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의 상징, 쉐다곤파고다는 4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불교신자들을 보니 종교를 떠나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카메라는 한 없이 작고 작은 프레임뿐. 가만히 앉아 눈으로 담기로 했다. 고양이도 얌전해지는 이 곳.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쉐다곤파고다는 더욱 강력하게 빛났다.
그 빛에 우린 눈이 멀었던 걸까? 파고다를 나가려고 하니 나가는 출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파고다 감옥. 동서남북으로 출입구가 있는 이 곳을 들어올 때는 어디로 들어왔는지 기억을 해놔야 한다. 우린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파고다 한 바퀴, 파고다 두 바퀴... 나의 맨발은 보기 좋게 검무스름해지고 말았다. 그래도 사람은 지혜로운 존재다. 결국 출입구를 찾았다. 그다음으로 찾은 것이 내 양말과 신발.
급한 불을 끄니 이어서 해결해야 할 것들이 밀려든다.
"맞아! 오늘 양곤에서 바간으로 이동하는 날이지! 그것도 야간 버스잖아."
파고다에서의 깨달음은 밖으로 나오는 순간 먼지처럼 사라지고 눈 앞에는 현실이 거대하게 나타났다.
사람이란 참 단순해
그랩은 사치야.
"택시!"
퀘스트 1. 술레파고다에서 내린 나는 숙소로 전력 질주해서 가방을 찾고 다시 술레 파고다로 와야 함
퀘스트 2. 동행을 다시 만나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택시를 타야 함
퀘스트 3. 터미널까지는 1시간.
하지만 양곤의 교통체증을 생각하면 1시간 30분은 잡아야 한다. 버스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여. 그러므로 택시기사의 운전실력과 운이 따라줘야 함
나는 술레파고다에서 내려 숙소까지 5분 만에 돌파했다. 평소 15~20분이 걸리는 거리다. 습한 날씨 덕에 땀을 한 바가지 얻었다. 그리고 가방을 메고 다시 술레파고다까지 전력질주. 아니 전력경보(?)
그 와중에 배꼽시계는 정시를 가르쳤다. 바로 무시.
동행한테도 바로 연락이 왔다. 이어서 퀘스트 2 진행. 한 시간을 가야 하므로 가격이 꽤 나올 것이라는 건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었기에 근처에 있는 아무 택시기사를 잡았다.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목적지를 확인하고 곧장 택시에 탑승했다. 이제는 운에 맡겨야 한다. 남은 시간은 1시간. 구글맵은 목적지까지 45분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무사히 바간행 버스를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런 나의 희망을 깨는 택시기사의 한마디
"1시간 안에 절대 못가."
"무슨 소리야. 나 어떻게 해서든 가야 한단 말이야... "
"지금 차 막히는 거 봐봐. 이렇게 교통체증이 심하면 1시간 안에는 절대 못가. 너 티켓 있어? 나 보여줘 봐."
아니 절대 못 간다고 해놓고, 티켓은 왜 또 보여달래. 내 동행은 뒤에서 어플로 바간행 다음 버스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버스 좌석도 5석인가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이렇게 우유부단하다 둘 다 놓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양곤에서 1박을 더 해야 한다.
"내가 버스 회사에 전화해줄게. 기다려봐."
전화를 해준다고? 전화하면 늦어도 되는 거야? 분명 버스에 탄 사람들이 있을 텐데 우리 때문에 그 사람들이 모두 기다린다고? 이게 가능해? 이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했다. 나의 표정이 들켰는지 택시기사는 걱정하지 말라며 계속해서 나를 안심시켰다.
"됐어. 걱정하지 마. 그 버스 탈 수 있을 거야."
아니 뭐라고? 이게 이렇게 해결이 된다고?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택시기사는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바로 운전에 집중. 우선 믿어보기로 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차는 계속해서 막혔다. 택시기사는 지도가 안내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앞에 있는 차들을 추월했다.
그렇게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내 손은 땀으로 젖어갔다. 그리고 목적지인 버스정류장에 도착. 그것도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있는 회사 앞까지 출발 15분 전에 도착했다. 교통체증을 감안하고 이 시간에 도착했다는 것은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우리는 제주 빠(고마워)를 연신 외치고 짐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임무를 마쳤다는 듯 유유히 사라졌다. 잠깐 숨을 돌리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짐을 버스에 싣었다. 그렇게 무사히 바간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름도 못 물어봤다. 여유가 있었으면 이름도 물어보고 셀피도 같이 찍었을 텐데 정말 정신이 없었나 보다. 그의 대가 없는 친절.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버스시간에 맞게 도착하든 아니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치 자기 일인양 적극적으로 알아보며 도와주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럴 때마다 너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언젠가는 도움을 줄 상황이 생기니 그때 도움을 주면 된다. 이런 선순환이 반복되게 되면 세상은 더욱 밝아지게 될 것이다.
"그때 양곤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준 이름 모를
쏘 카인드 베스트 드라이버 형님,
제주 띤바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