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면 되게 할 필요가 없다
안 되면 되게 하라
'하면 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이 문장들 덕에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더 억척스럽게, 악착같이 살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난 이 문장들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독일 학교생활에 적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수업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놀라곤 한다. 대부분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독일어 시간을 가장 어려워했을 거라 짐작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독일어 시간을 즐거워했다. 물론 처음 적응할 즈음엔 독일어를 읽고 쓰는 것이 느려 수업을 따라가기 버거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언어를 자연히 습득할 수 있어 매일 발전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언어장벽은 쉽게 허물어졌다. 하지만 나는 언어장벽이 아닌 다른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모든지 잘할 수 있다고 믿으며 열심히 해왔던 어린 내게 가장 큰 장벽으로 다가왔던 것은 '언어'도 아닌 타고난 '체격차'였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던가?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할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수업을 박차고 나온 적이 있다. 체육시간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을 달리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선두에 설 수 없었다. 빨리 달리기는커녕 따라잡을 수도 없었다. 함께 달려주던 친구와도 점차 거리가 벌어졌고 나는 점차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꼴찌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대열에서 이탈해 완주를 포기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체격차를 인지하기엔 너무 어렸던 데다 승부근성마저 대단한 나머지 몇 날 며칠 불만에 가득 차 씩씩댔고 수업 때마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운동장에 홀로 앉아 열심히 달리는 친구들을 구경하기만 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같이 걸어가는 친구가 낯설어 보였다. 친구는 나와 대화를 하기 위해 고개를 비스듬하게 숙이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나와 키가 비슷비슷했던 친구들이 어느새 부쩍 커버렸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 그제야 난 방학이 끝나고 오래간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이 걸을 때 왜 빨리 걸으라 했는지, 함께 보조를 맞춰 걷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체격이 작은 동양인이 건장한 체격을 타고난 게르만족을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함께 뛰는 것조차 버거운 것은 당연했다. 그때 난 처음으로 욕심을 내려놓았다. 특별히 가장 잘할 이유도 없었다. 타고난 체격을 바꾸는 것은 내 영역 밖의 일로 여겼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 만으로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