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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1. 2021

그렇게 주식이가 된다

내게도 별명이, 부캐라는 것이 생겼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일상이 크게 변화했던 2020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마 평생 잊히지 않을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내게도 2020년은 많은 의미를 남겼다. 2020년을 대표할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어쩔 수 없이 ‘코로나’가 되겠지만, 코로나가 휩쓸고 간 일상의 그 자리에는 또 다른 키워드들도 꽤나 남았다. ‘부캐’라는 단어가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한때는 별명이라고만 표현되던 것이 ‘부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별명이 한 사람을 다르게 부르는 하나의 별칭이라면, ‘부캐’는 ‘본캐’와 구별되는 또 다른 그 자신이라는 점에서 별명과는 차이를 가진다. 원래의 나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인 별명과 달리 부캐는 원래의 나와는 다른, 하지만 결국엔 이 모습 역시 나인 나와 같고도 다른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2020년을 기억할 때 함께 떠오를 ‘부캐’라는 키워드. 부캐는 왜 유행했을까?

2020년 한 해 ‘챌린지’ 열풍의 시작을 가져왔던 지코의 ‘아무 노래’ 가사처럼 잠시 아무개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부캐의 유행을 불러왔던 것일까? 아니면 본캐의 역할에서 잠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수많은 부캐의 탄생을 가져왔던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부캐는 본캐를 잠시 쉴 수 있게 해 준다는 것.

 

2020년, 내게도 처음 ‘부캐’라는 것이 생겼다.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길에서 갑자기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에 무기력함에 빠지고 있었던 때였다. 나에게 처음 ‘부캐’라는 것이 생겼던 1년 전,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은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변화는 막내 이모와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었다.

 

막내 이모와 나는 서로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걸려온 이모의 전화는 뜻 밖이었다. 나는 그때 이모의 바뀐 전화번호도 알고 있지 못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구인지도 모른 채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막내 이모임을 알았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내게 막내이모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에 멈춰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모는 이런 나와 달리 가끔씩 내 생각을 해왔던 것이었을까. 이모는 초등학교 4학년인 큰딸 찬이의 이야기를 하며 요즘 찬이의 공부 문제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혹시 시간이 되면 찬이 공부를 좀 봐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꽤 오랜만의 통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내용이 마치 어제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과의 대화처럼 너무나 일상적이었기에, 또 이모가 여전히 나를 무척이나 가깝게 그 어떤 어색함도 없이 대해주었기에 나 역시 이모가 갑자기 편하게 느껴졌다. 이모와 몇 년을 넘게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았었는데, 심지어 이모의 번호도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통화하는 이모가 불편하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이모의 목소리가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목소리와 똑같아서, 그날따라 그 목소리가 왜 인지 반갑게 느껴져서 나는 바로 이모에게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모든 게 순식간에 그리고 아주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이모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언가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면 지금의 이 무기력함이 조금은 옅어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에 이모의 부탁을 수락했던 것 같다.

 

그 통화 이후,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는 매주 주말 이모네 집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두 아이들을 만났다. 일주일에 이틀은 꼬박 그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 1학년인 사촌 동생들은 나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난다. 그렇게 어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보는 것이 내게도 처음이었고 나는 아이들과 재밌게 잘 놀아주는 다정한 성격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한 번 보고 3년 전쯤 가족행사에서 한 번 더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아이들을 세 번째 보는 것이었다. 내가 이 아이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고작 이름과 나이 뿐이었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아이들과의 만남이 첫 날은 그저 어색했고, 둘째날은 넘치는 에너지에 기가 빠졌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이 귀엽기는 했지만, 또 그저 그렇게 맑고 밝기만 한 누군가의 미소를 본 것이 내게는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참 오랜만이었지만 초반 몇 달 동안만 해도 나는 이 아이들에게 진심 어린 애정까지는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기에 그동안 별 교류도 없이 지내던 그저 사촌지간이었을 뿐인 이 아이들에게 만난지 몇 달 만에 애정과 사랑까지 느끼게 되지는 않았다. 이 아이들에 대한 솔직한 마음은 그저 꽤 귀엽다는 호감 정도였다.

