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隱者不遇 은자를 찾아서尋尋隱者不遇(한시를 우리시로 63隱者不遇(한시를 우리시로 63
賈島 779-843
松송下하問문童동子자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언師사採채藥약去◎거 스승님은 약초 캐러 가셨다네.
只지在재此차山산中중 이 산 중에 계시긴 한데
雲운深심不부知지處처◎ 구름이 깊으니 알 수가 없네요.
松下問童子
松下 소나무 아래. 은자를 찾아나서 문 앞 낙낙장송 아래에서 동자를 만났습니다. 낙낙장송은 으레 신선이 앉아서 바둑을 두는 곳입니다. 소나무 하나로 신선계의 배경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問童子 동자에게 스승은 어디 계시냐고 묻습니다. 이처럼 은자나 신선을 찾아가는 일련의 시를 訪仙詩(방선시)라고 합니다.
言師採藥去
言 말하다, 대답하다. 동자가 대답하다. 師 師僧(사승) 스승의 어원입니다. 採藥去 약초 캐러 가다.
只在此山中
只 다만. 따로 번역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在 있다. 此山中 이 산중에. 이 산 속에 있기는 한데- 여기에 只가 녹아있습니다.
雲深不知處
雲深 구름이 깊다, 가리다. 不知處 장소를 알지 못하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3, 4구는 시인의 목소리인지, 동자의 대답인지 알 수 없지만 누구라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시인의 목소리로 옮긴다면 '구름이 깊어 알 수가 없구나'로 될 것입니다. 은자를 찾아나섰지만 그를 만나고 못 만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산중 자연이 좋으면 그만인 것이 방선시의 멋입니다.
한시는 보통 기-승-전-결의 4단구성으로 되어있습니다. 또는 前景-後情, 즉 1,2구는 배경을 제시하고, 3,4구에서 주제를 내세우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외형상 그러한 구성이 없이 사건의 진행으로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4단, 혹은 전,후 구성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낙낙장송이 서 있는 곳에 구름이 깊어 사람을 찾을 수 없으니 여기가 신선의 세계가 아니랴?'
賈島는 苦吟派(고음파) 시인으로 불립니다. 고음파란 시어를 갈고 닦는데 심혈을 기울인 시인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만큼 시어를 선택하는데 온갖 고심을 기울였던 시인입니다. 그에 비하면 이백이나 두보는 장광설(長廣舌)의 호들갑이라고 할 것입니다. 가도가 얼마나 시어를 선택하는데 고심했는가를 말해주는 고사가 유명한 ‘퇴고’입니다. 그의 題李凝幽居–의 일절에
鳥조宿숙池지邊변樹수 새는 못 가 나무에서 잠들고
月월下하僧승推추門문 중은 달빛 아래에서 문을 민다.
이렇게 읊고나서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推門을 推로 할까, 鼓로 할까를 두고 길에서까지 골똘하다가 당대의 대시인 한유(韓愈)의 행차에 부딪쳤습니다. 한유가 그 까닭을 물으니 推, 鼓의 고민을 털어냈다고 합니다. 사실 '추'도, '고'도 한시의 운율에 다 맞는 것이니 그리 고심할 일이 아닌데도 이런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시어에 심혈을 기울였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유도 한참 궁리하다가 鼓가 좋겠다고 했답니다. 처음 가는 집에 노크는 해야 예의가 아닌가, 또는 사방이 너무 조용하니 정적을 살짝 깨는 것이 動靜(동정)의 조화에 맞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시의 분위기까지 조화를 맞추었다니 그 詩作의 섬세함에 놀랄 일입니다. 그러나 얕은 생각으로는 이 정황에서 굳이 정적을 깨는 것은 오히려 분위기를 해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일화는 漢詩人들이 얼마나 詩作에 공을 들였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나라의 呂不韋는 <呂氏春秋>라는 책을 내고 말하기를 이 책에서 글자 한 자라도 고칠 사람이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고 호언해서 一字千金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一字師라는 말은 시에서 글자 한 자라도 고쳐주면 곧 스승이라는 말입니다. 推敲는 지금도 글을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흔히 쓰여지는 말입니다. 推는 '밀 퇴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