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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Feb 26. 2020

코로나와 미신 1

종교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미신은 타파되어야 한다.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삼키려 하고 있다. 세계가 공포에 떠는 가운데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면 그만이겠지만 우리가 발생국인 중국 다음으로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은 충격이다. 중국이야 개발도상국이요, 질병관리가 후진국이라서 그렇다 하더라도 당당한 OECD국가요, 문화선진국인 대한민국이 전염병으로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주인공이 되었으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발생국에 인접했으니 코로나19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지만 애초 철저히 대처했던 우리는 대책 없던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역시 우리는 일본을 따라갈 수 없는가? 그런데 신천지 사태 전만 해도 우리는 코로나 모범 대처국으로 인정받았었다. 그것이 일개 사이비 종교 때문에 졸지에 세계로부터 중국만도 못한 혐오국이 되어버렸다. 종교가 없는 나라는 없겠지만 종교가 국가를 주도하는 나라는 흔치 않거나 대개는 후진, 빈민국이다. 우리나라가 종교국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국민 대부분이 종교를 가지고 있고, 그 중에서도 기독교가 대세이다.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지구촌을 누비고 있고, 세계 10대 교회가 모두 우리나라에 있다니 우리는 이제 기독교 선진국이라 할 만하다. 기독교 본 고장에도 없는 교파를 만들어 우리나라가 성지가 되고, 세계를 경영하는 한국인 교주도 있다. 미국은 물론 기독교가 힘을 못 쓰는 중국 일본에까지 그 위세가 뻗쳐 있으니 자랑스럽기도 하다. 아마도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정신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기독교일 것이다. 서구의 산업기술을 응용 발전시켜 역수출하는 우리의 경제 구조를 닮았다면 나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가공기술 무역은 나라를 부흥시켰지만 우리의 기독교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일이 잦다. 기독교 스스로가 사이비 기독교가 많다고 탄식할 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하다. 사이비 종교를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사회의 발전에 긍정적이었을 때에 건전한 종교이고, 그렇지 못하거나 사회 행복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면 사이비(似而非) 내지 사교(邪敎)집단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말세를 내세워 현실적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종교는 반사회적인 사교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가족마저 팽개치고 거기에 빠진 사람들은 극단적인 이기주의거나 요행주의자들이고, 국민들이 거기에 빠진다면 코로나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는다면 기복적인 사이비일 가능성이 많다. 정의로운 하느님은 들어 줄 기도만 들어주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적, 배타적, 요행적, 탐욕적인 기도가 다 이루어진다면 인류는 단 하루도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자신들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고, 다른 종교는 사교라고 주장한다면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사이비일 가능성이 많다. 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박애정신과 어긋난다. 사이비란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에 반하는 짓을 한다면 사이비가 아닐까? 

 

  기독교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전통적인 미신이요, 우상숭배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보면 미신이나 우상숭배보다 사이비 기독교의 폐해가 훨씬 컸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종교 사건이 많았지만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박근혜 정권을 몰락시킨 세월호 사건이나, 이번의 코로나19 참사 등은 모두 사교이거나 사이비 기독교가 주범이다. 신앙적 신념이란 구실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종교는 사이비 이전에 극단의 이기주의요, 반사회적, 반국가적 행위이므로 용납될 수 없다. 신도들이 세운 교회를 매매하고, 세습한다면 사이비 이전에 절도행위에 가깝다. 신도들에게는 십일조를 강요하면서 최소한의 납세마저 거부한다면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누구는 사이비이고, 누구는 아니고 논란을 벌이기가 부끄러운 현실이다.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우리나라에서 왜 이렇게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사이비 신앙이 성행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우리의 전통사상은 샤머니즘, 무격신앙이었다. 고대에는 다 그러려니 할지 모르지만 가까운 중국만 해도 일찌감치 도교, 유가, 불교사상이 중심이 되었으므로 우리처럼 무속행위가 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창 좋을 때 ‘신난다’ ‘신명 좋다’ ‘신바람’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여기에서 ‘신’이란 신발이나 라면이 아니라 神이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주여!’ ‘알렐루야! 오, 마이 갓’이다. 우리는 본래 신을 좋아하고, 의지하고, 숭배했다는 흔적이 아닐까 한다. 신을 숭배한 것은 원시사회의 공통점이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신에게 의지하려는 기질이 유별났었음을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신통(神通)하다’라는 말도 자주 하는데 이것도 다분히 무속적이라는 생각이다. 무당이란 神과 통하는 중개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속신앙을 입에 담고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의 사이비 신앙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신바람 유전자의 탓이라면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사교 사이비 신앙만 제거한다고 해서 일시에 해결될 일이 아니거니와 그것을 제거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국민적 유전자라면 누구나 사이비적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콕 집어내는 것처럼 할 수 없는 일이다. 사교와 무속과 닮았고, 무속과 사이비를 구분하기 어렵고, 사이비와 정통신앙의 경계가 또한 명확치 않은 부분이 있다. 사교를 캐내다 보면 무속, 사이비는 물론  정통 종교까지 매달려나온다면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통임을 자부하는 종교는 과연 신바람 속성에서 자유롭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본질적으로 신앙과 신바람을 엄격히 구분할 수 있는가? 정통 종교들은 정말 사이비 사교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자신이 있는가?  


  이것이 기존의 종단이나 정부나 사회에서 사이비 사교들을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일지 모른다. 이것이 또한 신도들이 정통과 사이비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인지 모른다.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는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는 불원간에 해결될 환난이지만 이 문제는 일시적인 탁상공론으로 감당한 문제가 아니므로 일단 여기에서는 멈추고 가까운 시일 내에 이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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