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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1. 2021

일희일비가 필요해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늘 새로운 모습으로 날 반겨주는 삐또삐는 매주 자기만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오늘은 체리 방울 머리 끈으로 앞머리를 귀엽게 묶은 체리가 되어 본인의 자작곡인지 어디 유튜브에서 들은 노래인지 정체 모를 ‘내 사랑 유니콘’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삐또삐, 아니 체리는 나를 보더니 “이따 7시에 ‘내 사랑 유니콘’ 콘서트 할 거야. 준비해 매니저”라는 말로 정말 유니콘만큼이나 유니크 할 것 같은 체리의 무대를 예고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체리의 매니저가 되어 의자 두 개와 담요 하나를 가져다가 체리의 무대를 세팅했다. 무대 세팅이 끝난 후 7시가 되자 체리는 집 안에 있는 모든 불을 끄더니 화려한 조명 하나만을 켜놓은 채 그 아래 화려하게 등장했다.


나는 매니저로서 A4용지로 급하게 만든 플래카드에 ‘내 사랑 유니콘’을 적어 체리의 무대에 열심히 호응해주었다. 이모와 이모부도 어쩌면 다시없을 수도 있는 체리의 콘서트를 가만히 바라보며 열심히 박수를 쳐주었다. 그렇게 온 가족들을 모아 놓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콘서트를 만들어낸 체리는 특유의 흡족한 표정으로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퇴장했다.

삐또삐는 아주 작은 것에 일희일비한다.

그리고 아이의 일희일비는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삐또삐의 일희일비에서 시작된 ‘내 사랑 유니콘 콘서트’가 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들에게 하나의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삐또삐는 넷플릭스로 보스 베이비를 보여주면 아주 좋아서 신나 하다가도 엄마가 밖에 나가서 줄넘기 좀 하고 오라고 하면 금세 또 기분이 상해 싫다며 입술을 삐죽 내민다. 그렇게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는 삐또삐를 보며 나도 느낀 게 하나 있다. 일희일비가 주는 어떤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기쁜 일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 일상 속에서 나는 가끔가다 찾아오는 기쁨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흘려보냈다. 내 안에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들뜨는 마음이 들 때면 의식적으로 그 마음을 자제시키려 했다. 그렇게 나는 작은 일에 기뻐하고 또 슬퍼하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기쁨과 슬픔에 크고 작음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늘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순간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넘어간다면 그게 과연 건강하게 사는 것일까?


일희일비하지 못하는 나는 그럼 언제 제대로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또 그 감정들을 탈 없이 내 안에서 잘 흘려보낼 수 있을까.


나에게 있어 기쁨은 늘 자제되었고 슬픔은 늘 이해

를 강요받았다. 두 감정 모두 내 안에서 제대로 한 번 고개 들지 못한 채 그저 떠밀려갔다.


‘내 사랑 유니콘’ 콘서트가 끝나고 난 후, 나는 체리의 콘서트에 내가 짧은 순간 하나의 큰 기쁨을 느껴보았던 것 처럼 이제부터는 조금씩 더 많이 일희일비하는 습관을 가져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들뜨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따금 내게 찾아오는 소중한 기쁨마저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억누르는 것은 어쩌면 내가 나에게 가하는 가장 못난 폭력일 수 있다.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슬프려 하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기쁘고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때 충분히 기뻐하고 좋아해 둬야 나중에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슬퍼할 수 있는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마음껏 기뻐해 두었던 그 몫으로 슬픔의 몫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희일비하며 사는 것’은 삶의 건강한 균형을 위해 꼭 필요한 것 같다.


기쁨과 슬픔의 감정에 동요되지 않으려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하기보다 잠시 그 순간, 그 과잉된 감정에 동요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느 순간에 크게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낀 사람의 내면에는 강한 에너지가 쌓인다. 그 에너지는 언젠가 또 다시 갑작스럽게 찾아올지도 모를 슬픔을 잘 흘려보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순간의 감정을 누르기보다 제대로 느끼고 흘려보낼수록, 건강하게 일희일비할수록 내면에 그만큼 건강한 에너지가 쌓인다.


그리고 그렇게 일희일비하며 산다는 것은 결국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산다는 것과도 이어져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나에게는 일희일비에 있어 자연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와 같은 하루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준다.


삐또삐는 밍꼬 발랄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 요즘엔 입만 열면 밍꼬 발랄을 따라하며 “안녕하세요 여러분~밍꼬발랄이에요~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라는 노래를 부르곤 한다. 그렇게 삐또삐가 밍꼬 발랄을 따라하며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라고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나는 내가 꽤 오랫동안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기대를 하지 않으며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에 대한 기대감을 정말 오래 잊고 지내왔다. 그저 ‘오늘 하루도 별 일이 없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만을 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더 바랐다. 새로운 오늘이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어떤 설렘이 나에겐 꽤 많이 옅어져 있었다.


나도 어렸을 때는 삐또삐처럼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궁금증에 하루의 시작에 설렘을 느끼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설렘은 옅어졌고 오늘이라는 시간은 자각하지 않으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그저 그런 시간이 되어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감만으로도 모든 게 충만했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처음으로 색종이로 동서남북을 접을 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기쁨이, 동서남북보다 더 어려운 개구리를 접게 되었을 때 느꼈던 행복이, 아주 작은 것들에 크게 일희일비하며 즐거워했었던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들이 그렇게 다시 내게 찾아온다.


지금도 내 옆에서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니는 삐또삐는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 내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자그맣게 빛나던 것들을 다시 기억하게 해 준다.


어린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린 기억들과의 반가운 재회를 통해 나는 다시 한번 조금씩 나의 하루를 기대하게 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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