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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114

국화 앞에서

by 김성수


醉花陰

李淸照 1084-1155


易安居士 이청조는 송사 婉弱派의 대표사인이다. 완약파란 송사의 전형으로 섬세하고 연약한 시풍을 말한다. 易安이라고 했지만 그녀의 일생은 결코 쉽거나 편안하지 못 했다. 뛰어난 재기로 남편과 불화하여 독수공방을 보냈으며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고 만년에는 유랑생활로 보냈다고 한다. 여인의 고독을 애절하게 사로 승화시켰다.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100% 완전한 번역은 없다. 시 번역은 언어번역이 아니라 시의 정감을 옮겨야 한다. 직역이 번역의 기본이지만 시를 직역하면 시가 되지 않을뿐더러 원작의 정감을 전달할 수 없다. 사실과 정감은 같지 않다. 객관과 주관이 다른 것처럼- 번역시와 원작을 대조하고서 원작의 사실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원작시인의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원작 한시를 보지 않고서도 번역시의 정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소득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한시를 대조해서 그 정감을 확인할 수 있다면 더 높은 수준의 감상일 것이다. 시의 번역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한 사람도 번역할 때마다 번역이 달라질 수도 있다. 누구도 완전한 시 번역은 장담할 수 없다.


옅은 안개, 짙은 구름에 낮은 너무 길어

薄霧濃雲愁永晝

향로의 향마저 사위어가네.

瑞腦消金獸◉

중양절 좋은 시절

佳節又重陽

금침에 휘장 둘러쳐도

玉枕紗廚

밤이 깊으니 스산해진다.

半夜凉初透◉


정원에서 술잔 들고 노을을 맞으니

東籬把酒黃昏後

은은한 향이 소매에 가득하다.

有暗香盈袖◉

매정하다 말하지 마소.

莫道不消魂

서풍이 주렴을 흔들어대니

簾捲西風

국화보다 내가 더 야위어 간다오.

人比黃花愁◉


薄霧 옅은 안개. 濃雲 짙은 구름. 愁永晝 근심 많은 낮, 긴긴 낮. 사랑하기 좋은 때는 역시 밤이다.

瑞腦 향. 消 사위다. 金獸 짐승 모양의 호화향로.

佳節 좋은 시절. 重陽 중양절, 9월9일. 헤어진 사람은 모이고, 고향 떠난 사람은 산에 올라 고향을 바라보는 명절. 독수공방하는 처지로서는 중양절인 佳節일 수 없었다.

玉枕 옥 베개, 사랑하기 좋은 화려한 잠자리. 금침이라고 옮겼음. 紗廚 비단휘장

半夜 깊은 밤. 凉初透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다. 날씨가 아니라 혼자이기 때문이다.


東籬 동쪽 울타리, 정원. 把酒 술잔을 들다, 마시다. 黃昏後 날이 어둔 후.

有暗香 은은한 향. 盈袖 향이 소매에 가득함.

莫道 말하지 마소. 不消魂 혼을 태우지 않다. 사랑하지 않다. 나를 매정하다 탓하지 마소.

簾捲 주렴을 걷다. 西風 서늘한 가을바람.

人 사람, 시인의 자칭. 比 보다. 黃花愁 국화의 근심 걱정. 국화 피는 중양절이 되어도 님을 만나지 못하니 국화는 오히려 근심거리.

이청조는 재기넘치는 시인이었으나 남편 복이 없어 생이별을 하고 살았다. 독수공방의 애상을 절실하게 표현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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