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모든 禍화의 근원입니다.
오래 살면 辱욕이라 했듯이 말이 많아도 욕이 되기 마련입니다.
흔히 말로 생각을 다 나타낼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다른 표현능력도 문제이지만 언어는 본질적으로 생각을 다 옮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과 귀로 직접 보고 듣는 것도 본질과 사실이 아닌데 하물며 그것을 부정확한 말로 옮겨낸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상대방과의 마음까지 통해야 하는 의소사통은 더욱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의사표현도 어렵고, 의사소통은 더 어렵다면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말의 목적이 바로 의사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말이 많다 보면 사실과 어긋나고, 허점이 드러날 가능성이 커지고, 책임질 일이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흔히 말을 잘하는 법을 연구하지만 그보다는 말을 않는 방법을 수련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말을 배우는 데에는 6년도 안 걸리지만 말을 않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6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말을 않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이라면 노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말을 할 줄 알게 된다는 말이죠. 맹자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말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에 이르러서도 말을 많이 한다면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말을 할 줄 안다는 뜻은 어법을 지키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말을 많이 하는가, 안 할 말을 많이 하는가? 안 할 말을 하거나 안 해도 될 말을 하려면 차라리 침묵이 말을 잘하는 것입니다. 佛家불가에서는 할 말을 한 것이 法語법어이고, 그것을 줄인 것이 禪語선어이고, 선어마저 번거로워 無語무어라고 했고, 그것은 不立文字불립문자, 곧 침묵의 경지를 말한 것입니다. 莊子장자도 ‘아는 자는 말을 않고, 말을 하는 자는 모르는 것’이라고 침묵의 지혜를 말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말은 역설적인 극단론이어서 침묵을 옳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말을 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건 젊을 때의 사정이지, 노년이 되면 침묵의 미덕이 점점 커져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늙으면 정력은 떨어지고 입만 살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오는 잔소리는 대표적인 노화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잔소리란 한 마디로 필요 없는 말이죠. 시어머니는 노파심(老婆心)으로 며느리가 걱정되어하는 말이지만 며느리한테는 지겨운 잔소리로 들립니다. 할머니는 집안에서나 그러지만 할아버지는 밖에 나가서 그 잔소리를 해대니 그 폐해가 더 큽니다. 노인이야 세상 걱정, 애들 걱정을 한다지만 젊은이한테는 노인네 잔소리만큼 듣기 싫은 것이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말을 삼가야 옳습니다. 잔소리하는 심리를 잘 생각해 보면 자신의 언어능력에 대한 불안의식의 표현이요, 상대방의 이해력에 대한 불신감이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언어행위가 아닙니다. 좋은 말도 여러 번 하면 듣기 싫은 법인데 터무니없는 잔소리를 늘어놓고서 존중받기 바란다면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른 말씀에 젊은것들이 대놓고 하는 말대꾸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정말 노인네 잔소리로 들리면 요즘 애들은 못 들은 척하는 법입니다.
입은 말을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원래 口字구자는 음식이 들어가는 入口입구에서 유래한 글자입니다. 생각을 말로 실현하는 혀 舌字설자도 본래는 입에 들어온 음식을 맛보는 소화기관에서 유래한 글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입과 혀는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신체기관이지 말을 하는 것이 본래의 임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라.’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지 말라.’라는 말처럼 삼가고 조심해야 할 것은 ‘말하는 입’입니다. 옛말에 病從口入병종구입 禍從口出화종구출,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고 했으니 모든 사단(事端)은 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舌설의 본분을 잊고 혀를 함부로 놀리다가는 구설수를 타기 십상입니다. 혀는 세치 물렁살에 불과하지만 어떤 칼보다 예리해서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죽고 상하게 하는 흉기입니다. 그것은 자루 없는 칼과 같아서 언제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지 모릅니다.
입바른 말은 말할 것도 없고, 듣기 좋은 말도 자주 하면 싫은 법입니다. 좋은 말도 하기 어려운 판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흉기를 조심스럽게 단도리해야 합니다. 이제는 失言실언의 과오를 되돌릴 기회마저 없기 때문입니다. 입은 음식이 들어가는 입구보다도 원래 숨을 쉬라고 뚫린 숨구멍입니다. 그러니 혀로 말하기 전에 음식의 맛을 먼저 보고, 해야 할 말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건만 사람들은 입단속을 잘못하여 말은커녕 먹지도 못하고, 숨도 못 쉬는 일이 허다합니다. 세치 혀를 놀려 천하를 농단한 솜씨를 과시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 말재주로 해서 패가망신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사실 말은 입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혀를 놀리는 음성언어보다 마음으로 하는 비음성언어가 더 소통력이 좋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 마디 말보다 진실한 눈빛 한 줄기가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언변을 닦기 전에 생각과 마음을 바로 해야 하고, 수양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침묵으로 노년을 지키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화려한 언변, 듣기 좋은 말은 銀은이 아니라 毒독이 되기 십상입니다. 舌禍설화, 筆禍필화를 입는 일이 그렇게 많은 세상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銀은을 탐할 것이 아니라 침묵의 金금을 지켜 잠자코 듣는 일에 열중할 일입니다. 말을 잘해도 화를 피하기 어려운 세상에 말솜씨가 서투른 노인네야 말할 것도 없는 것이죠. 노년에는 얻으려 하기보다는 지키는 데에 힐 쓸 일입니다. 그러니 말로써 말 많은 말을 그만두고, 상대방이 말을 먼저 하도록 기다리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피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감추거나 속이려 하는 꿍꿍이가 있는 사람이니 멀리해야 합니다. 입단속만 잘 해도 인생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노인들은 입만 살아서 말자랑을 하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기 마련입니다만 입이 무거운 노인은 품위와 위엄이 있어 보입니다. 타고난 언변을 자랑할 게 아니라 눌변을 다행으로 알아야 노년이 편안합니다. 말로 이익을 거둔 것보다는 손해를 본 일이 훨씬 많았던 인생의 경험을 살리는 것이 그나마 노년을 잘 지켜내는 지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