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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Sep 23. 2022

평생의 트라우마

후회막심 Maxim

한국에선 이 빠지는 꿈을 두고 '부모나 가족을 잃는 꿈'이라 해석하지만, 정말 그 꿈이 맞았더라면 내 가족과 친척들은 아마도 지금쯤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나는 두 종류의 악몽을 꾸는데, 하나는 자동차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거나, 브레이크 페달에 발이 닿지 않는 꿈이요, 다른 하나는 빠지거나 부러진 이빨을 끼워 넣거나 붙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꿈이다. 삶을 살아오면서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 생각해 특별히 원망하는 사람은 없지만 굳이 원망하는 딱 한 사람을 꼽으라 한다면 나는 내 평생 악몽을 꾸게 해 준 한 사람을 꼽을 것 같다.


후회막심 Maxim


초등학생 시절 거닐었던 길목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구글맵으로 학교 주변 거리를 찾아보았다. 분명 우리나라였다면 길거리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겠지만, 거리뷰를 보며 나는 쉽게 옛 기억을 되뇔 수 있었다. 등굣길을 쭉쭉 스크롤해 보았고, 학교 정문과 울타리가 보였다. 분명 이곳에서 내 평생 후회할 일이 벌어졌고 그 사건은 30 중후반이 된 지금까지 내 소중한 주말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 난 그 울타리에 부딪혀 앞니를 잃었다.

한국과는 달리 독일은 쉬는 시간에 교실 문을 닫는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운동장에 나와 술래잡기를 하거나 피구를 하곤 했는데, 한동안 우리는 둘이 짝을 지어 서로에게 의지하는 놀이를 했다. 한 명이 눈을 감고 앞으로 걸어가면 나머지 한 사람이 멈출지 앞으로 갈지 등 지시사항을 주는 놀이었다. 나는 '막심 Maxim'이라는 친구와 짝이 되었는데, 그 친구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지시 사항을 주며 게임을 재미있게 해 주었다. 아마 그날도 친구는 큰 재미를 주려 했던 것 같다. 내가 눈을 감고 한 발짝 한 발짝 나가고 있었는데 아무런 지시사항이 없었다. 그러다가 몇 발을 더 디뎠을 때쯤 막심은 재빨리 "슈톱! Stop!"이라고 외쳤고 나는 그 소리에 재빨리 멈췄지만 '덩!' 하는 소리가 났고 난 울타리에 부딪혔다. 친구들이 모여들어 나를 둘러싸더니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막심은 담임 선생님을 불러 나를 교장실로 빨리 데려갔고 그제야 나는 사태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나를 욕실에 데려가 입을 닦아주었는데, 거울에 보이는 내 입에선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앞니가 반으로 댕강 부러져 있었다. 평생 영구로 살 자신이 없었던 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때 친구는 미안해하며 내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연락을 받은 엄마는 사색이 되어 교장실로 들어왔고, 선생님이 연락을 해둔 치과에서 즉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일이 발생한 뒤 부모님들에겐 아이들의 놀이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가정통신문이 배부됐고, 그 놀이는 금지됐다.


막심은 내게 매일 사과를 했고 나는 거의 한 달가량을 그 친구와 말하지 않았다. 내게 가장 오랜 기간 진심 어린 사과를 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건 막심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과 옛날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 친구 이름을 기억하며 '후회막심'이라 농담을 하곤 한다. 치과 의자에서 진료를 볼 때도 난 그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일 있을 앞니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아마도 내일 그 친구를 떠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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