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별: 친구야 언젠가 다시 만나자

예정되어있던 이별일지라도 아프다

by 생각여행자

한국에서 떠나올 때 친구와 작별인사를 해봤기에 독일을 떠나가는 두 번째 작별인사는 쉬울 거라 생각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던 날, 한 친구가 떠나는 길을 배웅해주었다. 그 친구는 같은 동네 친구로, 매일 등하굣길을 함께했던 친구였다. 약속한 적 없었는데도 친구와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각 정류장에서 만났고, 돌아오는 길도 늘 함께였다.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중-고등학교기관)에서 쭉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나는 수업이 끝나면 종종 아이스크림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입에 물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다정다감한 스타일이라기보단 묵묵하고 똑 부러지는 잔소리쟁이 스타일이었지만 그 친구와 함께하는 생활은 숨 쉬듯 자연스러웠고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 같았단 것은 확실했다. 단 한 번도 난 그 친구가 없는 등하굣길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니까.

나는 학교에선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다가, 하굣길에 종종 감정을 참지 못해 눈물을 펑펑 흘리곤 했는데, 그래서 오직 그 친구만이 내가 한국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시험문제를 다 맞히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분노한다는 사실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많아 답답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친구들은 나를 시크한 동양인쯤으로 알고 있었겠지만, 그 친구만큼은 내가 학교에선 강한 척하면서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도 둔다는 사실과 내가 눈물도 욕심도 많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만큼은 나를 울보라고 불렀다. 그 친구는 내 독일 생활을 평탄하게 지켜준 언니 같은 어른스러운 존재였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철없고 순순한 초등학생 시절을 함께 보냈으며,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맞이했다.

친구는 내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나와 함께했다. 참 신기했다. 함께하니 그 길이 여느 학교 가는 길과 다름없이 느껴졌다. 그런데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려고 마주 보는 순간 그간 함께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덜컥 겁이 났다. 이제 매일 함께했던 학교길을 다시는 함께 걸을 수 없다.


다시는 못 보면 어떡해?

단 한 번도 난 그 친구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공항까지 무덤덤하게 동행했던 친구의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확실히 이별에는 준비라는 것이 없다. 내가 언젠가 독일을 떠날 거라는 것은 친구도 나도 이미 만나던 순간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우린 모두 준비되지 않았다. 난 평소와는 다르게 친구 앞에선 이상하리만큼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곧 눈물을 터트릴 것 같았지만 한국에 가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말하며 웃어 보였다.


뒤를 돌아보면 다시 만날 수 없대!

친구가 울며 내게 말했다. 나는 쿨한 척 일부러 입꼬리를 올리며 씩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엄마와 함께 씩씩하게 출국장으로 걸어갔고 친구의 말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눈물이 흘러서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고 표현해야 좀 더 정확하겠다. 혹시나 다시 볼 수 없을까 싶어 돌아볼 수 없었다. 귀국행 비행기 창가석에 앉아 나는 비행 내내 펑펑 울었다. 그렇게 25년가량의 세월이 흘렀고, 난 그 친구를 다시 보지 못했다.


SNS가 생기고 나서 나는 독일 친구들을 찾아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지만 그 친구만큼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 친구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이따금씩 독일에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 친구의 소식이 늘 궁금하다. 성장통을 함께 겪었던 나의 오랜 친구는 아마도 어디에선가 나처럼 잘 지내고 있겠지?


- 우린 분명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