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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바람이 지긋지긋한 이유

파랑새일기 예원 4화


아마도 어릴 때 제가 겪었던 새엄마와의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그 새엄마네 사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 때문일까..?


그 모든 게 아빠의 바람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뇌는 사실과 감정을 노력하지 않는 한,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아래의 파랑새 일기 1화의 20살에서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9살 어린 꼬마 예원이로 돌아가야 한다.


행복, 그 파랑새를 찾아서

한평생 방황한 어린 내면아이를 치유하고자

글을 이어가는 보잘것없는 글쟁이의

파랑새 일기 4화,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나는 애초에 남자라는 동물을 믿지 못했다.

아빠도 9살 어린 시절에 겪은 충격적인 사건 때문이겠지..?


아빠랑 잠시 여행 가는 줄 알고 신나게 가방에 옷을 담는데, 엄마의 표정은 어두웠다.


하루 종일 밥도 먹지 않는 엄마를 보면서도,

그저 내일 어디로 다 같이 놀러 갈지에 들뜬 나는 아무 생각 없는 어린 꼬마였다.

지금 와서 보니 엄마는 가방을 싸지 않는 게 이상했을 법도 한데..


그리고 다음날,

내겐 새엄마란 존재가 생겼다.

하루아침에 온 우주가 뒤바뀐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아빠가 엄마를 빼고 고깃집에 데려가서 친구라며 소개해 주었던 그 여자가 내 엄마라고..?

그럼 우리 엄마는..............?


아니. 중간 설명도 없이, 믿도 끝도 없이,

갑자기 하루 만에 엄마가 바뀐다고??

이건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선 못 배운 내용인데...


다행히 새엄마는 드라마에서 보는 아줌마들처럼 우리를 때리진 않았다.


아빠가 없으면

밥을 안 줘서 좀 그랬지만..


그때 내 동생 나이 6살,

나는 9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새엄마랑 아빠가 결혼식을 올린 후 신혼을 즐기고 싶었는지, 새엄마가 우릴 싫어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또 일주일 만에 처음 보는 새엄마네 친척 집에 우릴 보내버렸다.


서로 인사 한번 없이,

또 하루 만에 낯선 사람들,

그것도 그쪽 '대가족'과 살아야 하는 현실에..

나도 모르게 꽤나 큰 충격을 받았나 보다.


당시 그쪽 집들의 구조, 특정 사건들은 기억이 나는데, 정작 내 옆에 있어야 할 내 하나뿐인 동생이 아직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ㅠㅠ


아마도 생존에 위협을 느껴서였을까?

그 상황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기 때문일까?

나 이외의 존재들은 내 동생조차 배제하는 게 본능인가?


블랙아웃.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장면은 딱 하나,

동생과 같이 있던 그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동생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그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새엄마네 조카들은 우리보다 2~3살에서 10살까지도 많았다.

그중 바로 위 남자 조카들은 어느 날 어른들이 없을 때 나랑 내 동생을 발가 벗긴 채 욕조에 집어넣었다.


당시 그 집의 화장실에 있던 욕조는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던 욕조만큼 컸던 걸로 기억한다.

욕조에서 숨을 못 쉬도록 힘으로 머리를 눌러 물에 담가버리는 그들에게 맞서 소리를 지르지만, 아무도 들을 수 없다.

다행히 나는 동생보다 힘이 좋으니 욕조 밖으로 나왔지만, 동생은 너무 어린 나머지 힘에 부쳐 물속에서 허우적댄다.


세상 하나뿐인 내 동생과 내가 울부짖는 걸 보며 악마들은 까르르 웃고 있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내 동생 좀 구해주세요!라고 소리를 치지만 마치 시커면 밤바다에 묶여 외치는 말이라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그런 느낌.


눈물이 펑펑 흐르고, 너무 억울하고, 충격적이라 그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는 이 또한 아직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또다시 블랙아웃.


내 무의식이 어린 영혼이 더 크게 다치는 걸 보호하려고 일부러 지우기라도 한 걸까.


그렇게 그쪽 조카들은 우릴 든든하게 보호해 줄 어른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만만하게 보고 무시했다.


아마도 내가 2차 성징이 올만큼 컸을 때까지 함께 한다면.. 그들에게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그 어린 나이에도 들었던 것 같다.


이런 사실들은 아빠는

지금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르고,

다음 생에도 모르겠지.


그 순간에도 나랑 내 동생은 알고 있었다.

낯선 도시, 낯선 집, 낯선 사람들 속에서 우리 편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 일들을 겪고도 아빠, 새엄마네 친척 어른들에게 알릴 생각도 못 할 만큼..

어린아이의 밝고 청량한 모습은 어둡고 소심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 세상에 내 방패가 되어줄 지붕이 없는 느낌이랄까.

더 이상 엄마품에 안겨 어리광 부릴 수도, 그 엄마를 다신 볼 수 없다는 허탈한 절망감과 충격 때문이었을까..


괴롭힘을 당했을 때 동생이랑 같이 있었던 기억 말고는, 동생의 존재가 내 기억 속에 없다.


정말이지 새엄마네 집에서도,

새엄마네 친척 집에서도

분명 동생과 함께 있었을 텐데..


우리가 하루 종일 같이 무얼 했는지,

밥을 같이 먹긴 했는지,

잠은 같이 자긴 했는지..


도대체 아무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때 나 만큼, 아니 나보다 더 아프고 외로운 건 6살 내 어린 동생이었을 텐데..ㅠㅠ


다만 그땐 밥은 굶지 않았던 것 같다.


