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대자연으로 돌아가는 출발.
퇴임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고, 은퇴라는 말은 물러나 숨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퇴임보다는 은퇴가 더 적극적인 물러남인 셈입니다.
퇴임은 현직에서 물러나더라고 하던 일을 계속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은퇴와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고도의 전문기술직에서는 그럴 필요성도 있을 것입니다. 후배를 능가하는 기능을 버리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더 들면 전문성도 떨어지고, 기능도 밀려 결국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 퇴임과 은퇴를 같은 의미로 통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노인들은 전문성과 관계없이 자리에 미련이 많습니다. 본인은 물론 아예 제도적으로 이를 보장해 주는 것이 이른바 전관예우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문성이 아니라 전직의 위세에 따라 현직과 다름없는 대우를 보장해 주는 악습입니다. 전문성에 의한 것이라면 양해될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권력의 위세와 이권을 업은 불공정 행위에 속합니다. 그리고 그 불공정 행위에 의해서 각종 부조리와 비리가 저질러지는 일이 잦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위해서도, 편안한 노년을 위해서도 퇴임은 은퇴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퇴임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억울한 일이 아니라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어 사회의 문화와 질서를 순환 계승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설령 후임자보다 더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자리를 떠나야 하는 것이 사회질서요, 자연의 섭리입니다. 직장이 아니더라도 노인은 가급적 젊은이가 있는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젊은이들은 이래저래 노인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퇴직자가 전관예우, 명예교수라 해서 퇴임 후에도 전임지에서 머뭇거린다면 사회질서는 제대로 서지 못하고, 후임자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되기 십상입니다. 설령 후임자가 어설프더라도, 못 미덥더라도 그것은 퇴임자가 걱정할 일이 아니거니와 자리를 비워주면 오히려 더 발전적으로 계승되는 수가 많습니다. 가까운 후배이거나 제자와 같은 절친한 사이라서 떨쳐버리기 어려워도 과감히 뿌리칠 수 있어야 본인은 떳떳하고 후진들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은퇴를 만류하는 것은 예의일 뿐, 대개는 정년퇴임 날짜를 손꼽고 있습니다. 자기보다 나은 선배라면 불편하고, 못하다면 거추장스러운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던 역량만큼이나 후진들이 갖는 부담과 불편은 크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욕심이거나 교만이거나 착각이 틀림없습니다. 가끔 명예교수로 퇴임 후에도 강의를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강제 퇴임이나 명예퇴직이 아니라면 退任퇴임은 슬퍼할 일이 아니라 一喜一悲일희일비, 시원섭섭할 일이요, 좀 더 생각하면 온갖 시련과 다툼과 책임에서 벗어났으니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나 일신상의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그 자유와 권리는 젊었을 때 고난과 시련을 겪어가면서 내가 쌓은 노력과 희생의 정당한 대가입니다. 그 자유에는 여생에 대한 선택의 자유도 포함됩니다. ‘인생은 60부터’가 아니라 퇴임부터이고, 그것은 인생의 재출발이기도 합니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사회의 권위, 권세, 명분, 관행, 부귀, 향락, 명예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노년의 자유는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은퇴 후에도 세상 일에 함부로 나서면 번거로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것이 세상 사는 맛이요, 무기력을 떨치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는 노인도 있지만 미구에 자신의 무기력을 재확인하는 아픔이 될 공산이 큽니다. 더구나 그것을 허세나 용돈벌이, 심심풀이 수단으로 삼는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은퇴란 그런 번거로움을 피해서 숨는 것입니다. 쫓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숨은 것이어서 의연하고 떳떳합니다. 나는 떳떳하고, 사회는 발전하고, 자연은 순리로 순환한다면 은퇴는 큰 미덕일 것입니다.
은퇴는 억지로 물러나 숨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고, 겸양의 윤리를 실천하는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는 신세대를 위한 밑거름이고, 씨앗이어야지 언제까지 꽃으로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꽃은 열매를 맺고 씨앗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선배가 물러나지 않으면 후배가 나아가지 못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은퇴가 아쉬울 것도, 억울할 것도, 서러울 것도 없을 것입니다. 늙어서 은퇴한다는 것은 단지 거쳐야 할 인생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에 동참을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자신만의 욕심으로 삶이 끝난다면 사회와 후손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