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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Sep 27. 2022

자전거 곡예를 펼치다

두루미에게 납작한 접시를 주지 말라


<여우와 두루미>라는 우화는 심술궂은 여우가 두루미에게 일부러 납작한 접시에 담긴 수프를 내어주는 데에서 시작된다.




독일 생활을 하면서 난 독일인으로부터 뚜렷한 차별을 경험해본 적은 없었다. 동양인이라고 놀려대던 아이들이 몇 있었지만, 놀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건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놀림에 대한 내 감정은 불쾌감이라기 보단 성가시다 표현하는 편이 더욱 정확하겠다. 상대가 나를 딱히 슬프게 한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난 왠지 모를 불편한 시선을 받았던 경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게 불편함을 주었던 것은 아이가 아닌 한 어른의 시선이었다.


어릴 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던 찰나의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나이가 차면서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때가 온다. 초등학교 자전거 교육시간에 겪었던 일이 그랬다. 그 일은 어떻게 보면 큰 일은 아니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나는 그 일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경찰서에서 주관하는 자전거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는데, 학교에 자전거 강사를 초빙해 진행했다. 한국 아파트 단지를 쌩쌩 달리며 광란의 질주를 즐겼던 나는 두 발 자전거를 마스터한 지 오래였다. 한국에서 올 때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사주신 자줏빛 핑크색의 자전거를 가져왔는데,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그 자전거를 타고 집 주변을 숲 속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다. 독일에선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야 했기에 포카혼타스 그림이 그려진 청록색 헬멧을 쓰고 포장도 되지 않은 집 주변 숲길에서 광란의 질주를 이어갔다. 교실에서 배운 몇 가지 규칙만 준수하면 됐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에 능숙했던 난 학교에서 자전거 시험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실기수업에서 난 자전거를 제대로 탈 수 없었다. 강사가 준비한 노란 자전거들 가운데 내 키에 맞는 것이 없었다. 자전거를 한 사람당 하나씩 배정을 받았는데 자전거의 안장이 너무 높아 발이 닿지 않았다. 페달을 겨우 밟는 정도여서 안장에 앉을 수 없었고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노란 바탕에 붉은 무늬가 찍힌 촌스러운 자전거는 내게 맞지 않았다. 나는 그 자전거를 타고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자전거 교육은 어렵지 않아 왼쪽으로 틀기 전엔 왼손을, 오른쪽으로 틀기 전엔 오른손을 뻗어 나의 방향을 알리는 것과 주변을 살핀 뒤 방향을 전환하는 것 등이 전부였지만 까치발을 한 채로 페달을 밟으며 중심을 잡기에 급급했던 나머지 교육받은 것을 실전에 적용할 수가 없었다. 강사 선생님은 내 자전거 실력을 지적했다. 도무지 이 자전거로는 안 되겠다 싶어 혹시 내 자전거를 가져와도 될지 강사 선생님에게 물었지만, 그 선생님은 귀찮다는 듯 싸한 표정을 짓더니 반드시 이 자전거를 써야 한다며 다그쳤다. 그렇게 나는 내 몸에 맞지 않는 자전거를 탄 채로 아슬아슬한 자전거 곡예를 펼치며 시험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발끝에 페달이 겨우 닿는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다리가 닿지 않아 중심을 잡기도, 페달을 밟기도 힘들었지만 나는 안장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 곡예를 펼쳤다. 그렇게 나는 겨우 시험을 치르게 됐다. 그리고 좌회전 커브를 틀며 선 밖으로 나가게 됐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 좌회전 커브를 돌 때 수신호를 잘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별 의미 없는 시험이었지만 뭐가 됐든 좋지 않은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께름칙했다. 분명 내 소중한 분홍 자전거를 타고 시험을 봤다면 이리저리 제때 수신호를 하며 날쌔게 커브를 틀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좌회전시 문제가 있다는 평가


단기교육이었기 때문에 교육을 받는 내내 큰 이벤트는 없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그 상황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내 요청을 거절하던 강사 선생님의 냉정했던 그 눈빛은 아직도 기억난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은 속일 수 없으니까. 어른이기에 감춰둔 마음이 눈빛과 행동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난 것이겠지. 그 당시 나는 선생님의 지시였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나는 그때의 상황과 강사의 표정을 기억한다. 다른 아이들의 안장을 키에 맞춰주었으면서 왜 나의 안장은 줄여주지 않았는지 곱씹어보았다. 물론 어떤 조건에서도 자전거를 잘 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 수업과 그 성적이 두고두고 아쉽다.


여우에게 초대받은 두루미. 두루미에게 접시에 담긴 수프를 대접한 심술 맞은 여우. 높은 안장에 앉지도 못한 채 페달을 동동 굴러가며 시험을 봐야 했던 나는 어쩌면 접시에 놓인 수프를 대접받은 두루미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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