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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May 03. 2019

 내 탓이오.

내가 하는 일에 내 탓 아닌 것은 없다.


천주교의 기도문에 ‘내 탓이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지은 다툼이 모두 나의 잘못이라는 양심고백의 기도입니다.
그것도 가슴을 치면서 세 번이나 반복하니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아름다운 기도일 것 같습니다.  

 기도는 쉽지만 모든 잘못의 탓을 나에게로 돌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에도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 본다라고 하였습니다. 論語논어에도 남의 잘못에는 밝지만 자신의 잘못에는 어둡다라고 했고, 맹자는 잘못이 있을 때에는 먼저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남 탓만 하기 바쁘고,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으니 내 탓이오라는 고백은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자부와 긍지가 높은 사람들이고, 학식과 덕망이 높은 지도계층 인사들입니다. 힘 있고, 책임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더욱 어려운 법입니다. 잘못에 대하여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불의를 용납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을 명예라 하여 목숨과도 바꾸지 않는 사람을 義士의사라고 칭송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명예의식이 실제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내 탓이오라는 기도는 머쓱해지기도 합니다. 


   내 탓이오 정신은 다다르기 어려운 경지이지만 실천하면 사람을 솔직하고, 겸손하게 하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내가 벌인 다툼 중에 내 탓이 아닌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명백히 남이 나에게 저지르는 잘못도 내 탓일 수 있습니다. 내가 더 잘났기에, 더 많이 가졌기에, 더 강하기에, 더 행복하기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경계, 시기, 시비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까지 늘 남탓으로 돌리는 본능 같은 것이 있습니다. 자동차 접촉사고처럼-  그래서 다툼은 커지고 손해도 커집니다. 그래서 솔직하면 손해라고 생각해 거짓말을 하고, 억지를 부립니다.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본래 양심이 거추장스러운 사람들이라 그렇다 치고, 가장 정직해야 할 법조인, 고급공무원, 군인, 교육자, 종교인들은 실제로는 정직하기 어렵습니다. 정직하고 솔직했다가는 그 자리마저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한 때 천주교를 중심으로 내 탓이오 운동이 벌어졌지만 모든 것이 네 탓인 우리 사회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같습니다. 


 과연 거칠고 험난한 생존경쟁사회에서 모든 잘못이 내 탓이라는 정직, 겸허, 양심으로 이겨나가기는 불가능한지도 모릅니다. 이런 형편에 무조건 내 탓이오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치열한 생존경쟁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벗어난 노년에 이르면 그런 적극적 정의감이나 경쟁심은 교만에서 오는 욕심일 것입니다. 이제는 남의 잘못을, 사회의 부조리를 시정하겠다는 의욕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겸손의 미덕이 필요한 때가 노년일 것입니다. 그 겸손의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 내탓이오 정신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면 잘못을 무조건 남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정도까지도 좋을 것입니다. 그 정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다툼은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남탓으로 돌리면 책임과 부담에서 벗어나는 대신 미움과 원한에 빠지게 됩니다. 책임과 부담은 사람의 도리이지만 미움과 원한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죄악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책임도, 부담도, 미움도, 원망도 없는 것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미움과 원망은 덜어냈으면 좋겠습니다. 노년까지 자신의 잘못은 모르고 미움과 원망을 품고 산다면 참으로 불행한 인생입니다. 다툼을 내 탓으로 돌리고, 남을 용서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험난한 세파에서 한 발 물러난 노년에는 좀더 쉽게 남탓에서 내 탓으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경쟁과 욕심에서 물러난다면 이제 좀 솔직해도 크게 손해 볼 일이 적고, 겸손해지면 오히려 남들이 존경함 직도 하고, 자신은 물론 남도 행복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 돈을 벌고 명예를 쌓는 일, 무병장수하는 것보다 솔직해서 마음이 편하고, 겸손해서 남에게 존중받고, 무엇보다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의 마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남 탓으로 돌리려면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만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릴 수 있을 만큼 나는 완벽한가? 그렇지도 못하면서  늙어서까지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늘 나만 옳고, 욕심을 부리고, 다투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원망한다면 자신 얼굴의 주름살보다 더 추한 삶이 될 것입니다. 내탓이요는 젊은이는 갖기 어려운, 노년이나 누릴 수 있는 지헤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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