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또 하나의 고집이다.
노년에 조심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으니 편견과 고정관념입니다. 한번 박힌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고정관념이고, 고정관념에 의해서 잘못된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편견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견과 고정관념을 피하기 어렵지만 특히 노인이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지식과 가치관을 거부하고, 자신의 한정된 지식과 그릇된 경험을 함부로 과신하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지만 그럴수록 옳은 것보다는 그른 것이 더 많기 마련입니다. 옛날 선비들은 이를 염려하여 나날이 새로워지라는 日新일신의 자세를 다듬었는데 요즈음의 노인들은 새로운 것에 대하여 거부하거나 아예 담을 쌓고 자신들의 낡은 인습과 가치관을 고집하고 있으니 옛날 선비들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기성세대로서 자신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옳건만 오히려 젊은이들만 나무라기에 바쁩니다. 구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역사관이 왜곡되었거나 오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그것을 신세대들에게 강요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賊反荷杖(적반하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달라야 하는 것이 바로 역사의 발전입니다. 만약 기성세대들의 가치관이나 행위들이 옳았다면 그 사회는 발전이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통이라는 것도 소중한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전통보다는 변화가 더 역사적인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고집한다면 역사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신세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가 아니라 오히려 노년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새로운 가치관으로 관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늘 '요 즘 젊은이들 큰일이야' '나때는 안그랬는데- 를 되뇌이기에 바쁩이다.
개인적인 자잘한 사정들은 그만두고서라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쓰라린 기억으로 일본 사람을 미워하지만 정작 미운 것은 일본의 제국주의, 패권주의이지 지금의 일본인들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도 군국주의의 희생자였고, 우리에 앞서 민주주의를 익힌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들의 과거 행적과 영악함을 욕하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체득한 선진의식과 집단의식, 질서의식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육이오의 비극을 겪었기 때문에 북한을 무조건 미워하지만 전쟁을 일으키고, 끊임없는 도발을 하고, 핵무기로 위협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지 남한의 좌파나 북한동포들이 아닙니다. 동란 때의 양민학살은 북한군, 좌익만이 아니라 우군, 우익에 의해서도 저질러졌으니 전쟁 비극의 책임을 같이 져야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의 반성도 없이 매사를 북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북한과 대화나 공존을 주장하면 공산당으로 매도하고, 한 핏줄로 불쌍하기 짝이 없는 북한동포까지 주적(主敵)으로 삼으라고 강요해 왔습니다. 펄쩍 뛸 노인들이 많겠지만 아직도 민족의 미래가 오직 멸공통일에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대착오가 아닐까 합니다. 전쟁을 모르는 철없는 젊은이도 딱하지만 70년 전 전쟁의 트라우마와 편견을 가지고 민족분단을 고착시켜서는 어른의 책임 있는 도리가 아닐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 60대는 전쟁을 겪어보지도 못했고, 70대도 전쟁의 기억이 바르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증인이라고 자부하겠니만 어쩌면 나라의 편향된 반공교육에 의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피해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기억의 왜곡을 다시 후손에게 물려주어서야 되겠습니까?
중국에 대한 과거의 사대주의 잔영으로 그때와는 전혀 다른 新中國에 대하여 아직까지도 막연한 호감이나 기대를 갖는 사람들이 있지만 과거의 중국과 신중국은 시대와 이념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일당독재인 중국의 외교정책은 놀라울 만큼 치밀함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강국이고 상대적으로 민주주의의 신사적인 면이 있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이해집단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인이 모두 트럼프 같지는 않겠지만 만약 트럼프가 재선이 된다면 트럼프와 미국인을 구태여 다르게 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이 일본을 제치고 우리 편을 들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면 커다란 착각입니다.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평범한 노인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니지만 기성세대가 주도한 편견과 고정관념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물에 대하여 바른 해석을 하는 것이 이해이고, 잘못 해석을 하는 것이 오해입니다. 나이가 들면 고정관념과 편견에 빠져 理解이해보다는 誤解오해를 더 많이 하게 되는데 이것도 노화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노인들의 심사는 일종의 노화스트레스로 자신도 모르게 굽은 등과 고관절처럼 꼬부라져 있습니다. 노년의 책임이 분명한 이러한 문제를 꼬부라진 심사로 신세대들에게 돌려야 할까, 아니면 우리들이 스스로 반성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므로 그저 권위를 누리고, 효도나 받고, 무병장수하면서 여생이나 즐기면 되는 일인가? 몸과 마음이 잔뜩 꼬부라져 있으면서 백세를 구가한다면 자식과 젊은이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산 목숨을 어찌 마음대로 할 수야 있을까만 옛날의 노인들은 말끝마다 '그저 늙으면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물론 헛말이지만 초고령화 시대에 말끝마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면서 백수를 정당한 권리로, 자랑으로만 삼는다면 염치없는 일입니다.
