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인간임을 포기한다면 미신이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巫覡무격신앙이 성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초자연적, 신비적 성향이 짙은 민족이지 않았나 싶다. 원시시대에 그렇지 않은 민족이 있을까만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는 종교가 매우 성행하는 편에 속한다. 짧은 기독교 전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만큼 교회의 뾰족탑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세계의 십 대 교회가 모두 우리나라에 있다고도 한다. 미국과 일본에서 교세가 있는 통일교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것이고, 기독교 불모지였던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많은 신도를 확보하고 있는 선교사도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선교사가 아니라면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복종시킬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적잖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성지가 되어 외국인이 성지순례를 온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다. 북한의 독재자들이 말도 안 되는 신격화, 우상화에 성공하고 있는 것도 우리 민족의 농후한 신비적 기질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종교란 인생을 바람직하게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니 교회가 많은 것은 우선 좋은 일이다. 信仰은 종교적인 믿음을 말한다. 仰자의 자의(字義)로 말하면 사람이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러 소원을 비는 모습이다. 인간이 하늘에 비는 것이란 자신의 능력이 닿지 않는 일일 것이라는 점에서 신앙은 비현실적, 초현실적인 행위일 가능성이 많다. 만약에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구태여 하늘에 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사람의 행위가 올바르지 못하다면 사람이 하늘에 비는 소원도 올바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마다 하늘에 올바르지 못한 소원을 빌어 그것이 이루어졌다면 세상은 벌써 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은 매우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러한 신앙을 祈福기복신앙이라고 해서 경계한다. 복을 비는 행위가 잘 못된 것이 아니라 그 복이 자신만을 위한 복이었을 때, 그것이 사회의 복과 상치되었을 때는 신앙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사이비 신앙, 사교(邪敎)라고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사교의 재앙에 가깝다. 다행히 신은 인간의 탐욕적인 기복신앙을 들어주지 않아서 더 큰 재앙을 막아 주고 있다.
정상적인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복보다는 사회의 복을 우선해야 한다. 정의로운 신이라면 당연히 모든 인간을 사랑하지, 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시시대의 신앙은 집단적이어서 지금의 개인적인 신앙보다 오히려 건전할 수 있었다. 개인의 소원이 사회의 소원과 일치된다면 좋겠지만 사실은 대개 다르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내가 복을 차지하고 나면 다른 사람의 복은 그만큼 줄어들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복을 기원해서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은 하루도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신앙행위가 반사회적이고, 다수의 행복을 해칠 때 우리는 그것을 미신이라고 한다. 신앙이 인간임을 포기한다면 결국 미신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무속신앙, 불교신앙을 미신이라고 매도하기 좋아하는 기독교 신앙도 기복신앙으로 흐른다면 역시 迷信미신, 사이비 종교에서 멀지 않다. 무슨 종교든지 미신, 기복신앙에 빠져있다면 사회를 불행하게 만든다. 종교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서 말세를 재촉한다면 결국 인류의 멸망을 재촉하는 것이므로 미신, 사이비 종교가 분명하다.
종교는 내세를 추구하는 것이 본질이지만 인간의 행복을 도외시한다면 하늘에서는 행복할지라도 인간에게는 결국 불행한 일이다. 인간의 불행이 전제된다면 그 종교는 인간에게 행복을 줄 수 없고, 그것은 인간이 바라는 종교일 수 없다. 종교가 오로지 내세에 모든 인생을 건다면 종교적으로는 옳겠지만 그것은 또한 현실적으로는 비인간적, 반사회적이다. 이렇게 되면 종교와 인간이 화합할 수 없게 된다. 신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에게 부여한 임무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다스리는 것이었다. 신의 무한한 사랑을 전제한다면 신은 자신을 위해서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해야 옳다. 만약에 신이 자신만을 위해서 살라고 했다면 그 신은 이기적인 신일 뿐, 사랑과 자비의 신은 아니다. 악신도 존재할 수 있겠지만 믿고 싶은 신은 아니다. 예수님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 것은 나만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라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신앙이란 신의 뜻대로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 그 모자란 부분을 하늘에 의탁하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인간 스스로의 노력이 없는 신앙이라면 내세도, 현세의 행복도 없을 것이다. 인간적인 노력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자칫 인간이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기복과 요행만을 좇게 할 수 있다. 신앙은 인간의 행위이기에 인간적이어야 하고, 인간의 일을 하도록 돕는 조직체가 종교여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종교관을 위험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인간을 더 위험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을 포기하고 오로지 신에게만 의지하라는 종교일 것이다. 인간이 가정과 사회를 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구원만을 좇는다면 인간세계는 유지될 수 없다. 인간세계의 붕괴를 초래하는 맹목적인 신앙보다는 차라리 위험한 신앙이 낫지 않을까? 자신을 위해서 '너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재물과 탐욕이지 인간의 의지와 노력까지 포기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지금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의 종교, 특히 기독교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신천지야 코로나 천지를 만든 책임을 면할 수 없겠지만 여기에서 멀지 않은 교파나 자칭 정통종단도 적지 않은 손상을 입을 것이다. 바라건대 이번 파동이 우리 기독교가 면모일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조국을 구한다고 호언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성적인 인간의 노력도 아니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기독교 스스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더구나 교회가 정치적으로 특정단체를 지지하거나 포용할 생각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그러고서야 기독교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종교, 신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주제넘은 말을 많이 한 것 같다. 또는 지나치게 세속적인 종교관이라는 비판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종교가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어지럽게 한다면 정의로운 신의 뜻도 아닐 것이고, 오히려 세상을 썩게 한다면 신의 사랑을 배반하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신의 뜻에 어긋나고 거역한다면 인간에게도 신에게도 용납되지 못할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이야 속일 수 있어도 정의로운 신이야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