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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1. 2021

프롤로그

스물다섯 살 어른이와 아홉 살, 열두 살 어린이의 만남

나는 여전히 스물다섯이라는 나이가 벅차다.


나를 돌보는 일에도 서툰 내가 나보다 어린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시작되듯, 아이들과 나의 시간도 그렇게 갑작스레 시작되었고 어느덧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이 책은 그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 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서툴다.

아직 많은 것에 서툰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를 돌보며 알게 된 것은,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나를 돌본다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로 시선이 향할 때 그 시선은 결국 다시 나에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아이들의 표정,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동시에 아이들에게 크고 작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 나의 표정, 행동을 함께 돌아봤다. 그렇게 아이들을 살폈던 시간은 나를 살피고 되돌아보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아이들이 더 많이 나를 돌봐주었고 살펴주었다.


아이들 덕에 어디에서도 어른인 적이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들은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주 사소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를 가장 기쁘고 설레게 해 주었던 수많은 작은 것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너무 오래 잊고 지내 사라진 줄 알았던 소중한 기억들이 아이들과의 시간 속에서 다시 깨어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했고 직관적으로 느꼈다. 경직된 인간이었던 내가 헐랭 해질 수 있었다. 가장 나다워질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 덕분에 나는 간신히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갔다.


스물다섯, 지금의 나는 아이들 품 안에서 느꼈던 헐랭함이 준 그 포근함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기록한다.


언젠가 내 어린 친구들에게도 지금의 나와 같은 어른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보냈던 시간들을 다시금 꺼내 보여주기 위해 기록한다.

그날이 오거든, 서로 맥주 한 잔 하며 우리의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웃음 지으며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덧없는 인생이지만 그때 나는 너희들 덕분에 마냥 모든 것이 덧없지는 않았었다고, 우리가 같이 웃으며 지냈던 시간 속에서 나는 참 많이 행복했다고.

무척 고마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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