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밤잠 없는 것은 다행입니다.
노화현상 중의 하나가 밤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생체리듬이 바뀌어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초저녁 잠이 많아지고 새벽잠이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초저녁, 새벽으로 가족과 같이 할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니 아마도 세상과 떨어져 있는 연습을 하라는 하느님의 섭리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초저녁이야 내가 잠들면 그만이니 문제 될 게 없지만 새벽이야 혼자 깨어있어야 하니 내가 당장 불편한 시간입니다. 낮이야 얼마든지 어울리고 부딪칠 일이 귀찮을 정도로 많지만 한밤중은 방 안에서 나 혼자 해결해야 할 시간이라서 만만찮은 문제가 틀림없습니다. 깜깜한 밤중에 혼자 깨어 잠도 오지 않는데 그 긴 시간을 아무도 나를 상대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다가 아무 할 일이 없다는 무기력, 고독감은 뼈까지 저리게 합니다. 그래서 오밤중에 잠을 깨는 것은 노인의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행히 TV, 읽을거리, 스마트폰까지 있어 옛날 노인보다 형편이 낫지만 아무래도 기다려지는 시간은 아닙니다.
그런데 맹자는 야기론(夜氣論)을 펴서 밤을 예찬했습니다. 알 듯 모를 듯한 '야밤의 예찬론'이지만 맹자의 '야기(夜氣)'가 노인이 오밤중에 잠을 깨서 일어나는 '야기(夜起)'의 시간이라면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맹자는 夜氣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장부의 호연지기(浩然之氣- 세상을 뒤덮을 만한 기개)의 기상을 기를 수 있는 대자연의 기운'이라고 했습니다. 夜란 빛이 없는 어둠이고, 어둠은 다시 빛의 계기가 되므로 夜氣야말로 천지 우주의 生氣를 기르는 원초적 기운이라는 것입니다. 쉬운 말은 아니지만 결국 夜氣를 잘 닦아 浩然之氣(호연지기), 세상을 덮을 만한 대장부의 기상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맹자 夜氣論의 핵심입니다. 생각건대 백주대낮의 장부다운 호연지기는 젊은이에게, 밤잠 없는 노인에게는 오밤중에 잠을 깨는 야기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에 ‘夜氣가 노인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노인이 새벽잠이 없어져 야기(夜起)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밤중에 노인이 홀로 깨어있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요, 노인에게 주어진 기회, 특권이 아닐까? 그것은 아닌 밤중의 궁상, 청승, 주책, 꼴불견이 아니라 노인에게 마지막으로 베풀어 준 자연의 은총이 아닐까 합니다. 이 소중한 은총을 심심무료하게 쪼그리고 앉아서 가족의 눈치나 살피며 해로운 담배나 피우면서 날 새기만을 기다려서야 여생이 차라리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원래 한번 잠들었다가 깨면 하루를 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애들도 잠이 깨면 몇 밤 잤느냐고 자꾸 물어보았죠. 그러니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2-3시에 깨면 이미 하루를 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밤중에 깨어서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때우거나 식구들을 귀찮케 한다면 잠자는 것만도 못하겠지만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삶과 하루를 얻은 셈입니다. 군자는 혼자 있을 때를 삼가라고 했지만 이때야말로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넉넉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처럼 나 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인생이 없을 것입니다. 그 시간은 잠자는 사람이나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없는 인생보너스를 받은 셈입니다. 남이 가질 수 없는 시간을 더 누릴 수 있다면 인생의 덤을 받은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장수가 아닐는지요? 비록 밝은 대낮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짧은 시간이지만 대낮에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하루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장수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노인이 잠이 없어 한밤중에 일어나는 夜起는 여생을 채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그 소중한 기회에 의미와 보람으로 채우는 것은 현명한 노인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입니다. 한밤중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에도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그렇게 되면 나의 주의만 한 곳에 오롯이 모을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여생을 설계하기에는 이 시간처럼 좋을 때가 없습니다. 이러한 주의집중력은 이때가 제일 높고, 정신도 한숨 자고 난 이때가 제일 맑습니다. 도시에는 자동차 소음에 가끔은 술주정꾼의 소란도 있지만 이럴 때는 원래 풀벌레 소리마저 시끄러운 법입니다. 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는지 알 듯도 합니다. 이때처럼 글자가 뚜렷이 보이는 때도 없을 것입니다. 책을 보는 것도 피곤하다면 TV, 신문, 스마트폰을 뒤져보아도 좋습니다. 그것이 억지로 눈을 감고 뒤척이다가 심심해서 다른 사람을 깨워 수선 떠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입니다. 비록 호연지기는 못되더라도 혼자 야기夜起해서 야기夜氣를 기르는 것은 불면증이 아니라 노년의 다행이요, 두툼한 인생의 보너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