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일기 예원 5화 - 바람 핀 남자가 더 당당한 현실이란..
9살 꼬마 예원이에게
하루아침에 새엄마가 생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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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엄마와 조카들에게
눈치 보며 구박받고, 옷이 벗겨진 채 물고문을 당하기 전에는 반드시 친부모들이 멀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있을 테지..
- 한 여자랑 사는 게 점점 익숙해지고 지겨워지는 아빠
- 아이 둘을 낳고 잘난 시댁에게 무시와 모함을 받으며 스트레스받는 엄마
- 그런 엄마를 달래긴커녕 시댁 편을 드는 아빠
- 그런 아빠를 보며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다 살이 찌는 엄마
보통 이쯤 되면 부부사이에 대화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오가는 대화도 이미 쌓여버린 앙금에 서로를 더 아프게 베어버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그 후에 부부사이에 '가장 좋은 순간'이란 서로의 얼굴을 최대한 마주하지 않는 것이다.
- 이젠 말도 없이 퇴근이 늦어지는 아빠
- 주말에도 약속 때문에 집에 없는 아빠
- 그런 아빠를 기다리다 지쳐서 화가 나는 엄마
- 와이셔츠에 또 립스틱을 묻혀오는 아빠를 보며 배신감을 느끼는 엄마
- 폭식과 당분으로 그 스트레스와 혈압을 낮추려는 엄마
다행히 술을 입에 대지 않으신 것만 해도 참 감사하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하마터면 나까지 술에 인생을 의존하게 될 뻔했으니.. 대신 엄마가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을 자주 보다 보니, 나까지 쇼핑 중독에 빠진 점은 참 안타깝다. ㅜㅜ
- 바람피워 미안한 것도 시간 지나면 사라지나 보다. 공주 대우하던 연애할 때와는 180도 다르게, 이젠 살이 쪘다며 돼지, 코끼리라고 제3자 앞에서도 당당하게 엄마를 부르는 아빠
-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이 생기면서 점점 집을 지저분해도 청소하지 않는 엄마
- 그런 엄마를 보며 더 화가 나서 자신의 바람을 정당화시키는 아빠
- 이젠 삶의 희망을 잃고 자신을 가꾸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한 엄마
- 그렇게 당뇨와 갑상선 기능저하가 생긴 줄도 모른 채 10년을 몸이 안 좋아서 혼자 끙끙 앓던 엄마
- 그런 엄마를 두고 말도 없이 친구들과 하와이로, 동남아로 골프 여행을 다녀오는 아빠
- 엄마가 병원비 달라고 하면 돈 든다며 짜증부터 내는 아빠
그 모든 과정에서 상처받는 자녀들은..
본인들의 욕심에 눈이 멀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때는 유튜브나 대중매체로 인간의 심리나 정신을 다루는 전문가나 실질적인 조언을 접하기 힘든 시절이기도 하고,
특히 정신과나 부부 상담을 받는 것이 지방 소도시에서는 자신의 흠을 자초하는 일이라 여겨 꺼리셨으니..
그리고 그 악순환은 자녀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면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는 점은, 두 분이 아무리 자녀를 힘들게 키웠고, 노력한 부분이 있고를 떠나 분명히 잘못된 점이라는 것이다.
그런 부모님 밑에 사는 자녀들은 아래의 이유들로 죽을 만큼 힘들 수도 있다.
(부디 결혼해서 자녀를 키우는 분들이시라면 이 글을 보신 후 성숙한 대화법을 공부할 필요를 느끼시길 바랍니다..)
1) 틈만 나면 폭탄 터지듯 터지는 부부 싸움
: 세상의 전부인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말로 할퀴는 모습을 볼 때는 미처 몰랐다.
- 엄마가 아빠를 비난하는 그 말이 아이의 가슴도 할퀸다는 것을..
- 아빠가 엄마를 무시하는 그 말이 아이의 영혼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을..
2) 부부 싸움 중에 갑자기 만만한 자녀에게 분풀이하기
: 똑같이 말을 안 들어도, 엄마나 아빠가 기분이 좋으면 웃으며 넘어가지만 두 분이서 싸운 뒤엔 반드시 나와 내 동생도 소환이 된다. -_-
" 일상생활에서 일관성이 없는 교육은,
사람 자녀나 반려동물에게 큰 스트레스와 질병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
3) 나빠지는 건강과 떨어지는 성적
: 1,2번은 특히 밥을 먹다가 많이 발생했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 어릴 때부터 소화가 잘되지 않고,
- 비염과 축농증을 달고 살며,
- 손발이 늘 차고,
- 감기에 365일 중 360일은 걸려있는 게 기본.
- 또 늘 머리에 브레인 포그가 낀 마냥 사람이 좀 멍~한 상태였다.
친한 한의사 선생님이 계셨는데, 아버지 친구분이시라 우리 집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계셨다.
스트레스받아 내가 아픈 거라며 늘 나를 딱하게 보시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래서 치료받으러 갔는데 오히려 나한테 용돈을 주시곤 하셨으니..
