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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Oct 24. 2022

이방인이 보이는 집착

현실을 보지 못하다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유달리 고국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런 아이 가운데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난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불필요한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언제나 모범적인 면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난 절대 금발머리 아이들에게 주눅 들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행동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잘 봐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서 모두의 모범이 되는 한국인이 되려고 매일 애썼다.


슈트레버 Streber


몇몇 친구들은 나를 이렇게 놀리곤 했다. 슈트레버는 과도하게 열심히 공부에 집착하는 아이들을 놀리는 말이기도 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내 독일 친구들은 너무나 순수해서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다만 나 혼자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독종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모든 한국인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긴장하며 모든 것을 잘 해내는 사람인 것처럼 매사에 애쓰고 지냈지만 그건 사실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라고 할 순 없었다.


   나는 종종 잘하는 것이 있으면 한국인이라면 다 잘한다고 말하고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하면 친구들에게 짜증을 냈다. 남들 눈에는 지나치게 한국인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독종 같아 보였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왜 그토록 매일같이 되뇌며 지냈을까 싶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체성이 확립된 성인이 아닌 이상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나의 ‘다름’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한국’이라는 범주에 드는 내가 그리워하는 친구들, 친척들, 무엇보다도 고향에서의 일상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어린 나만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친구들에게 나는 한국인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친구들의 일상이  새로운 친구였으며  국적이나 피부색은 전혀 상관없었다. 친구들에게 나는 말이 통하고 쉬는 시간에 같이 공놀이를 하고 빵을 나누어먹으며 함께 웃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친구들은 나를 동양인이나 한국인이 아닌 ‘ 사람으로 대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나를 ‘ 사람이기 이전에 한국인으로 대했던 것이다. 그도 어쩔  없는 일이었지만 그리움 때문에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눈앞의 독일 친구들을 한동안 제대로 보지 못해 현실을 살지 못했다는 데에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은 편견 없이 나를 아껴주는 친구들이 있는 독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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