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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드에서 하는 소리에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이유

 




남을 미워하는 것은

상대가 독약 먹고 죽기를 바라면서

정작 그 독약은 내가 먹는 것과 같다.




" 요즘 세상에 시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며느리가 어디 있겠어~ 호호 "


시부모님은 어디 가시면 자랑하기 바쁘셨다.


서울에서 책 내고 방송하며 대학강의까지 한다는 아들에, 이젠 시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며느리까지 더해졌으니 얼마나 기쁘셨을까?


게다가 남편 나이를 생각하면 아이를 가지고도 남아야 하는데, 건강한 손주를 원하실수록 볼살 탱탱한 젊은 며느리가 얼마나 예뻐 보이셨을까.


게다가 군소리 없이 다락방에서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시작한 것도 은근히 마음에 드셨나 보다.


시부모님은 그 기쁜 마음을 행동으로도 보여주셨다.

다락방 생활 몇 개월 만에 세를 놓으셨던 1층을 비워 우리가 있게 해 주셨으니..^^


그리고 내가 들어간 뒤로 집값도 오르고, 얼마뒤엔 가지고 계신 땅값까지 연달아 올랐다며 집에 귀인이 들어왔다고 난리가 났다.


남편도 내가 들어간 뒤로 서울 사무실 일까지 잘 마무리되었다며 날더러 복덩이니 어디 가지 말라며 팔을 붙잡곤 했다.


또 얼마뒤엔 교통사고가 자주 나는 곳으로 유명한 도로에서 시아버지 퇴근길에 사고가 났는데, 크게 다치셔야 할 상황에서 시아버지만 거의 멀쩡하게 살아남으신 일이 생겼다.


그때도 집에 귀인이 들어와서 그런 거라는 말이 돌았다.


시가에 큰고모님은 내 두 손을 꼭 붙잡으시며 어디 있다 이제야 나타난 거냐며 눈물을 글썽이실 정도였으니..


시어머니는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거의 매일 국만 3개를 끓여놓고 식당일 나가실 정도로 자식 사랑에 지극 정성을 보여주셨다.


이런 건 내가 원하던 일도, 상상했던 일도 아니었던지라 얼떨떨했다.


솔직히 때론 짜증 날 정도로 바른말만 하는 남편이 프러포즈했을 땐 날 더러 비 세는 반지하방에 살아도 괜찮냐고, 우린 벌어도 남 줘야 한다고 했을 땐 뭐 이런 프러포즈가 다 있나.. 싶었다.


그래서 진짜 우리끼리 외롭게 비 세는 반지하방에서만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가 어른들로부터 사랑도 받고, 멀쩡한 집도 생기니 기대했던 거에 비해서 참 좋고, 감사했다.




그런데 사람은 상황이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고 했던가.


몇 년 뒤 시어머니의 갑상선 절제가 희귀 암으로 이어지다 결국 돌아가시고, 시아버지가 전신마비 환자가 되시자 이번엔 집에 사람이 잘못 들어와서 이 사달이 났다고 난리가 났다.


물론 내가 듣는 앞에서는 이야기를 하진 않으셨지만, 몇몇 분들 중엔 그런 이야기나 생각을 한다는 걸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신마비 환자를 돌보는 것은 아마 20대 시절의 나였다면 절대로 못했을 것 같다..


그러다 또 상황이 바뀌니 듣는 말도 바뀌었다.


대학병원에서 시아버지에게 내린 평생 전신마비 환자라는 판정을 뒤집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때는 또 " 자네가 애쓴 덕분에 큰삼촌(=시아버지)이 건강해진 걸세~ 고맙네. "라는 소리를 집안 내 큰 어른이신 아주버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은 언제든 상황이 바뀌면

생각도, 행동도 얼마든지 바뀌는데.


그 순간의 모먼트에 깊이 빠져서

너무 기뻐할 필요도, 화내고 슬퍼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어차피 사람들은 자기 기분 좋으면

똥도 예뻐 보이고 (특히 어린 자녀나 반려동물의 건강한 똥을 보고 기뻐하는 것처럼)


자기 기분 나쁘면

맑은 하늘과 길가에 핀 예쁜 장미꽃에도 짜증을 내는 법이다.