중학교 땐 할머니 댁에 가면 스스로 수학이나 영어 문제집을 챙겨 가져가서 침대에 누워 심심하면 풀 정도로 공부를 좋아했지만,
부모님의 싸움이 거세지면서 점점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당연히 성적도 점점 떨어지고, 공부도 하기 싫어졌다.
그리고 성장 후 심리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자녀일수록, 성적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는 것을..
나는 그 반대였다.
바람을 피우고 돌아온 아빠가 엄마에게 초갑질을 하게 되며 파탄이 난 후부터는, 이젠 누가 말을 해도 잘 귀에 들어오지 않고.. 친구랑 놀러 나가는 것도 귀찮고..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결혼 후 시댁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을 땐, 시어머니가 많이 답답해하셨다.
한번 말하면? 잘 알아들어야 하는데 잘 잊어버린다고... ㅜㅜ
스무 살 성인이 되자마자 내 동생은 바로 서울로 도피하듯 대학에 진학해서 방학 때도 잘 내려오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으니..
불행히도 나는 국립대에 가면 아빠가 더 잘해줄 거라며 술에 취해 내게 한 그 막연한 약속을 굳게 믿고 지방에 남아있던 덕분에..
동생 없이 홀로 부모님의 전쟁을 지켜보고, 참여하고, 다치고, 또 홀로 남겨졌다.
우울증이 심한 엄마와
엄마 외의 다른 취미나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아빠 덕분에
감기몸살로 아파서 3일간 침대에 쓰러져 있어도 그분들이 딸이 아픈지조차 모른 적도 있었으니..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고,
옆에 사람이 있어도 없는 것 같은 그 느낌에 심장이 미치도록 아팠다.
한 번은 죽고 싶어 방에서 자살시도를 한 적도 있었다.
당시 커터칼을 들고 어디를 찔러야 빨리 죽을까.. 고민을 하다.. 차마 찌를 용기는 안 나고..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우주 미아처럼 살아야 하나 싶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며 펑펑 운 적이 있었다.
그때 오랜만에 집에서 골프 티브이를 보며 쉬고 계시던 아버지가 티브이 보는데 방해된다며 왜 청승맞게 우냐고 화를 내셨다.
그리고 골프 흐름을 놓치기 싫은지 또 금방 아빠방으로 들어가신다.
항상 그 방문을 닫을 때는 마치 나 화났다! 기분 나쁘다고!!라고 광고하듯이 귀가 아프고 가슴이 시리도록 쾅. 하고 닫으셨다. ㅠㅠ
사람이 오열을 하면 구토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내 구토하는 소리조차 짜증이 난 아빠는 다시 방문을 열고 나와 또 화를 내시고 쾅! 하고 들어가셨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와 아빠는 단 한 번도 같은 방을 쓴 적이 없다.
늘 엄마방, 아빠방에서 따로 지내셨다.
어릴 때 너무 충격을 받았던 건 그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교과서엔 철수와 영희의 부모님들은 모두 안방이란 곳에서 같이 생활하는 그림이 나와있었기 때문이다.
' 아.. 원래 남자와 여자가 결혼이란 걸 하면 같은 방에서 자는 거였구나.. '
비록 우리 엄마아빠는 그렇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가족 아니냐고 확인받고 싶었지만..
어린 나이에 뭔가 교과서와는 다른 생활을 하는 우리 가족이 부끄럽고 놀림받을 것 같아서.. 선생님에게도, 짝꿍에게도 확인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ㅠㅠ
만약 새엄마네에 계속 살았으면 그 남자 조카들에게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르는 데다,
아마 새엄마가 아빠 몰래 하는 구박도 더 심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더 나아가 고아원에 우릴 버렸다면..?
고아원에 버리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하자..라고 괴로울 때마다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은 여전했다. 당연히..
세상에 내 편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은,
세상에 믿을 남자는 없는 것 같단 생각은.
남들 다 하는 연애조차 잘 해내지 못하는 연애 고자로 만들어버렸다.
밥 사준다는 선배들도 수시로 연락이 오고, 대학 동기들 중에 나를 짝사랑한다는 사람들도 있단 소문이 들리고, 당시 대학가 술 못임도 많았지만..
집에 통금 시간이 9시였는 데다,
술이나 술 취해하는 헛소리 듣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거의 참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아빠가 술에 취해 집에 와서 하는 잔소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였을까?)
다행히? 대차게 대시하는 남자 동기 덕분에 캠퍼스 커플을 한번 해봤는데 그 역시 별로.. 재미가 없더라.
만나면 밥 먹고, 친구들 만나 술 먹고,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딱히 특별한 느낌이 없달까?
아마 내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거였거나, 남자라는 동물 자체를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하게 된 경험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남자를 믿지 못하니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점점 곤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물과 함께하고, 동물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너무도 행복했다. 수년째 질리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날 두고 조그만~ 한 번만이라도!
다른 여자에게 눈이 가는 남자친구를 보면 그 순간.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정'도 싹. 불태워질 정도로 이미 마음에선 선을 확!!!!!! 그어버리고 어떻게 헤어질지 궁리를 했을 지경이니.. ㅜㅜ (이거 맞아..?)
