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노인과 馬

노인의 교만은 고치기 어려운 병이다.

by 김성수

驕慢(교만)의 驕는 원래 말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습니다. 말의 크기에 따라서 5척이 안 되는 망아지는 駒라고 했고, 6척까지 자란 말은 驕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는 망아지 Pony를 벗어나 웬만큼 성장한 젊은 말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정신적으로 미숙해서 아직 세상 물정 모른 채 힘을 자랑하고 싶은 혈기왕성한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나잇살이나 먹은 노인이 젊은 말과 같이 교만하다면 말보다 나을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驕교는 또한 사람이 타고 다니는 가마이기도 합니다. ‘어교’는 임금이 타는 가마이고, ‘교꾼’은 가마를 메는 가마꾼입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말이 가마를 끌고 다녔는데 그 모습을 나타낸 글자가 馬+喬(가마), 그래서 驕자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고급 승용차 세단을 驕車교차라고 합니다. 옛날에 고관대작을 가마에 태우고 다니는 驕가 짐이나 싣고 다니는 노새나 당나귀를 보았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驕자가 그대로 교만으로 연결되는 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키 큰 여자가 키 작은 남자를 대하는 심사도 크게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고 보면 키 작은 노인이 괜찮은 아내를 두고 무난히 일가를 이룬 것은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은 더 하죠. 말은 그래도 나이가 들고 늙으면 날뛰지 않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고 늙어서도 교만은 더 늘어갑니다. 중국 제나라의 명재상 晏嬰안영의 수레를 몰고 다니던 마부는 그 자부심으로 늘 으스대면서 말을 몰았습니다. 그래 봐야 기껏 마부인 주제를 잊고 교만을 부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수레의 주인인 안영은 늘 겸손하였습니다. 그러나 안영은 명재상으로 이름이 남아있고, 마부는 턱도 없는 교만으로 아내에게 경을 쳤다고 합니다. 말은 자신의 덩치와 힘을 내세운 ‘驕’였지만 마부는 능력도 없이 남의 위세를 빌어 거드름을 피웠으니 말만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교만’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우월감에서 나오는 몰지각과 일탈과 게으름과 방심입니다. 마부는 못 배우고 어리석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식과 경륜을 갖춘 노년에 이르기까지 아직 교만에 차 있다면 말과 마부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안영처럼 겸손해져야 옳은데 안영의 미담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경륜과 학식이 높을수록 겸손해지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위가 높고, 학식이 높은 사람일수록 노년에 이르면 교만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교만해지는 이유는 세상의 견문을 닫은 채 자신의 경험과 경륜을 지나치게 과신하기 때문입니다. 노인이 믿고 있는 경륜과 경험은 오히려 시대를 거역하는 장애물이 되기 쉽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의 산물은 전통일 수 있지만 개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만 집착하는 경륜과 나이는 교만할 바탕이 아니라 오히려 새 시대에 대하여 겸손해야 할 이유입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나이가 들수록 겸손해야 하지만 교만은 겸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습니다. 알량한 지위와 자존심은 겸손을 어렵게 하는 적입니다. 겸손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내가 남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자각을 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 같습니다. 지위가 더 높았다면, 학식이 더 높다고 자부하면, 돈이 더 많다면, 외모가 더 낫다고 믿는다면 교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이런 우월함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것은 나의 능력과 조건이 뛰어났다기보다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설령 내 노력으로 이루어진 우월성이라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는 것이었고, 또 그것으로 나의 인격이나, 삶의 질, 행복마저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행운에 대해서 감사히 생각하고 겸손해야 할 일이지, 내세우거나 교만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에 오히려 남이 나를 존중해주고, 나의 존재가치를 높여 줄 것입니다. 교만은 바탕이 없이 내세우는 馬스러운 허세이지만 당당함은 갖추어진 노인의 품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혈기왕성하고 능력이 뻗쳤을 때는 탐욕이 의욕이 되고, 교만이 신념으로 통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기운이 떨어지고 능력이 줄어들면 의욕은 탐욕이 되고, 신념은 교만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인간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치열한 사회의 경쟁에서 물러나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노년은 신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럴 기회마저 얻지 못한 채 요절한 사람을 생각하면 아찔한 행운입니다.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는데 젊을 때야 그럴 수 있지만 살 날이 많지 않다면 하늘과 세상 무서운 줄 알아야 나잇값 하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노인이 교만을 부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교만을 겸손과 존엄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교만은 덜 자란 말이나 부족한 마부에서 생기듯이 덜 성숙된 사람에게서 나오는 착각현상입니다. 그런데도 학식과 지위가 높았던 노인일수록 교만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참으로 노인의 교만은 고치기 어려운 병입니다.

자신의 행운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다면 교만한 마음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교만은 하찮은 우월감과 쾌감을 주겠지만 그 대가로 치러야 하는 대가는 혹독합니다. 세상에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높은 고개를 좋아서 올라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겉으로는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오르지만 언젠가는 이 고개가 무너지기를 바라거나 허물 궁리를 하거나 돌아갈 방도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경원, 경계, 시기, 질투 미움을 받기 마련이고 늘 고독하기 십상입니다. 자신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로 인하여 질투, 미움을 받아가며 인생을 마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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