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 "현존재(Dasein)"

나는 자연과의 관계를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by 룡하

3. 현존재


현존재 분석론에서 분석의 주제인 현존재는 ‘존재를 이해하는 자’로서 그 존재 방식이 ‘실존’이라는 형식적인 규정만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 따라서 현존재 분석론을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대체로 우리가 인간이라고 알고 있는 그것으로부터 현존재를 지레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으로는 현존재를 근대 철학의 주체 또는 의식 정도로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현존재’로 번역되는 ‘Dasein’이라는 낱말은 하이데거 이전의 철학에서 이미 사용되던 것으로서 어떤 것의 있음을 일컫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형이상학은 이 이름(Dasein)을 일반적으로 실재(existentia), 현실(Wirklich-keit), 실재성(Realität), 객체성(Objektivität) 등으로 지칭되는 그것에 대하여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현존재”라는 흔한 언어사용에서도 그 말이 형이상학적인 의미로 의례 말해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이름을 택했다.11)


그런데 하이데거는 ‘현존재’라는 이름을 우리 인간에게만 한정시키고는 있으나, 인간의 있음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일컫고 있다.


“현존재”로써, 이제 비로소 처음으로 존재의 진리의 자리로, 즉 존재의 진리의 마을로 경험되고 또 그에 상응하게 사유되어야 할 그것을 지칭한다.12)


게다가 하이데거는 ‘Existenz’라는 낱말을 현존재에게만 한정시키고 있으며, 그 존재 방식을 일컫고 있다.


『존재와 시간』에서 “실존”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낱말은 존재의 한 방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존재의 열려 있음에 대해 열린 채 서 있는 그러한 존재자의 존재를 의미한다.13)


Existenz도 하이데거 이전의 철학에서 이미 논의되던 것으로서 Dasein과 구별되지 않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형이상학의 언어에서 “실재(Existenz)”라는 낱말로 지칭되고 있는 것이 “현존재(Dasein)”가 의미하는 그것임을, 즉 신에서부터 모래알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임의의 실제의 현실(Wirklichkeit)임을 생각하면, 그래서 앞의 명제(“현존재의 ‘본성’은 그의 실존에 놓여 있다.”)를 글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이 경우 그 명제를 통해 사유되어야 할 것의 어려움이 “현존재”라는 낱말로부터 “실존(Existenz)”이라는 낱말로 떠밀릴 뿐이다.14)


이와 같은 사정 때문에 하이데거 철학을 이해하고자 할 때, 존재와 마찬가지로 현존재와 실존에 대해서도 우리는 주의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론적 태도로 하이데거 철학을 이해하는 것인데, 존재적 태도와 존재론적 태도를 구별하기 위해서도 또한 현존재를 먼저 파악해야만 한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현존재란 무엇/누구인가? 이 물음에서 우리는 현존재의 구실과 이 구실을 하게 되는 현존재의 정체를 묻고 있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현존재의 구실은 존재 자체를 문제거리로 삼기 위한 실마리이다. 현존재가 저 구실을 하도록 선택된 까닭은 존재를 이해하는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존재를 이해하는 존재자를 하이데거는 ‘현존재’라는 이름으로 일컫는다.


우리들 자신이 각기 그것이며 다른 것들 중 물음이라는 존재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그런 존재자를 우리는 현존재라는 용어로 파악하기로 하자.15)


하이데거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존재자로부터 파악되는 실재(existentia)가 아니라, 존재자를 존재자로 규정하며 그래서 존재자의 두 계기인 본질(essentia)과 실재의 공통된 근원인 존재이다. 이 존재는 원리상 그 자체로 탐구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로 하이데거가 탐구하려고 하는 존재가 아니라 실재를 존재자로부터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가 존재에 관해 탐구하는 일을 방해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사태에서도 여전히 존재는, 비록 가리워져 있기는 하지만, 원리상 근원의 구실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존재자에 대한 우리의 모든 태도 밑바탕에는 이미 존재에 관한 앎이 놓여 있거나 놓여 있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존재에 관한 앎을 하이데거는 ‘존재 이해(Seinsverständnis)’라 부른다.


그러나 “‘존재’가 무엇이냐?”라고 묻고 있을 때 이미 우리는 “ist(이다;있다)”에 대한 이해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 “ist”가 무엇을 뜻하는지 개념적으로 확정할 수 없으면서도 말이다. 우리는 거기에서부터 그 의미를 파악하고 확정해야 하는 그 지평마저도 모르고 있다. 이러한 평균적이고 모호한 존재 이해는 하나의 현사실(Faktum)이다.16)


존재 이해에서 우리는, 비록 깨닫고 있지는 못하지만, 존재를 그 자체로 대하고 있다. 이러한 현사실로부터 하이데거는 존재를 그 자체에서 탐구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 존재를 이해하는 과정을 분석하면, 존재 이해에서 이해되는 존재라 할 어떤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존재 이해는 원리적으로 파악된 현사실일 뿐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존재 이해를 아직은 직접적인 분석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런데 존재를 이해하는 우리 자신도 존재자인 한, 존재 이해는 우리 자신의 존재 방식이다. 존재 이해라는 존재양식을 가진 존재자를 하이데거는 현존재라 일컫는다. 존재를 이해하는 존재자인 현존재의 존재를 분석하는 가운데 이 존재자의 존재 방식인 존재 이해를 드러낼 수 있다면, 비로소 우리는 존재 이해를 직접적인 분석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정에서 하이데거는 존재 자체를 문제거리로 삼기 위한 실마리로 현존재를 선택한다. 말하자면, 하이데거 철학에서 현존재는 존재 자체에 이르기 위한 통로이다.