 

그런데 정이라는 것이 쌓이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두텁게 쌓여가는 것처럼 매주 이 아이들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 아이들에 대한 호감이 애정으로 바뀌었고 어느 새는 그 애정이 사랑으로까지 나아가 당황스러웠다. 사촌동생 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이 아이들이어서 좋다는 마음이 내게 피어났다. 이런 마음이 내게는 꽤 낯선 것이었지만 그 감정이 왠지 모르게 포근했다. 그래서 나는 말로는 아이들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진이 빠진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기다렸다. 그렇게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들 만의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관계 속에 등장한 것이 나의 부캐 ‘주식이’였다.

2020년을 떠올릴 때 빠질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가 아마 ‘주식’일 것이다. ‘동학개미운동’, ‘서학개미’라는 새로운 말들이 만들어졌을 만큼 2020년은 그 어는 때보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식이 열풍이었던 한 해였다. 나 역시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수많은 개미 중 한 명이지만, 내가 ‘주식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과 ‘코스피’, ‘코스닥’, ‘떡상’, ‘예수금’ 등과 함께 이야기되는 ‘주식’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가 ‘주식이’로 불리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도 더 단순하다. 8살이던 욱이가 그때 한창 ‘식’이라는 발음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이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처럼 그때 한창 ‘식’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었던 욱이는 나를 ‘주연이’가 아닌 ‘주식이’, 혹은 ‘식주’라고 불렀다. 나는 그렇게 어느날 ‘주식이’가 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렇다 할 별명이 없었던 나는 때로 별명을 가진 사람들이, 굳이 별명까진 아니더라도 다른 무엇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별명을 지어주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고 그 대상에게 별명을 붙여 부를 만큼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주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모두 나를 ‘주연이’로 불렀던 이유는 그들이 내게 애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참 경직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애정하긴 하지만 별명이라는 것을 붙여 편하게 부를 만큼 나를 편하게 생각하지는 못했던 마음들이 있었음을 안다. 내가 그들에게 편한 사람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늘 어딘가 경직되어 있는 나의 모습이 나조차 편하지 않았는데 내가 누구를 편하게 해 줄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에게는 더욱 특별했다. 아이들은 일말의 머뭇거림도, 불편함도 없이 그저 편하게 나에게 다가와주었고 그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주식이’라는 별명을 제멋대로 붙여줬다. 그 ‘제멋대로’가 고마웠다. 나도 누군가에게 편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어서 참 고마웠다. 그렇게 아이들은 내게 ‘주식이’라는 별명을 지어줬고, 나는 그 별명 ‘주식이’를 나의 부캐로 선택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 언제든 아이들과 함께 인 순간만큼에는 언제나 ‘주식이’라는 부캐의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서겠다고.

 

내 본캐 김주연은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편이다.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 나는 이런 나의 원래 모습이 내가 의식하지 못한 어떤 순간에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 많은 순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아이들과 지낼 때만은 차라리 욱이가 내게 지어준 ‘주식이’라는 이름처럼 어느 순간에도 만만하고 편하기만을 바랐다. ‘주식이’는 원래의 나와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하지만 ‘주식이’로 지내면서 나는 ‘주식이’도 결국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식이’는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지만 그만큼 오랜 시간 내 안에 머물러 있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아이들이 내게 다시 꺼내 주었다. 


부캐인 ‘주식이’로 사는 동안 무기력했던 나는 괜히 조금씩 웃음이 많아졌고, 점점 더 편안해졌다. 내게 ‘부캐’라는 것이 본캐의 쉼터처럼 느껴진 이유는 예민한 내가 ‘주식이’라는 부캐가 주는 무던함에 얹혀 쉬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멍할 틈도 없이 그저 버티기만 하며 살아가던 중에 만난 ‘주식이’가 내 작은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아이들 곁에서 ‘주식이’로 존재할 때 만큼은 본캐로 살아내느라 어쩔 수 없이 억눌러왔던 것들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억눌려 있었는지도 몰랐던 내 마음속 깊은 것들이 ‘주식이’라는 부캐를 통해 건강하게 표출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맙다. ‘주식이’라는 이름으로 어른이 된 나의 삶 속에 불쑥 다시 나타나 지친 내 마음을 달래 주어서. 오랫동안 잊고 지내며 잠들어 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아이들을 통해 다시 깨어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 ‘주식이’로 있을 때, 나는 가장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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