얼마 뒤 그 친척들이 더 이상 우릴 돌보기 싫다고 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오래지 않아 다시 새엄마네 집으로 우린 옮겨졌다.


다시 새엄마네로 돌아와 함께 살 때는 우릴 그렇게 괴롭힐 사람은 없었다.

다만 아빠가 집에 없을 땐 밥을 안 줄 뿐..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새엄마의 나이대가 30대였던 것 같은데, 남편의 전부인 자식들이 뭐가 좋아서 밥을 챙겨주고 싶을까 싶기도 하다만.


뭐, 밥 좀 안 준다고 해서 서운했던 기억은 없다.


어차피 새엄마가 주는 밥은

울 엄마가 주는 밥보다 맛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소아 우울 증상 때문인지 어차피 배도 고프지 않았으니까.


설령 밥을 준다고 해도, 백화점에서 아빠에게 인형을 사달라는 나를 새엄마가 뒤에서 몰래 꼬집고 노려보던 그 날카로운 눈매가 무서웠던 기억이.. 그가 주는 밥을 잘 넘어가지 않게 만들었으니까.

애 둘을 키우느라 그 고운 젊음을 갈아 넣었던 엄마는 믿었던 아빠가 배신할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아빠는.. 울 엄마를 속여가며 몰래 바람피울 만큼 좋아한 여자니까? 어쩌면 우리에게도 잘할 거라 믿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에게 더 큰 관심은 없어서 지인 지는 모르겠으나..


- 아빠는 우리가 새엄마랑 사는 게 불편하진 않은지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 나중에 그 여자 친척 집에 우리를 보내버렸을 때도 혹여 그 집식구들이 우릴 서럽게 하거나 잘 대해주는지에 대해서도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묻지도 않는 말에 투정 부리고 보채봐야 돌아오는 건 비난과 상처밖에 없었으니..

자녀에게도 그런 관심이 없는데, 새엄마에 대한 관심도 금방 꺼졌나 보다.

아니면 뭔가 문제라도 생겼나?


분명 둘이서 결혼식을 올린 사진을 봤는데,

(결혼식을 올린 사람들끼리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초등학교에서 배웠으니까..)

그래서 우리도 엄마를 다시 만날 실낱같은 희망조차 품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우릴 엄마에게 데려간다.

그리고 엄마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제발 받아달라고..


엄마는 우리를 한번 보더니,

그런 아빠를 받아준다.

화도 한번 못 내는 우리 엄마는.

똑똑한 척하는 바보 같다.


(하지만, 누구든 그 상황에 되어보지 않으면 자식인 나도 함부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되겠지..)


이후에도 엄마가 새엄마와의 일로 아빠에게 화를 내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더 짜증이 난다.


새엄마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둘이서 결혼식은 했는지를 나한테 몇 년째 캐묻는다.


싫다. 정말 싫다.

나의 우울증은 엄마를 다시 만났지만, 계속되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부모님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썼던 날들이 후회된다.

어차피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은 빨리 포기를 했었어야 했는데..


차라리 당시 우울했던 나는 배고프지 않더라도,

6살 코흘리개 어린 내 동생만큼은 냉장고를 뒤지다 쫓겨나는 한이 있거나, 새엄마랑 싸워서라도 밥을 챙겨줄걸.. 이 점은 너무너무 후회된다.


우울한데, 그게 우울이란 감정인지조차 몰랐던 9살 여자 꼬마 아이.


그저 부모님에겐 밝은 아이, 말 잘 듣는 아이로 잘 보여야지만 버려지지 않을 거란 본능적인 직감이 나를 사춘기 반항 한 번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게 만들었던 것 같다.



위태로운 부부일수록,

자신들이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인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반대로 알고 있다.


평생을 본인들만

- 희생하고,

- 손해 봤고,

- 개고생 했다고.


자기를 고생시킨 가족이나 주변인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며 ' 남 탓 '하기 바쁘다.


위의 사실들은 부모님은 평생 동안 모르시는 일이다.


엄마한테조차 말하지 않았다.

엄마 역시 우울 증세를 보였으니까..


어차피 아무리 부모라도 우리가 말하는 걸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다는 걸 그 어린 나이에 이미 깨달았던 것 같다.


커서도 가만히 지켜보니 자신들의 인생조차 정리되지 않아 서로 싸우고, 비난하기 바쁜데 감히 나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걸 수차례의 경험들과 상처를 얻고 나서야 포기할 수 있었으니..


이렇게 풀어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오랜 시간 아팠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아픈데 아픈지도 모르고 살았던 순간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시댁 다락방에서 신혼을 시작하는 게 그리도 좋았던 이유는.. 이런 기억 때문이었으리.




파랑새 일기에서 종갓집 며느리의 시댁 다락방 이야기까지 오려면 또 여러 개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또 파랑새 일기 5편에서 차분하게 이어갈게요.. ^^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묵은 상처를 치유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나 봅니다.

이젠 나이도 들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제 생각일 뿐, 제 영혼은 꽤나 아팠나 봐요.

한여름의 몸살감기가 그 증거가 아니었나 싶네요^^;


다행히 몸이 나아지면서 이렇게 또 글을 이어갑니다..


저처럼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낸 분들을 위해,

아직 상처가 아물지 못해 누가 콕하고 건드리면 팡하고 터지는 분들을 위해~

2가지 모임을 운영 중이에요. ^^


하나는 반려동물 교감 & 행동교정방,


또 다른 하나는 저 같은 어른들을 위한 방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들어오셔서 몸마음 반려동물 친구들까지 함께 치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해요~

오늘도 가족들을 위해 젊음을 갈아 넣고 있는 많은 부모라는 이름의 어른 아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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