11) WM, S. 372-373.

12) WM, S. 373.

13) WM, S. 374.

14) WM, S. 373.

15) SuZ, S. 10.

16) SuZ, S. 7.


출처 : 손영삼. (2002). 하이데거 철학과 현존재. 동서철학연구, 25, 283-304.


특히 하이데거는 보편적인 인식을 추구하는 의식(사유)에서는 인간의 고유한 존재양식이 규정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인’ 시작에서 규정되지 않은 채 내버려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사유하는 사물(res cogitans]의 존재양식, 더 정확히 말해서 ‘나는 존재한다’의 존재의미이다.”11 용어 “나는 존재한다(sum)”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사물과는 달리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하는데,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의 고유한 존재방식은 의식이 아니라 현존재가 살고 있는 주위세계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속에서 경

험되는 인간의 고유한 존재방식과 이것에 관계하는 사물들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 그는 새로운 토대로서의 “현존재”, 더 자세히 말해 “초월적인 현존재”를 부각시킨다. 하이데거에 있어서 “초월적인 현존재”는 “초월적 의식이 배제된 초월론적 토대”를 의미한다. “초월적 의식”과는 달리 현존재의 “초월적” 사유는 “표상적인 의식” 또는 “인식”과 무관하며, 이러한 사실은 “존재의 이해”에서도 잘 드러난다.


11. 같은 책, 24쪽.


출처 : 하피터. (2009).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있어서 현존재의 의미. 철학논집, 18, 5-33.


2. 현존재의 해석학


하이데거는 현존재를 통상적으로 인간이라 부르는 존재자를 지칭한다. 하이데거가 인간이라는 일반적인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까지 “무엇”으로 규정되지 않았다는것을 함축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다만 여기(da)에 있음(Sein)이라는 추상적인 규정을 하고자 한다. 현존재라는 용어는 좁은 의미로 da를 현(現)으로, Sein을 존재로 옮긴 것이다. 지금 “여기에 나타나 있음”이라는 의미에서 Dasein의 본래 의미를 적합하게 함축하고 있다. 현존재란 인간 각자를 가리키는 술어이며 그러한 현존재는 존재이해를 갖고 있다. 이존재이해 때문에 존재가 현존재에로 열려지게 되며, 이것을 현존재의 개시성이라 부른다.12) 하이데거는 해석학이라는 명칭을 단지 딜타이처럼 역사적인 정신과학의 방법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재의 역사성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의미하였다. 해석학은 모든 존재론적인 탐구의 가능조건을 마무리 짓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그는 해석학을 현존재의 해석을 통해 존재의 본래적 의미를 밝혀내려 했다. 인간은 현(da)이다. 바로 여기서 존재자는 그 존재로서 비로소 시작된다. 이러한 현존재는 세계-내-존재이다. 세계란 존재자들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존재자를 만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하이데거는 해석학을 삶의 다의적인 개념인 실존으로서 현존재의 개념으로 대체시켰다.13)


10) 한스 인아이헨, 문성화 옮김, 철학적 해석학 , 문예출판사, 1998, 171-173쪽.

11) F. W. von Hermann, Hermeneutik und Reflextion. Der Begriff der Phänomenologie

bei Heidegger und Husserl, Frankfurt. a. M. 2000, 121쪽.

12) 소광희,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강의 , 문예출판사, 2003, 46쪽.

13) 오토 푀겔러역음, 박순영 옮김, 해석학의 철학 , 서광사, 1993, 29쪽.


출처 : 양해림. (2006).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해석학. 동서철학연구, 41, 391-412.



우리는 종종 환경 문제를

‘누군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자연과의 관계는 언제나

나의 선택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이데거, "현존재(Dasein)"


하이데거는 존재를 이해하는 존재자를 '현존재(Dasein)'라고 했습니다.

현존재는 세계-내-존재이자,

인간이라 부르는 존재자이며,

세계는 우리가 존재자를 만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자연 밖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생활 속 실천


오늘 하루, 하나의 선택을 의식적으로 바꿔보세요.

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어떻게 이동하는지,

무엇을 버리는지.

이 모든 것은 자연과의 관계를

결정짓는 구체적인 선택들입니다.



더 큰 자아로 살아가기


나의 존재는 ‘나’를 넘어,

이미 세상 전체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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