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새벽길은 행복입니다.
일 년 중 골라 살라면 가을일 것이고, 하루 중 골라 살라면 단연 새벽일 것입니다. 한밤중에 잠이 깨어 일어나는 야기夜起가 좋긴 하지만 암흑과 적막의 시간이라서 새벽이 밝아올 때 일어나는 신기晨起만 못할 것 같습니다. 여명이 터오는 새벽은 황혼에 들어선 노인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노인에게도 잠시나마 새로운 생동의 기운을 줍니다. 새벽의 생동하는 기운은 회춘은 몰라도 노화를 늦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충분합니다. 특히 더위가 맹위를 떨칠 때 새벽은 가장 시원한 시간입니다. 그냥 시원한 것이 아니라 정신을 가장 맑고 깨끗하게 합니다. 그냥 맑고 깨끗한 것이 아니라 머릿속을 울릴 정도로 말끔히 비워줍니다. 그러면 악기의 공명통이 소리를 울리듯이 머릿속이 가장 명랑해집니다. 흐리멍덩했던 머리에도 신기하게 기억력이 살아나 잊혔던 지난 일들이 실로폰 소리처럼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묵은 나무에 새싹이 돋듯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나기도 하고, 여기저기에서 어지럽던 생각들이 가지런해지기도 합니다. 밤잠을 깼을 때처럼 깊고 넓은 명상의 세계로 몰입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하루를 뒤져보아도 지금만 한 때가 없습니다. 한밤중의 야기도 그럴 수 있지만 그건 문 닫고 방 안에서 즐기는 혼자만의 고독이어서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혼자 바깥에 나와 여명을 헤치고 솟아있는 나무를 보면 나도 모르게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수백 년을 묵묵히 서있는 굽은 나무는 원만을, 하늘로 곧은 나무는 위엄과 의지를 선언하고 있는 듯합니다. 나무에서 나온다는 피톤치드 때문인지 숲길을 걷노라면 머리가 훨씬 맑아집니다. 나무가 없는 길이나 운동장, 러닝머신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상쾌함이 거기에 있습니다. 게다가 눈까지 좋아진다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노래하는 새들은 잘 어우러진 새벽 합창대입니다. 휘파람새의 경쾌함과 딱따구리의 부지런과 까마귀의 위엄에 뻐꾸기의 음흉스러움도 여기저기에 끼어 있습니다. 매미는 목 놓아 여름을 아쉬워하고, 풀벌레는 수줍은 듯 가을을 재촉합니다. 이슬은 신발을 적시지만 조금 있으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 줍니다. 새벽 숲 속은 자연과 조물주의 위대하고 신비스러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에서 겸손과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새벽 숲길에 오르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호사가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호사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아니면 누리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젊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새벽 숲길의 감동입니다. 아름다운 새벽 숲길도 눈과 귀와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그저 새벽 공기나 마시고, 몸이나 단련시킬 수 있는 운동에 불과하여 마음까지는 울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새벽 숲길을 오르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그렇게 여럿이 떼 지어 시끌벅적 몰려다니면 신체단련이나 친목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깊은 감동까지는 이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대중가요를 틀어놓고 다니기도 하고, 땀을 흘려가며 뛰어다녀 빼어난 체력을 자랑하는 건각들도 있지만 그래가지고서는 역시 새벽 숲 속의 깊은 세계는 알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끔은 야호- 를 외치는 기분은 알겠습니다만 새벽 세계의 분위기와는 덜 어울리는 호들갑일 것 같습니다. 가끔은 염주나 묵주를 손에 들고 염불이나 기도문을 외우는 신심깊은 신자들도 있어 새벽 숲길을 더 경건하게 하지만 그보다는 기도문에 얽매이지 않는 감사기도, 아니면 자신을 돌아보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옆에 다른 사람이 있다면 이 모든 호사는 날아가 버립니다. 적어도 새벽 숲길만은 혼자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 혼자 나가게 눈감아 주는 아내가 고맙습니다. 따라나선다면 마땅히 거절할 명분이 없을 것입니다. 하기야 나도 오밤중에 일어나서 잠자코 있어 주었으니 피장파장입니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가족이라도 노년의 새벽 숲길은 역시 혼자 누리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지 모릅니다.
새벽 숲길은 기력이 모자라는 노인에게는 오를 수 없는 길이기에 거기에 오를 수 있는 노인은 커다란 행운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 행운의 시간에 탐욕스러운 생각을 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떠올린다면 행운은 내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참에 내가 옳다는 집착까지 버릴 수 있다면 이 새벽의 성스러움에 동참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선택된 노인이나 누릴 수 있는 행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한 노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벽 숲 호젓한 길을 조용히 찾아 명상에 잠기는 것은 노년의 소중하고 그윽한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