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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쿠빌라이칸"

부전승

by 룡하

전 글에 손자병법을 두불석념해야겠다고 적었다.


손자병법 모공(謀攻) 제3편에 보면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는 말이 있다. 백번 싸워서 비록 백번 다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좋지 않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싸우는 과정에서 상대방도 깨어지지만 나도 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내가 깨어지면 좋지 않다. 여기서 그 유명한 ‘부전승’(不戰勝)이란 말이 나왔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본래 부전승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정확하게 부전승이라고 연결된 말은 없고 단지 위 어귀 뒷부분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에서의 ‘부전’(不戰)과 앞 어귀 ‘백전백승’(百戰百勝)에서의 ‘승’(勝)을 조합해 신조어인 ‘부전승’(不戰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부전승은 오늘날 중국어 사전에는 ‘부전이승’(不戰而勝)이라고 명시돼 있다. 손자는 부전승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벌모(伐謀)를 말했다. 벌모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풀면 ‘적의 꾀를 베어버린다’는 것이다. 상대로 하여금 내 말에 절대 순종해 나를 거역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런 벌모가 가능할 것인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힘에 의한 벌모다. 힘은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상대에게 겁을 주는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권력(權力)이나 금력(金力)도 힘이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이런 힘 앞에 약해진다. 둘째는 이익에 의한 벌모다. 사람은 결국 ‘이익’을 좇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기 전에 진(秦)나라 왕이었을 때 “이 사람과 교유(交遊)하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법가 철학의 대부인 한비자다. 그는 사람을 움직이는 동인(動因)으로 이익, 권위와 이상, 즉 비전(vision)을 꼽았다. 여기서 한비자는 ‘이익’에 무게중심을 더 두었고 ‘이익’이야말로 사람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라고 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도, 심지어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결국 ‘이익’으로 엮인 관계라고 말할 정도다. 셋째는 ‘감동’에 의한 벌모다.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을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을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데 감동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출중한 인격에 의한 감동, 훌륭한 서비스에 의한 감동 등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그런데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속성으로 인해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출처 : 노병천, "[노병천 박사의 손자병법인문학] 싸우지 않고 이기라", 한국일보, 2022.08.01, https://chicagokoreatimes.com/118301/2022/08/01/%EC%98%A4%ED%94%BC%EB%8B%88%EC%96%B8/column/%EB%85%B8%EB%B3%91%EC%B2%9C-%EB%B0%95%EC%82%AC%EC%9D%98-%EC%86%90%EC%9E%90%EB%B3%91%EB%B2%95%EC%9D%B8%EB%AC%B8%ED%95%99-%EC%8B%B8%EC%9A%B0%EC%A7%80-%EC%95%8A%EA%B3%A0-%EC%9D%B4%EA%B8%B0%EB%9D%BC/


손자는 “전쟁이란 국가의 대사요 나라가 존속하고 멸망하는 갈림길이니 잘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고 허두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전쟁의 권모를 논하고 있다. “백 번 싸워서 백번 이기는 것은 전쟁을 잘하는 자 중에서도 잘하는 자가 못된다. 싸우지 않고도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전쟁을 잘하는 자 중에서도 가장 잘하는 자이다”(謀攻) 라는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의 전통적인 전쟁관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무(武)」라는 글자를 풀어 보면 「戈(창과)를 止(멎게한 다)」는 뜻의 글자들이 모여 된 이른바 會意문자이다. 군대나 무력이란 적을 공격하여 전쟁을 도발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불행으로 몰아넣는 전쟁을 방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吳子」에서도 “전쟁은 부득이할 때에만 해야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병가들이라 해서 모두가 호전가는 아닌 것이다.


2500년 前 손무(孫武)가 저술한『孫子兵法(손자병법)』은 총 13편 6109 字로 되어 있다. 不戰勝思想(부전승사상) 즉, 싸움을 하지 않고 이기는 지혜를 강조하고 있고, 전쟁은 국가와 국민의 생사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온 힘을 결집해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총력전 체제를 前提(전제)로 기술되어있다.


출처 : 양은식. "손자병법에 나타난 전쟁사상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경상대학교 행정대학원, 2006. 경상남도



손자병법에서는 부전승을 강조한다.



남송정복 이전 쿠빌라이 정부는 거대한 관료ㆍ군대조직을 유지하고, 서북제왕과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많은 재원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막대한 재부의 보고이자 동남아ㆍ인도양 해상무역의 중심도시가 위치한 강남은 그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정복대상으로 비쳐졌다. 이와 같이 남송정복의 주목적이 경제적 측면에 두어졌으므로 쿠빌라이 정부는 정벌 과정에서 살상과 파괴를 최소화하여 강남의 경제기능을 보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에 따라 몽골군 지휘부는 다음 세 가지 전략을 채택하여 남송정벌전을 수행했다.

첫 번째는 공격을 개시하기 전 남송군 지휘관에게 투항을 권유하고, 투항할 경우 그들을 우대하고 전투에 적극 활용하여 다른 장수의 투항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칭기스칸 시기부터 몽골군이 빈번하게 활용해 온 전략으로 손상 없이 점령지를 확대하는 효과가 있었다. 칭기스칸은 金, 西 夏, 호레즘을 정벌할 때 이 전략을 구사하여 많은 지역을 무혈점령했다.


출처 : 고명수. (2011). 쿠빌라이 시기 몽골의 南宋정복과 江南지배. 동양사학연구, 116, 213-245.


원나라는,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영토와 로마 제국을 뛰어넘는 거대한 제국이었다. 지금의 미국과 러시아를 합한 것보다 더 큰 국가였다. 이 제국의 시발점은 칭기즈 칸이었다. 하지만 국가의 틀과 지속 가능한 통치 시스템을 완성한 이는 칭기즈 칸의 손자인 원나라 제5대 황제 쿠빌라이이다. 그는 몽골족 특성인 정복과 지배의 통치, 즉 힘과 공포 대신 포용과 다스림의 리더십을 보여준 현군이었다. 360년간 지속된 원 왕조에서 유일한 전성시대이자 안정기는 그의 재위기간 34년뿐이었다.


쿠빌라이는 남송을 정복하면서 남송의 찬란한 문화, 경제, 정치제도, 학문 등 모든 것과 유학자와 유서 깊은 문화의 창조자인 인재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속내였다. 그래서 무자비한 공격만 했어도 쉽게 끝낼 수 있는 전쟁을 서서히 이끌었다. 이 전쟁은 이긴 자도, 진 자도 뚜렷하지 않은 일종의 통합 의례였다. 칭기즈 칸 이후 몽골제국은 거대한 영토를 점령했지만 이를 통치할 시스템이 없었다. 몽골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 정통 문화를 흡수해야 할 필요성을 잘 알고 있는 쿠빌라이는 이 시스템을 송나라에서 빌려오기로 마음먹었다. 한마디로 문화의 흡수 전쟁, 싸우지 않는 전쟁 그리고 최소한의 피해로 승리하는 전쟁,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전쟁 즉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전쟁을 한 것이다.


출처 : 박기종, "정복과 지배 대신 포용과 통합 ‘쿠빌라이 칸’…‘다름’을 ‘새로움’으로 받아들이는 ‘상생의 리더십’", 매일경제, 2016.03.03, https://www.mk.co.kr/news/culture/7247379


칭기즈칸 시기부터 사용된 부전승 전략을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이 남송정복 때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쿠빌라이칸이 국가의 틀과 지속 가능한 통치 시스템을 완성하여 제국을 안정시킨 비결은 부전승이다. 손자병법의 부전승 개념을 두불석념하여 미래에 사업을 할 때 적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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