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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Oct 05. 2022

엄마도 이방인이다

타국에서의 잊힌 삶



우아하고 윤택한 삶

 

배우자의 해외지사 발령으로 외국생활을 한 사람들을 두고 떠올리는 이미지는 이렇지 않을까? 생활전선에 뛰어들 필요도, 아이들처럼 학교에 적응할 필요도 없는 삶. 외국 가구와 그릇을 사들이며 이따금씩 쿠킹클래스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행복이 보장된 유유자적하고 부러운 삶. 물론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을 하거나, 학교에 적응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외국생활은 생각만큼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이방인이라는 현실에 부딪혀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나의 엄마도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매일 열심히 견디며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학교 다니기 바빠 아버지와 내가 집에 없는 엄마의 하루를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친구도 가족도 없는 타국에서의 시간이 몹시나 힘들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인터넷도 메신저도 없는 90년대엔 국제전화요금 때문에 안부 연락도 짧게 끝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데도 그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조차도 없었을 갑갑한 삶. 그럼에도 아이가 한국에 돌아와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책임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엄마들의 삶은 결코 매일같이 즐겁지만은 않을 거라 짐작해본다.


    나의 엄마의 경우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엄마가 독일어 전공자라는 점이었는데, 독일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시민대학 Volkshochschule'에서 독일어 수업을 들었고 독일 전통요리, 베이킹 클래스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독일에서 운전면허시험을 보고 주중에도 나와 함께 어디든 자유로이 다녔다. 그래서 아마도 엄마가 느끼는 어려움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따금씩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엄마의 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일 때가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 대부분인 독일 날씨 탓인 걸까? 독립적이었던 엄마는 유난히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고 그럴 때면 나는 엄마와 함께 시내에 나가 구경을 하고 카페에 앉아 엄마는 커피를 마시고 나는 딸기 케이크를 먹었다. 가구를 보러 갈 때도 함께였다.

 

   엄마와 나는 종종 늦게 퇴근하는 아빠를 픽업하러 시내까지 나갔는데, 운이 좋을 땐 사람들이 모두 퇴근하고 없어 사무실에서 국제전화로 할머니의 목소리를 조금 더 오래 들을 수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좋지?



할머니는 엄마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셨고 엄마는 할머니에게 즐겁게 잘 살고 있다고 안심시켜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는 늘 "응 그럼 너무 좋지"라고 대답했으니까. 그리운 목소리를 듣고 돌아오는 차 안에는 적막이 흘렀고 엄마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외롭다는 말을 삼켜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결코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견뎌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이민이나 유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반짝이는 것 같아 보이는 삶 뒤에는 언제나 그리움이라는 그림자가 있다고. 엄마 또한 이방인으로서 견뎌야 하는 삶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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