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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Oct 06. 2019

착각과 과대망상

노인의 착각과 과대망상은 고치기 어려운 병이다.

  착각은 자유라 했으니 사람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감각의 착오현상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각을 믿고 싶지만 사람의 감각처럼 부정확한 것도 없습니다. 감각은 자신의 상태나 감정에 따라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감각, 현상, 인식은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과 그 본질은 다른 것이지만 우리는 늘 본질은 놓치고 현상에만 집착하는 착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요? 그러고 보면 착각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요, 본능적인 속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착각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만약 인간이 사실에 대하여 착오 없이 정확한 사고와 합리적인 행동만을 했다면 오히려 비인간적이고, 아주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상식과 분수를 뛰어넘는 창의, 상상과 무모한 파격, 모험, 환상은 역설적이게도 인류역사를 날로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이었습니다. 그 원동력은 일종의 착각현상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젊었을 때의 일이지, 노년에 이르면 착각이 그런 원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창의, 상상, 파격 모험들은 노인에게는 이미 고갈되었거나 어울리지 않거나입니다. 젊은이에게는 그것이 특권이요, 패기이지만 노년에게는 망상이요, 착각이 되기 마련입니다. 노년에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자고 나서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올바로 바라보는 판단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제는 젊은이와는 달리 여생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잖아도 믿지 못할 것이 사람의 감각인데 늙으면 그것마저 쇠퇴되어 노년을 위험하게 합니다. 요즈음 노인들의 자동차 사고가 점점 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감각기관이 쇠퇴되어 간다는 실증인 것입니다. 그런데 감각기관의 쇠퇴는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두뇌활동과 정신력까지 어두워진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보고 듣는 것이 적으면 사고활동과 판단력까지 둔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벌어지는 현상이 착각이란 것입니다. 착각은 사실이나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내려지는 오판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동차 운전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노년의 여생 전부의 모든 문제인 것입니다. 노인의 착각은 피할 수 없는 노화현상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신의 착각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니 또 다른 착각입니다. 


  다른 것보다도 자신에 대한 판단은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에 대한 판단이 과소평가되었을 때에는 별 탈이 없지만 과대평가하였을 때에는 착각이 교만, 오만이 되고, 그것이 굳어지면 과대망상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착각은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용인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면 감각기관의 쇠퇴로 그 착각의 심각성이 더욱 커지고,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와 판단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더 악화되면 과대망상증으로 발전합니다. 착각은 있는 사실을 잘못 판단하는 것이지만 과대망상은 전혀 근거 없는 헛된 생각입니다.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은 그 자리가 곧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앉아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위가 자신의 실체적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사실 그 권위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나오는 허세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서도, 정승이 죽으면 대문에 거미줄을 친다’고 했습니다. 정승이 자리에 있으면 개가 죽어도 문상객이 몰려들지만 자리에서 물러난 정승은 죽어도 문상객이 없다는 말입니다. 나를 찾던 그 많은 사람들이 실은 나를 찾았던 것이 아니라 내 권세를 좇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리에서 물러난 정승은 개만도 못한 셈이지요. 


  그런데 퇴임을 하고나서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옛날의 권위를 그리워하거나 내세우려 한다면 과대망상증을 의심해야 합니다. 늙어서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능력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든지, 사람들로부터 여전히 존중받는다고 자신한다면 착각을 지나 과대망상증에서 멀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거나 정당하며 선량하다고 착각하고, 자기중심 사고와 자아도취의 정도가 심하면 역시 과대망상증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물론 늙어서도 여전히 권위와 능력을 발휘하면서 존경을 받는 노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인은 매우 드물어서 나까지 거기에 끼어들려고 한다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착각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머리에는 여전히 ‘아직 내가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오래 살아야 한다, 이대로 갈 수 없다’와 같은 착각과 과대망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노년의 허접함을 버텨내는 힘이긴 하지만 본인에게는 딱한 일이요, 사회에는 걸림돌이 됩니다. 치매는 자타가 인정하는 질병이지만 과대망상은 본인만 모르는 질병이어서 그렇습니다.  


  이른바 공주병, 왕자병 같은 착각은 애들이라서 애교로 봐 준다 하더라도 늙은 통치자가 과대망상증을 앓는다면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히틀러는 착각으로 시작하여 과대망상증에 이르러 세계대전을 일으켜 전 세계를 망쳤습니다.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독일 국민 전체를 착각과 과대망상증 환자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라고 그런 역사가 없었겠습니까? 우리나라 역대 통치자들이 칭찬받는 일은 드물었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대통령을 지내고 감옥에 가는 일은 많지만 자신이 착각과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없습니다. 어찌 권력자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지위가 높거나 영향력이 컸었던 노인들도 정도의 차이일 뿐 과대망상증 환자가 많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평범한 노인들도 방심할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권력자, 노인들의 착각과 과대망상증까지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로 인해서 피해를 입는 국가와 국민은 또 어찌합니까? 착각과 과대망상증을 고칠 수 없다면 앞뒤 없이 나대지 말고 혼자서 조용히 옛날의 권위를 그리워하는 데에서 만족할 일입니다. 착각까지는 자유라지만 과대망상증은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심각한 질병입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평범한 노인들이야 사소한 착각까지만 깨달을 수 있어도 천만다행한 일입니다.              



스님 우리 스님 

                                          정  철     

스님이 어찌 절기를 알랴?                           曆日僧何識

꽃이 피면 봄인 줄 알고,                              出花記四時

푸른 구름에서 여름을 어림하고,                 時於碧雲裏

단풍잎에 앉아서 가을을 읊을 뿐.                楓葉坐題詩


원 제목은 贈僧- 스님에게 드리는 시입니다. 산 속에 묻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는 고승에게는 시간도, 절기도, 세상사에도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달력이니, 시계니 하는 것들은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입니다. 꽃이 피면 봄이 온 것이지만 그렇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여름이 왔다고 한들, 계절이 바뀌었단들 구름만 늘었을 뿐입니다. 온 산에 단풍이 가득한들, 추수할 것이 많다 한들 나무 등걸에 앉아서 그저 坐忘-앉아서 세상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가을 노래만 부를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마음에 쌓아두었던 세상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잘 포장해서 마음에 간직하기보다는 기
 꺼이 잊어버리는 것이 여생에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는 못할망정 세상에 쌓아두었던 일들을 과대포장해서 내 것으로 삼으려 든다면 거기에서부터 착각과 과대망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에게는 비웃음을 사는 짓이고, 스스로는 허망하고 부끄러운 노년으로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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