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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edere Aug 09. 2020

당신에게 전달되는 나의 진심

힐링'Healing' 그리고 내가 채워지고 되어가는 이야기

저는 통증을 다루는 신경외과 전문의입니다. 

신경외과 의사라 하니 조금은 딱딱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사연을 안고 저의 외래를 찾습니다. 

물론 대부분 어딘가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며 들어오시지만 

단연코 비단 통증만이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이해해주길 원하며 

아픈 원인이 자신의 몸인지 마음인지 혹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인지를 알아봐 주길 원하는 것이지요. 


한 번은 디스크가 파열되어 1년 전 타 병원에서 비수술 치료를 한 50대 남성이 외래를 찾았습니다.

당시 극심했던 통증은 해결이 되었지만 파열된 디스크에 의한 신경 압박으로 

치료 과정에서 허벅지의 마비가  진행되었지요. 

통증은 좋아졌으나 힘 빠짐으로 인한 보행이 꽤나 불편해진 상황에서 

파열되어 흘러나온 디스크는 다행스럽게 녹아 흡수되었습니다. 

결국 통증도 디스크도 없어졌으나 허벅지의 근위축과 절뚝임만은 남은 상황에서 마음은 심란합니다.

결국 남은 보행장애는 반복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옥죄어 갔지요. 

차라리 다른 병원에서 권유받았던 수술을 했어야 하나 후회가 물밀듯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황망한 심정을 가지고 내원을 하여 그간의 심정을 토로를 합니다. 

모든 상황이 얼마나 원망스럽겠습니까. 


그렇게 저는 그분께 조심스럽게 설명을 시작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후회스러우시지요.
혹은 시술을 담당했던 주치의가 원망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고 가재가 게 편을 드는 거 아니냐고 오해하지 마시고 제 얘기를 들어보세요. 
다행히 지금 결과는 최선은 아닐지라도 준수한 결과입니다. 
시술해도 터진 디스크가 그대로 굳어지기도 하고 디스크가 더 터질 때도 있으며 통증도 변함없이 고통스러운 경우가 있습니다. 
거기에 힘 빠짐이 더해질 때 도 있고 시기를 놓쳐 수술해도 모든 게 제대로 잡히지 않는 최악의 상황도 있지요. 지금의 결과가 얼마나 다행입니까.
지금은 다시 수술하지 않아도 되고 통증도 없으며 완전 마비도 아닙니다. 
충분히 희망을 가지고 재활운동에 집중하세요.
지금보다 분명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거주지가 멀어 연고지 재활병원을 연계해 드렸습니다.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희망적인 말 한마디에 눈시울을 붉히며 연신 고마워하시며 절뚝이지만 다소 가벼운 발걸음으로 외래를 나서십니다. 그 날 바로 재활 병원에서 환자분이 오셨다고 연락을 받기도 했지요.

단순 위로가 아닌 실제 의학적으로 회복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정도의 마비였기에 더욱 희망이 있었고 결국 진실을 마주한 환자는 그간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실현될 수 있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비록 처음 만난 자리지만 부끄러움 없이 고이는 뜨거운 눈물의 말없는 진심이 나를 가득히 채웁니다. 


이번엔 심한 협착증으로 제게 내시경 감압 수술을 받은 60대 아버님이십니다. 

수술 후 경과가 좋아 지긋했던 오래 걷지 못하는 신경성 파행 증상이 거의 개선이 되었는데

어느 날 일을 하고 허리가 뻐근하다며 외래를 찾아오셨습니다.  

아직 충분히 안정이 되지 않은 시기이기에 무슨 일을 하시느라 그러셨냐며 집요하게 캐어 여쭈었더니 

수십 마리의 유기견을 돌보신다고 합니다. 

그동안 통증으로 마음껏 살피지 못했는데 수술 후 편해져 그간 못준 정이 더 쏠리더랍니다.

허리 보조기를 하고 개밥을 주고 개똥도 치우며 자신 아니면 돌볼 사람이 없으니 

자식 살피듯 아끼다 그랬다며 멋쩍어하십니다. 

아뿔싸 마음 한편이 뭉클합니다. 

오히려 아버님의 상황을 미리 깊이 살피지 못한 저의 불찰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꼭 해야만 하시는 일이기에 개사료를 나를 때 개똥을 치울 때의 자세들을 함께 살피며 최대한 허리에 부담 없이 일을 할 수 있게 자세 교육을 합니다.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에 미물을 아끼는 그 진실된 마음이 전해져 나를 따스히 채웁니다.  