노인들은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서도 틀어진 심사로 하여 세상에 대하여 곡해하는 일이 많습니다. 게다가 노인은 한번 박힌 기억과 인식을 좀처럼 바꾸지 못합니다. 이것은 노집의 원리와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한번 입력된 사실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새로운 것은 기억이 안 되는 두뇌활동의 퇴화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노인들도 자신들의 생리적인 퇴화현상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로 인해서 어떤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새로운 사실이 기억되지 못하므로 노인들의 사고, 인식, 판단은 언제나 과거에 매어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늘 과거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견해는 대개 고정관념과 편견과 오해를 벗어날 수 없어 사회적 장애가 되기 쉽습니다.
신세대들이 철이 없어서 소통이 안 되는지, 구세대가 막혀서 소통이 안 되는 것인지 따질 것이 아니라 늙은이가 먼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대책도 없이 세상말세라고 탄식하는 것보다는 노인의 고집과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는 것이 후세를 위하고 자신을 위하는 길일 것입니다. 그런 관용과 여유를 보인다면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들도 달라지지 않을까? ‘철 모르는 애들이 무얼 안다고-’가 아니라 ‘늙은이들이 무얼 어쩌겠다고-’가 더 어른스럽지 않을까? 그 애들이 결국 내 자식들이고, 미래의 주인공들이 아니던가?
노년에 이르면 ‘내가 옳다’라고 고집부리기보다는 ‘나라도 그러지 말아야 하겠다’는 각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나라를 위험하게 하는데 노년층들은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나라의 장래에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보수꼴통' '꼰대극우'라고 욕을 해댑니다. 노인들이 가짜뉴스나 왜곡된 유투브나 보면서 세상사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옆에서 들어보면 나잇값을 하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싶어서 부끄러워지기에 하는 말입니다.
꽃에 취한 술의 노래
정 철
꽃이 오래 되면 홍작약이 되고 花殘紅芍藥
사람이 영글면 정돈녕이 되는 것. 人老鄭敦寧
꽃을 보고 술을 마주하걸랑 對花兼對酒
마땅히 취하여 깨지 말지어다. 宜醉不宜醒
꽃이라 했지만 이 꽃은 꽃이 아니라 홍작약이라는 미인입니다. 그것도 오래된 꽃이니 나이 지긋한 기녀일 것 같습니다. 자신도 역시 나이 먹은 돈녕 -왕족 벼슬 - 영감입니다. 모름지기 미인과 술을 마주하걸랑 흠뻑 취할지라는 풍류 넘치는 멋진 노인의 모습입니다. 더구나 꽃과 여자를 교묘하게 엮어서 노년의 멋을 더 했습니다. 과연 노년까지 이런 풍류를 즐기는 것은 멋진 인생일 것 같습니다. 그럴만한 경제적인 능력과 건강을 갖추었다면 더욱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럴 노인도 많지 않지만 그것이 노년의 지상목표가 된다면 존중받을 만한 노인은 아닐 것 같습니다. 노인이 드물었던 옛날이라면 모르지만 노인이 지천인 지금이라면 천덕꾸러기를 면키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늘 ‘인생 뭐 있나’를 외치면서 즐거운 인생 말년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지고 ‘인생 뭐 있나’를 되뇐다면 어른 노릇이 아닐 것 같습니다. 동의하지 않을 노인들도 있겠지만 어른이라면 젊은이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어야 나잇값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짧은 나만의 인생을 그러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만을 위해서 인생을 마친다면 손해 볼 건 없겠지만 어른의 도리는 아닐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만을 위해서 산다면 배우자는, 자식은, 이웃은, 사회는 다 무엇인가? 별 유난스러운 오지랍이라고 하겠지만 살아있을 때까지는 최소한의 어른 노릇은 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