 

또 칭찬을 듣고 행복해진다면

그건 누가 욕을 할 땐 불행해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라도

시댁에서 칭찬을 듣던 욕을 듣던 그저 무던하게,

그냥 지금 기분이 잠시 그래서 하시는 말씀일 뿐이구나~ 하고 넘겨버리는 현명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행히 나의 경우엔 남편 외엔 누가 이러쿵저러쿵 얘기한다고 휘둘리는 성격이 아니라 큰 타격은 없었지만, 우리 엄마의 경우엔 달랐다.


어릴 적 하와이에서 호텔 사업을 하는 고모가 한국에 오셨을 때, 집에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잃어버리신 적이 있다.


그때 출근한 아빠와 어린 동생을 제외한 엄마와 내가 크게 의심을 받았다.

혹시 유치원에 있던 내가 가져간 것이 아니냐며 강제 귀가를 시키기도 했지만, 다 큰 지금까지도 보석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는 나는 알 턱이 없는 일이었다.


그때 엄마가 반지 도둑으로 몰리며 크게 상처를 받으셨나 보다.

그 이야기를 무려 25년이 지나도록 한 번씩 꺼내시며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억울해하며 역정을 내셨으니..


정작 그 이야기를 한 당사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두 발 뻗고 잠만 잘 자는데,

왜 엄마 혼자서 오랫동안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하시는지 너무도 안타깝고 이해도 잘 되질 않았다.


엄마는 시댁에서 하는 사소한 이야기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울분을 토하며, 오랫동안 잊지 못하며 그 사람들을 미워하셨다.


바람을 핀 아빠와의 일도 수십 년이 지나도록 분통을 터트리셨는데.. (물론 이건 여자로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긴 하다.)


그래서일까? 엄마 나이 마흔전부터 당뇨에, 갑상선 기능 저하증에, 신부전, 치통 등으로 고생하셨으니..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그때 스쳐가는 한순간의 감정으로 내뱉고, 잊어버리는 말들이 대부분인데, 그걸로 오랜 시간 끙끙 앓고 미워해보야 손해 보는 건 우리 며느리들이란 말을 하고 싶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상대가 독약 먹고 죽기를 바라면서

정작 그 독약은 내가 먹는 것과도 같으니까.




시월드에서 좋은 소리를 듣는다고 좋아서 날뛴 필요는 없다.

경험해 보니 상황이 바뀌면 그런 말들은 언제든지 뒤집고도 남는다.


또 시월드에서 나쁜 소리를 듣는다고 우울해하거나 화낼 필요도 없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뀌는 인간의 욕심이나 감정 따라 하는 소리들은 힘들더라도 흘려 넘기는 연습을 계속 해야한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잘 산다.


물론 흘러 넘겨야지!라고 한다고 해도 잘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다.

보다 잘 넘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또 다루어보려 한다.



단, 시월드에서 하는 소리에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1) 시부모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며느리와 자식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말일 경우


2) 진리에 어긋남이 없는 말일 경우


이 2가지를 잘 구분해서 귀담아들을 얘기는 듣고, 흘려 넘길 얘기는 넘겨버리자.


남은 생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





가볍지만 꾸준한 감사,

가꾸사 함께 하실 분~(온라인)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지거나,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지는 것도 시댁 스트레스는 해소하고 나쁜 말은 쉽게 흘려버리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

봉사활동 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우리 ㅎㅎ


저희 부부와 함께 자연을 위한 환경정화 봉사,

사람을 위한  청소년 가장 돕기, 소아암 백혈병 환우 돕기 봉사, 독거노인분들을 위한 무료 급식 봉사 및 공연 봉사,

동물 친구들을 위한 유기동물 보호소 봉사 등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하단의 명함으로 문자 주시면 카톡방에 무료 초대 해드립니다~^^


우선 시댁에 있는 울산에서 소소하게 시작했고요, 봉사 단체 인원 다 합하면 한 100분 정도 계실 것 같은데요 음.. 조만간 서울에도 거처를 마련하고 전국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생각이라 타 지역에 계신 분들도 참여 원하시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각계각층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이 많으셔서 재능 기부 봉사도 하며 보람을 느끼시고,

또 단체분들끼리 서로 도움도 주고받고 하면서 남은 생을 보다 따뜻하게 보낸다고 좋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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