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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Sep 23. 2022

바이올린 레슨

못해도 좋아할 수는 있다



오후 3시가 되면 우리 집엔 기괴한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음을 내선 안 되는 시간인 '미탁스루헤 Mittagsruhe'가 오후 1시부터 3시까지였는데, 고요함을 유지해야 하는 그 시간이 지난 뒤 바로 바이올린 레슨이 시작됐다.


악기를 하나쯤은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생각에 나는 바이올린을 배우기로 했고,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한국인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수많은 음대생들이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 선생님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 만난 선생님은 연예인처럼 예뻤다. 언제나 화려한 보석 장신구를 하고 오신 그 선생님은  똑단발을 하고 있는데도 빛나는 얼음공주 같았다. 살면서 만나본 가장 예쁜 언니였지만 언제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가 틀릴 때마다 선생님의 미간은 더욱 깊게 파였는데 아무래도 내 기괴한 바이올린 소리가 그 선생님의 심기를 더욱 건드리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바이올린을 잡는 법부터, 소리를 내는 방법까지 천천히 알려주었지만 도무지 예쁜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음을 정확히 내려면 손가락에 힘을 줘야 하는데, 새끼손가락 마디가 짧아 손가락을 도무지 정확하게 짚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할 때면 선생님은 내 새끼손가락을 바이올린 현으로 탁 치곤 했다. 선생님은 내게 소질이 없다고 했다. 조금은 분했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예쁜 선생님에게 사정이 생겨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새로운 선생님은 통통한 체형에 곱슬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고, 검정 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비올라와 바이올린을 양 어깨에 메고 있었다. 예뻤던 선생님과는 너무나 다른 선생님이 와서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는 그 새로운 선생님 덕에 바이올린 음색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날, 나는 바이올린 소리도 예쁘게 나지 않아 수업이 너무 힘들다고 투덜댔는데 선생님은 내게 할 수 있는 곡을 혼자 연주해보라 했다. 새로운 선생님의 수업에 큰 기대감이 없었던 나는 하기 싫은 연주를 눈을 굴려가며 억지로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연주 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게 들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비올라로 화음을 넣어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현악기 소리에 매료됐고, 그 후로 악기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음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선생님이 오는 바이올린 레슨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물론 그렇다고 연주를 잘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더욱 적극적으로 자주 기괴한 바이올린 소음을 만들어내게 되었을 뿐 실력은 늘지 않았다.


예쁜 선생님의 보는 눈이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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