다. 한없이 작은 인간은 그저 겸손해질 따름이었다. 칠흑 같은 정전의 순간, 신께 기도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새벽의 경보는 두려움과 공포.

그러나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쏟아졌다. 거짓말 같은 날씨였다.


제주의 날씨는 천의 얼굴이다.

딸을 위해 '성산일출봉'으로 향했다. 이곳은 다섯 번도 넘게 오른 곳이지만, 딸에겐 처음이었다. 강렬한 햇빛과 뜨거운 바람 속에서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너무 습하고 더워서 일출봉 등정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뭇개해안을 걸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성산일출봉은 외국인이 훨씬 많은 명소.

점심은 '명진전복'에서 전복돌솥밥. 해외 관광객들이 더 많았고, 식당 앞 바닷가는 푸른 바다와 흰 구름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이었다.


전복돌솥밥은 버터를 넣어 먹어야 !
해안가 절경이 일품.

오후에는 '스누피가든'에 들렀다. SN Garden이 에코 프렌들리 콘셉트로 만든 공간, 그리고 피너츠 IP를 정식으로 들여와 꾸민 정원이었다.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가 제주 자연 속에서 이어졌다.


만화는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

스누피는 단순한 만화 캐릭터를 넘어 상상력과 자유, 그리고 위로의 상징이었다.

만화 속의 짧은 문장 하나하나가 다 인생의 격언이었다.


짧은 명구가 삶을 일깨운다.

예전엔 입장료도 비싸고 어린이를 위한 장소로만 여겨서 지나쳤던 곳이다. 그런데 딸의 요청으로 들어가 보니 드넓은 곳에 마련된 완벽한 구성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만화의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어른들도 감동할만한 테마별로 구성된 야외가든을 제대로 즐기려면 적어도 세 시간은 걸리는 곳이다.


스누피가든에서는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 귀가


여행의 끝은 언제나 아쉬움이 묻어난다. 스누피가든 커피숍에서 쉬고, '덕인당'에서 보리빵을 산 뒤 제주시내로 향했다.


'어부도 식당'에서 신선한 회와 해산물로 저녁을 마치고 렌터카를 반납했다.


어부도 가격 상승! 맛은 그대로!

금요일 저녁 공항은 인산인해였고, 연착된 비행기를 간신히 타고 밤 1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제주의 비가 서울에도 내리고 있었다.


- 맺으며


이번 제주 여행은 단순한 휴가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귀국한 딸과 함께한, 가족의 시간이었다.


숲길의 향기, 사진가의 눈빛, 만화 속 강아지의 미소까지,

그 모든 풍경이 우리 세 사람의 추억으로 새겨졌다.

사려니숲길
김영갑 작가의 눈길
스누피가든 명언

이제 가을 억새를 보러 가야지!


벌써 억새가 우리 곁으로...
이번 여행의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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