(20대 남자에겐 당연한 행동이지만,
당시 남자의 바람에 대한 두드러기가 있던 나에겐 그런 그에게 욕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내가 보살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허허)
그래서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남자친구들과 헤어져서 뭐 슬퍼서 운다거나~ 우울해서 머리를 자른다거나~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했던 얘기 또 하는 등의 행동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다.
엄마가 아빠에게 상처받았듯,
나 역시 남자로 인해 미래에 받을 상처를 예방했다는 그 안도감..
정상이 아니었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인간은 외로울수록
그게 관계던, 물건이던, 술담배건, 게임이건 뭐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한다.
그때 나에게 다가온 것이 2가지 치명적인 것들이 있다.
이들 덕분에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낼 수 있었다.
둘은) **이다.
(이건 다음 편에서 다루겠습니다..^^)
그 둘 덕분에 나의 아픈 기억들을 조금씩 잊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그런 부모님과 나의 증세들을 이해하고, 치유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심리와 행동학을 공부하고, 이를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더 나아가 우리 시아버지가 갈 곳 없는 고아를 몇 번이나 집에 들였듯 (심지어 그 고아들이 집의 물건과 돈을 훔쳐가더라도 학교까지 보내주신..) 봉사활동을 하다가 만난 이 친구에게 나 역시 3개월간의 양엄마 노릇을 하게 된다.
자신의 친엄마(를 생모라고 부르고, 나와 남편을 엄마와 아빠라고 불렀다.) 에게 어릴 때부터 폭력과 학대를 당했고, 심지어 모아둔 돈도 다 뜯기고 자신을 60대 할아버지에게 팔아넘기려 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던 친구였다.
자신의 친엄마가 이사 가는 원룸마다 귀신처럼 알고 찾아와서 고통스럽다며..
제발 우리 집에 머물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이미 한번 이사한 곳을 생모가 찾아내어 다시 쫒기듯 급하게 두 번째 이사를 했다는 곳의 원룸 사진을 보내왔다.
내 마음을 결정적으로 흔든 건..
우리 부부는 시아버지도 함께 사는 집이라 정말 곤란했지만, 이 친구를 자꾸 보다 보니 어릴 때 죽도록 부모가 싫었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기에.. 일단 한 달 만이라도 살게 해 주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그리고 비겁하게도, 그래도 나는 내 부모님께 맞은 기억이 손에 꼽히지만..
이 친구는 김치와 밥만 줬다는 친엄마에게 매일 밥 먹을 때마다 숟가락으로 머리를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ㅠㅠ 너무도 마음도 아프고, 가슴 한편엔 실낱같은 위로도 받은 것 같다.
그래.. 그래도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잖아.. 괜찮은 거야.. 라며.. 구차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넸다.
친어머니의 잔인한 행동 덕분인지 이 친구는 몸도 무척 작았다.ㅜㅜ (이후 왜 그런 행동을 하셨는지 이해는 되었지만..)
나이는 서른이지만 몸은 아직 2차 성징이 오지 않는 중학생처럼 보였다.
동네 사람들 누가 봐도 중학생이냐고 물어보실 정도였다. 다만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머리가 많이 빠지고 팔자주름이 깊어서.. 자세히 보면 그걸로 그나마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자신의 주장에 의하면) 과거 어린 내가 받은 상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상처를 받고 살아왔다며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가여웠다.
어린 나이에 빚에 이리저리 팔려 다니느라
하루에 담배를 2갑씩 피웠다던 그.
술이 싫어도 억지로 먹어야 했다던 그.
그런데 이제야 진짜 엄마아빠를 만난 것 같다며 좋아하던 그.
제대로 된 일이나 사회생활이 힘들어 보이는 수준이라 최대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또 나보다 더 힘든 친구를 보며 부끄럽지만 ' 나는 그 정돈 아니었잖아.. '라고 괜찮다는 위로도 받으며..
앞뒤가 안 맞는 어휘력이나, 사회생활에 쓰이는 기본 영어나 맞춤법은 잘 몰랐지만, 서툴러도 우리처럼 봉사활동을 하며 살고 싶어 하는 그를 최대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배울 때마다 하루하루 바뀌어가고, 최소한의 예의범절과 사회를 배워가며 커가는 이 친구가 참 기특했다. ^^
우린 당연히 그의 부모님들과도 소통하며, 연락을 끊지 말라고 했지만 본인이 친엄마랑 살바엔 차라리 자살을 하겠다는 말이 가끔은 협박처럼 들리기도 했다.
우리 부부처럼 약자와 생명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이런 말이 참 치명적이다.. ㅠㅠ
혹시라도 지금 자녀를 키우는 분들이 계시다면
- 잘못했을 때는 분명히 교육을 하시되
- 사랑은 듬뿍, 정말 듬뿍 퍼부어주세요.
보잘것없는 글쟁이의 9살 내면 아이 치유 과정, 파랑새 일기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