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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Oct 11. 2022

선행학습을 하지 말라고?

보조바퀴 떼고 달리기

    두 발 자전거를 타기 전, 아이들은 안전을 위해 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달고 다닌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보조바퀴가 오히려 커브를 틀거나 쌩쌩 달리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전거 보조바퀴를 떼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잡아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보조바퀴가 없으면 균형감각이 없으니 흔들리는 자전거를 잡아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언젠가 흔들리는 자전거의 균형을 스스로 잡게 되고, 온전히 자신의 균형감각을 믿으며 자유로이 쌩쌩 달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90년대 우리나라에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성적, 그리고 수행평가를 통해 학생을 평가했다면, 독일에선 시험성적과 수행평가 외에도 학생의 수업 참여도를 통해 학생을 평가했다.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발표하는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이다. 얼마나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졌다. 그래서 나와 욕심이 있는 같은 반 아이들은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수업에 귀를 기울이며 발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팔이 빠져라 손을 들었다. 손을 든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손가락으로 탁탁 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런 행동들은 무례한 것이 아닌 적극성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발표만 한다고 능사는 아니었다. 정답을 맞혀야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독일어로 된 주관식 수학 문제에 늘 어려움을 느꼈다. 나의 경우 문제를 풀 수는 있었지만,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걸려 재빨리 발표를 할 수가 없어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반드시 선행학습이 필요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기 전해 선행학습을 해가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고. 독일에 가기 전 나는 1년 치 선행학습을 꾸준히 했기에 수업을 듣기 전에 예습을 해가는 것이 크게 문제 될 일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미리 읽고 문제를 풀어갔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독일어 과외선생님께 물어봤다. 그렇게 난 예습을 통해 발표를 더 잘할 수 있었다.


예습하지 말렴 Du sollst nicht vorlernen


    그러던 어느 날 수학선생님이 수업이 끝난 뒤 나를 따로 부른 뒤 선행학습을 하면 안 된다고, 문제를 먼저 풀어오면 즐겁지 않을 것이라 단호히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선행학습을 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지 궁금해했다.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면 즐겁지 못한 것 아닐까?


    선생님의 말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선생님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더 궁금해했다. '내가 문제를 너무 빨리 풀었던 걸까?' 아니면 '미리 문제를 풀었던 것을 눈치챘던 것일까?'. 하지만 나는 좋은 성적을 받고 싶은 마음에 선행학습을 더 열심히 해갔고, 적당히 눈치를 보며 발표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교과서에 없는 문제를 준비해오셨다. 정답을 맞히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표정이 굳어지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새로운 문제를 하나 둘 스스로 풀어갔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었다. 더는 내게 문제를 풀어주는 사람도,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보조바퀴를 뗀 두 발 자전거를 몰듯, 나는 스스로 문제를 술술 풀어나갔다. 그렇게 난 시간에 맞춰 문제를 풀어 손을 들었고,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발표 기회를 주셨다. 그때 나는 선생님이 말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나 자신을 믿는 것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중요한 것은 좋은 성적보다 결국 스스로 일어서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닐까? 아이가 수학 문제 몇 개를 더 맞추는 것보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더 큰 힘이 되어줄 테니까. 독일 수업에서 선행학습은 더는 필요 없었다. 언제까지나 불필요한 보조바퀴를 달고 다니며 자전거로 쌩쌩 달리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어린이로 머물 필요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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