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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Jan 11.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66

江雪

    柳宗元  773-819     


千山鳥飛絶◎        산에는 새마저 날지 않고,

萬徑人蹤滅◎        길에는 사람마저 보이지 않는데-

孤舟簑笠翁            도롱이삿갓 쓴 노인네 조각배 타고

獨釣寒江雪◎        눈 맞으며 혼자 낚싯대를 던지고 있다.     


千山鳥飛絶

千山 모든, 온 산. 그러나 그냥 산이라고 옮기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鳥飛 새가 날다. 絶 끊어지다. 단절되다. ‘날지 않고’로 옮겼습니다. 날은 춥고, 폭설이 내려서 새마저도 날 수 없는 하늘입니다.       


萬徑人蹤滅

萬徑 모든 길, 온 길. 역시 그냥 길이라고 옮깁니다. 人蹤 사람의 자취, 길 가는 사람. 滅 絶과 같은 뜻. 앞 구와 대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를 살려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1,2구와 같은 배경에서 3,4구의 상황이 벌어지므로 종결어미보다는 연결어미로 옮겨야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데-’라고 옮겼습니다. 한시는 일반적으로 動靜의 구조를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까지가 정적구조라면 이후는 동적구조라고 하겠습니다.      


孤舟簑笠翁

孤舟 외로운 배. 조각배라고 옮기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簑笠翁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노인. 고기 잡는 어부보다는 세월 낚는 노인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새도 날지 않고, 사람도 없는 곳에 조각배 탄 노인은 대자연 속에 묻혀있는 인간의 왜소한 모습일 것입니다. 이것이 한시에 구현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獨釣寒江雪

獨釣 홀로 낚시질을 하다. 寒江雪 눈 내리는 차가운 강. 그러나 차가운 강이라면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 악착같은 어부라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 설경은 전혀 다른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를 각박한 세상을 고발한 시로 보고싶지는 않습니다. 눈이 내리니 차가운 날씨가 틀림없으나 구태여 따로 옮길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시인은 광막한 천지간에 강 한 귀퉁이에서 한가로이 낚싯대를 희롱하는 노인을 그려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 노인이 추위에 떨어가며 악착같이 고기를 낚으려 할 리가 없습니다. 시인은 그냥 여유롭게 세월을 낚는 한가로운 모습일 것입니다. 그나마 이 시에서 움직이는 것이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노인일 뿐입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어 나이 든 분들에게는 구태여 옮길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한 폭의 文人 산수화로 이런 시를 두고서 畵中有詩 詩中有畵-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라고 합니다.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자신을 잘 드러내려 하지 않는 은둔사상의 표현일 것입니다. 이러한 시는 독자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하겠지만 그림으로 일관하다 보면 시의 핵심인 주제가 흐려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를 畫題詩(화제시)라고 해서 하나의 한시 장르를 이루고 있지만 시가 그림의 일부로 흡수된다면 시의 존재가치는 줄어들 것입니다. 이러한 시는 현장에 가보지 않더라도 한 폭의 그림만 있으면 얼마든지 방 안에서 지을 수 있는 시입니다. 화제시의 문제점은 시의 진실성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 산수화는 우리의 자연 모습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림 속의 산도, 물도, 집도, 사람들도 우리의 산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 많습니다.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더구나 그런 그림을 보고 시를 썼다면  역시 그런 흠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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