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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Mar 22. 2024

나는 너의 오빠가 아냐!

호칭에 대하여

최근 우리나라 호칭에는 상당히 이해가 안 되는 어색한 표현들이 많이 있다.

이미 결혼한 지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편을 아직도 '신랑'이라고 부른다.


"우리 신랑은 요즘 뭐 뭐 하고 있어, 우리 신랑은 나이보다 젊어 보여"라는 이야기가 곧잘 귀에 들린다.

아니 신랑이라니?

결혼할 때만 신랑이지 지금은 그냥 남편 아닌가?


결혼한 지 30년이 흘렀어도 신랑이라는 말을 아무 스스럼없이 발언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 직장에서도 기혼 여직원들끼리 떠드는 소리에서 신랑이 여러 번 등장해서 실소를 머금은 적이 많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자기 부인을 신부라고 호칭하는가? 천만에, 절대 그러지 않다.

우리 부인 또는 우리 아내, 우리 마누라, 우리 와이프, 또는 우리 집사람 이런 식으로 호칭을 할망정, 우리 신부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젊은 부인들의 경우에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거나 또는 '오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말을 엘리베이터에서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는데 분명 남편인듯한 남자에게, "아빠 오늘 뭐 먹을 거야?" 또는 "오빠 우리 뭐 먹을까?"라고 묻는다.


애의 아빠이고 연애 시절의 오빠이지, 자기 남편을 그렇게 호칭하면 안 된다.

본인은 그게 자연스럽고 남들이 귀엽게 봐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습관일까?


식당에 가서 일을 도와주는 아줌마에게 '이모'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다.

"이모님 여기 반찬 모자라니 더 갖다 주세요, 이모! 여기 얼마예요?"

아니 이모라니?


실제 엄마의 자매는 식당에서 일하지 않는데 어째 이모라고 부르는 것인가? 의아한 적이 많았다.

나는 그냥 '아주머니!' 하며 부른다.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가면 종업원들이 나에게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게 되는데, 굉장히 머쓱해진다.

아저씨라고 부르면 맞을 것 같은데 아버님이라 부른다.

나는 그 종업원의 아버지가 아닌데...


또는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내가 아직 사장이 아닌데도 사장님이란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사장님, 이 옷 정말 어울리세요!"


아니 옷 한 번 사러 갔는데 내가 순식간에 그 종업원의 아버지가 되고 회사의 사장님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아내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을 때도 옷을 골라 주는 종업원이 '어머님'이라 부르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아직 며느리를 보지 않았으며 물론 사위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백화점에서 아버님 어머님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웃기는 일이다.


해외 출장지에서도 나에게 어설픈 한국말로 "오빠(oppa) 출장 왔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우스꽝스럽다. 비즈니스 트립(출장)을 온 '오빠'라고 하는 것이다.  

유독 오빠라는 단어만 우리말로 강조한다. 

아마도 한국 드라마나 K-Pop을 많이 좋아하나 보다. 여기서 오빠는 한류의 여파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성인 남자에게는 다 오빠라고 표현하는 듯, 두루뭉술하게 쓰인다.

아니 오빠라니...

나는 해외에 너 같은 여동생을 둔 적이 없어.


중국에서 일했을 때, 내 이름자 끝 한자에 형이라는 뜻의 글자를 붙여서 나를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 호칭을 부르면서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그 뜻은 내가 '사촌 오빠'라는 것이다.


사촌 오빠라...

그러니까 우리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여자가 어떤 남자와 데이트를 하다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과 마주쳤을 때, "그 남자 누구니?"라고 들으면 "어, 우리 사촌 오빠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 않은가 말이다. 주로 그런 경우에 쓰는 의미라며 웃어댔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중화권 여직원들의 사촌 오빠가 될 수 있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언어가 많이 파괴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기묘한 형용사를 만들어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명사 두 개를 연이어 붙여서 형용사처럼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5월이 되면 '초록초록하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파릇파릇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어도 초록초록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순진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순진순진하다' 또는 '순딩순딩하다'라고도 한다.


심지어 여성스러운 사람에게 '여성여성하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홈쇼핑에서 쇼호스트들이 그런 말을 즐겨 사용한다.

"이 옷을 입으면 여성여성해 보입니다. 진짜 여성여성하게 보여요..."


이런 말을 과거에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요즘 언어 파괴가 상당히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지 않나라는 걱정이 든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글사랑이'로서 많이 걱정하고 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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