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편지
秋夜寄邱員外 가을의 편지
韋應物 위응물 737-792
懷회君군屬속秋추夜야 이 가을밤 그대 생각에
散산步보詠영凉량天천◎ 가을 읊조리며 밤길을 나섰네.
空공山산松송子자落락 빈 산에 솔방울 떨어지니
幽유人인應응未미眠면◎ 그대 아직 잠들지 않았으리-
이러한 시를 5언絶句, 또는 截(절)句, 短句라고도 하는데, 절구란 ‘끊어낸(切) 시’, 다시 말하면 '장형시에서 잘라낸 짧은 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고시나 율시 같은 연작장형시가 먼저 나오고 나중에 이와 같은 단련시(單聯詩)가 나온 것입니다. 또 7언시가 먼저 나오고, 5언시가 나중에 나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중국의 한시는 이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우리의 상식은 작은 것이 발전해서 큰 것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생물의 성장으로 말하면 대개 맞는 말이지만 적어도 예술, 문학의 장르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단편소설이 늘어서 장편소설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세계문학을 보아도 장편소설은 수백 년이 넘었어도 단편소설의 역사는 백 년이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 5언시가 늘어서 7언시로 발전하고, 절구가 늘어서 율시가 되었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장편 서사시가 먼저 나오고, 단편 서정시가 나중에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단형은 장형의 숙련이요 완성형인 셈입니다. 모든 예술이 대개 그렇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 고전문학이라고 다를 리 없건만 지금도 단형인 평시조가 늘어서 장형인 사설시조나 가사로 발전되었다고 가르친다면 딱한 일입니다. 적어도 국어선생님이라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큰 문제냐고 하겠지만 이래서 우리 고전문학에는 잘못된 기술이 많습니다.
절구야말로 함축, 압축의 漢詩美를 집약한 형식입니다. 롱드레스가 세련되어 미니스커트가 된 이치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웅변은 길지 않고, 名言는 짧습니다. 은자를 만나러 가서 벌어지는 서사적 사건을 이렇게 짧은 시로 표현한 것은 극도로 세련된 언어예술이 필요합니다. 이 시는 그런 한시의 매력을 잘 보여줍니다.
이 시는 가을밤에 벗 구원외에게 보내는 시입니다. 그래서 우리시 제목을 ‘가을의 편지’로 붙여보았습니다. 邱는 성이고, 員外는 말단 벼슬자리입니다. 실제로 벗을 찾아나섰을 수도 있겠지만 시인의 面壁(면벽) – 방 안에서 쓴 - 상상의 시일 수도 있습니다. 방 안에서 한 폭의 그림을 보고 산천을 여행하는 시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를 畫題詩(화제시)라고 합니다. 다음에는 그런 시도 소개할 것입니다.
懷君屬秋夜
懷君 그대를 그리다, 생각하다. 屬秋夜 가을밤에, 가을밤을 맞이하여. ‘이 가을밤’이라고 옮겼습니다.
散步詠凉天
散步 산보. 詠凉天 시원한 가을 하늘을 읊다. 이를 줄여 ‘가을 읊조리며 길을 나섰네’라고 옮겼습니다. 낮이 아니라 밤 길을 나선 걸 보면 원래 친구를 찾을 생각보다는 가을밤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친구보다는 자연풍광을 더 좋아했던 것이 시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은자를 만나는 일보다는 찾아나서는 과정의 이야기로 그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옛 시인들은 사람보다는 자연이 훨씬 중요했던 것입니다.
空山松子落
空山 빈 산, 고요한 산. 솔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즈넉한 산. 松子落 솔방울, 잣이 떨어지다. 공산은 無慾의 공간이고, 솔방울 떨어지는 낙락장송은 仙界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幽人應未眠
幽人 이 산에 머무는 사람, 깊은 산속에 사는 사람이니 뜻도 역시 깊은 은자일 것입니다. ‘그대’라고 옮겼습니다. 應 당연히, 틀림없이. 잠들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않았으리’로 옮겼습니다. 未眠 아직 잠이 들지 않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그대는 헛되이 잠자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를 만나 이 가을밤을 마음껏 즐기리라는 의지와 기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겨울이 완연한데 이제야 가을타령이나 하자니 면구스럽습니다. 비관론자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는 한가하게 가을의 편지나 쓰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좌우나 지역, 세대간의 갈등, 인구절벽, 교육대란, 계층의 양극화 - 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위험합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개인주의, 물신주의에 빠져있고, 집권자들은 나라의 장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편가르기로 정권유지에만 골몰하고 있는 판에 한가하게 남의 나라 가을의 편지나 되뇌고 있으니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나름대로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로해왔지만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