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일기 예원 1화
대학은 졸업했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직장 취업은 어려웠다.
아직도 나를 10살 어린 아이 취급하며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아버지의 그늘 밑이 답답하다..
고3 수능 준비 때도 여자의 3가지 덕목이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 여자는 살이 찌면 안된다.
둘. 여자는 이뻐야 한다.
셋. 여자는 애교가 많아야 한다.
특히 살이 찌면 안된다며,
밥을 남길 때마다 칭찬에 칭찬을 하셨다.
그래서 대학 진학 후엔
쌀 귀한 줄 알고 자란 농어촌 전형으로 온 선배에게 밥을 남기고 혼이 났을 땐,
오히려 그 선배가 이상하게보였으니..
여자든 남자든
살이 찌면 건강에 해로워서 걱정하는 건 옳지만,
남자들 보기 좋으라고
여자가 날씬해야한다는 말엔 동의 못할 것 같다.
거기다 내겐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를
' 코끼리 ' 라고 부르는 아버지는 마치 내게도 상처를 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엄마가 살이 쪄서일까?
뚱뚱하다고 사람들 앞에서 엄마를 뚱보라 부르거나, 당당하게 바람을 피우고 돌아오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은
아무리 아빠라고 해도 믿을 수도 없고, 좋은 말도 잔소리처럼 들린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나름 소심하게 한 대항은, 여자가 최대한 예뻐보이지 않도록 화장을 하지 않는 거다!
하도 화장을 안하니 어느날은 30만원을 주시며 화장품을 사라고 하신다.
친구 딸내미들이 스무살 이쁜 나이에 곱게 화장을 한 모습을 보니, 딸인 내가 쌩얼로 다니는 게 비교되고, 마음 아프셨나 보다.
하지만 취업을 못해 혼이 나는 건 인정해도, 화장만큼은 인정하기 싫었던 스무살 늦은 사춘기였는지..
나는 보란듯이 모두 맛있는 걸 사먹는게 써버렸다.
그런데 살도 안찐다.
평소에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왜냐면 가정환경 자체가 불안했기 때문인 것 같다.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무시 당해서 늘 화가 나 있는 어머니.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도 상처가 많은 사람이기에, 늘 불안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그런 아버지를 떠나지도, 책망하지도 못했던 소심한 엄마는 그 화를 자식에게 풀어버리곤 했다.
일관성 없이 본인들 기분따라 같은 일로 혼이 나기도, 그냥 넘어가기도 하는 일상이 나 역시 조마조마했다.
오늘은 또 누가 분통을 터뜨리며 생사람을 잡을꺄..? 시한폭탄 같은 일상.
집에 있기 싫지만 딱히 갈 곳은 없고..
그저 방문을 잠그고 나면 비로소 겨우 안심되는 그 느낌.
이런 부모님에게 벗어나고픈 생각에 나만의 자유로운 자취를 꿈꾸며 이래저래 알바자리를 알아본다.
급한데로 학원강사 자리 하나를 구했다.
그렇게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는 은신처 하나를 구했지만..
여전히 일상은 건조하고 퍽퍽하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알람을 끄고도
폭신한 이불에 더 비비적대다
겨우 세수와 양치를 하고,
출근 준비 마치고,
퇴근길에 지쳐 집에 오면 드디어 내 세상이다 싶어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을 하던 일상들이 참으로 건조하고 지루하다.
여행, 연애, 친구, 스키, 스노보드, 서핑에 드라마 시청까지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생각했지만,
즐거운 건 그 순간뿐,
지나고나면 결국엔 허무해지는 그것들.
1년 뒤엔 그날 몇시에 무슨 얘길했는지 생각조차 안나는 얘기들...
나만 이런가?
아니면 다들 이렇게 그냥저냥 사는건가??
더 이상 하기 싫은 공무원이 되라던 아버지의 잔소리도 듣기가 싫다.
당뇨와 갱년기의 부작용까지 더해 부쩍 사나워진 어머니의 그 날카로움에 베이고 또 베이는 것에도 무뎌질 즈음..
내게도 우울증이란 녀석이 찾아왔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러다 불러내는 친구가 있으면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혼자서 유럽여행도 다녀왔지만...
어째서인지 살아있는 내 몸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가끔은 커다란 가시 방석 괴물이 온몸을 찌른다는 통각이 착각인 줄 알면서도. 생생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다시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바람과 이혼, 재결합 과정에서 겪은 기억들은 나 자신이 부모님에게 그리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걸 각인시켰고,
그래서인지 9살 어린나이부터
가슴에 구멍이 난 그 느낌이 허무함.이라는 이름의 것인줄도 모르면서 인생의 허망함을 느꼈던 것 같다.
연애? 남자의 사랑?
당연히 믿지 않았다.
엄마처럼 나도 크리스마스에 혼자 남아 울게 될까봐 두려웠으니까.
믿지 않으니 온전히 줄 수 없고,
온전히 주지 않는 연애는 당연히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었다.
그 구멍을 더 이상 그 무엇으로도 치유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이젠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를 잊어버린 것 같다.
허망한 마음에 남들이 그리도 좋아한다는 술도 마셔보고, 노래방에서 막춤을 추며 소리도 질러봤지만..
내 취향과는 맞지 않다는 걸 단 3번 정도만 해봐도 알겠더라.
그런 내게 한줄기 빛과도 같은 존재가 찾아올 줄이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지하철 길바닥에서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그는 바로..
(파랑새 일기 2편에서)
+ 오늘의 한마디 - 동물보호
아버지는 밥을 남기면 칭찬하셨지만,
그건 옳은 일은 아닙니다.
살아있는 동식물 친구들을 죽여 음식을 만들었다면, 절대 남기지 마세요!
종갓집 맏며느리 이야기_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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