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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1. 2021

수고했어, 스웨터

시원하게 낭비했다면, 오늘도 스웨터

찬이와 욱이의 하루를 보면 하루의 대부분이 낭비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들이 시간을 허투로 보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듬성듬성한 숨구멍을 여러 개 만들어가면서 살아간다. 그런 것들이 때로 어른들에게는 시간 낭비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그저 자기들의 시간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널널하게 흘러가는 아이들의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나까지 마음이 환기될 때가 있다.

 

삶을 잘 살아간다는 것이 시간 낭비를 경계하며 부단히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 낭비를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야 말로 어쩌면 진짜 자기의 삶을 살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단 한 순간도 허투로 낭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매 순간순간을 촘촘히 살아가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나는 오히려 내가 만들어 놓은 그 촘촘함에 갇혀 더 중요한 것을 낭비하고 있었다. 진짜 나의 인생을 사는 시간, 나는 그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해오고 있었다.

 

삶이 너무 촘촘하면 그만큼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숨구멍도 더 작아지게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처럼 조금은 듬성듬성하게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마치 듬성듬성한 구멍이 나 있는 스웨터처럼 자기들의 온기를 따뜻하게 유지하면서도 매 순간을 시원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는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처럼 스웨터 같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날, 영어 단어를 외우던 찬이의 입에서 나온 ‘SWEATER’라는 단어가 내게 ‘수고했어’라는 말로 들렸던 것처럼, '수고했어'라는 말과 닮아 있는 스웨터를 입었을 때 느껴지는 포근함처럼 나는 '포근한 수고함'을 느끼며 사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P.S 

촘촘하게 살지말자. 시원한 낭비와 함게 찬찬히 살아가자. 그렇게 오늘도 바쁜 와중에 듬성듬성했다면, 스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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