이렇게 외래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사연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처음 만난 낯선 이의 삶이 드러나게 됩니다. 

서로 눈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얼굴 속 잡힌 주름에 얽힌 사연과 인생을 어렴풋 짐작할 수 있지요. 

'동물농장'의 작가로 유명한 조지 오웰은 '나이 50이 되면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얼굴이 된다' 라 말했죠. 

외래를 방문하는 주된 연령층이 50대 이상임을 감안하면 그간의 삶이 온전히 드러난 얼굴을 저는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은 즉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 노래합니다. 

이 어마어마한 일이 매일같이 제 외래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배움과 감동이 있을까요. 



제 외래의 풍경은 매일같이 다릅니다.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아픈 할머님을 걱정하는 가족들이 외래를 가득 채울 때 가 있습니다. 

부용이 부담된다며 한사코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님을 애써 설득하는 아들 형제들의 실랑이를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외래로 들어오실 때 나가실 때 두 손을 꼭 잡고 다니시며 더 아프게 느껴지는 상대방을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노부부를 뵐 때가 있습니다. 

또한 부모의 자식 치료에 대한 과한 적극적인 참견을 말리고 치료의 고삐를 당겨야 할 때가 있고 

혹 부모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자녀의 입장과 그 경제 상황을 배려하여 치료의 완급을 조절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느 날 제 외래 할머님과 손주가 나란히 한걸음씩 발을 떼며 병원을 나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가만히 뒤에서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할머니의 불편한 허리에 보조를 맞추어 두런두런 얘기를 하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잡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일 테니까요.  

사랑과 존경 배려가 가득한 분들을 뵈며 가슴이 따뜻해 짐을 느낄 수 있는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진료를 볼 수 있다는 이 감사함이 또 나를 채워갑니다.  

진료실내 가능하면 환자라는 호칭은 삼갑니다.  

환자라는 단어가 반복될수록  질병 근심 재앙 우울 염려를 담은 '환(患)'이라는 글자가 마치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어머님 아버님 할머님 할아버님 혹은 직업이 있다면 직함에 맞는 선생님 교수님 심지어 *라뽀(rapprot)가 좋다면 퇴직을 하셨어도 가장 높은 위치 속된 말로 잘 나갈 때의 직함을 물어 불러드리기도 합니다. 

따스히 가족처럼 부르기도 하고 깍듯이 경어를 사용해 부르기도 하며 진료실내 분위기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고 편안한 호감을 사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려 합니다. 

때론 몸서리 쳐지는 고통을 온몸으로 위로하고 

때론 가슴 아픈 사연에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어느 날은 종일 토록 큰 웃음소리가 진료실을 가득 메우는 

단 한순간도 비움이 없는 가득 찬 공간 속에 스며져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외래를 보다 보면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말을 많이 해야 하고 

혹은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기다리는 아픈 분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저에게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일 수 있지만 상대방은 저와 일대일의 관계이기에 

행여나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줌에 놓치는 게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문제를 찾아내고 치료를 병행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바쁘게 진료를 보고 수술을 병행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고 하루를 정리하게 되지요. 

오늘 하루 환자의 마음을 여유 있고 진솔하게 들어주었을까?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심신의 위로를 해주었을까? 

나에게 되물으며 그리고 또 그렇게 다시 아침을 맞이 합니다.  


혹자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이 반복되는 삶이 따분하게 느껴지지 않나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매일 새로이 찾아오는 한 사람의 일생들이 있는데 얼마나 경이롭겠습니까? 

그렇기에 나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인연들을 위로할 준비가 되었는지 매일 나를 돌아보고 다짐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치유하다 보면 제가 힐링(healing) 되고 채워집니다. 

나의 존재된 이유를 찾게 되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그것은 나와의 인연을 맺는 당신으로부터 인함입니다. 

당신 덕분에 의사라는 직함에 자부심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제가 채워지고 제가 되어가는 시간들이 그려지시나요? 

무엇이 되어가는지는 독자분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습니다.  

분명 몸과 마음 심지어 머리까지 고된 힘든 직업이지만 매일의 새로운 이런 감사한 채워짐에 

오늘도 미소지으며 하루를 맞이합니다. 





*라포르 [프랑스어] rapport 명사

라포, 라뽀

두 사람 사이의 공감적인 인간관계. 또는 그 친밀도. 특히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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