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하는 모두에게
생명을 존중하고 풍요롭게 하는 에코페미니즘에서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본다. 살아 있는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서로 돕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 상호연결성 속에서 자연과 여성은 착취되어야 하는 죽어 있는 물질이나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율적인 존재가 된다. 에코페미니즘은 우리를 분리가 아니라 하나됨으로 정의한다.
출처 : 반다나 시바, "지구와 여성이 중심이 되는 ‘에코페미니즘 세계’로 가자", 2021.01.21,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9845.html
내가 에코페미니즘을 처음 접한 것은 노벨상을 받은 한강 작가님의 작품인 채식주의자를 에코페미니즘 관점으로 해석한 글을 본 것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에서 ‘여성’과 ‘식물’은 같은 주제의식을 나타내는 장치다. 한강 작품들을 ‘에코페미니즘’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가 여럿 있다. 에코페미니즘이란 에코(eco)와 페미니즘(feminism)을 합친 개념으로, 자연과 여성이 똑같은 억압구조에 놓여 있다고 본다. “(<채식주의자>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의 대항 방법이 다분히 식물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은 에코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볼 때 여성과 자연의 관계성에 기인한 바가 크다”, “한강의 소설은 남성 중심적 세계를 벗어나 꿈과 나무 되기라는 비현실적인 영역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설정하여 타자화된 여성과 자연을 해방하고자 하는 시도”(김미연, <채식주의자>에 나타난 에코페미니즘 연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논문, 2020.07)라는 해석 등이 그렇다.
출처 : 김향미, "여성, 식물, 역사…한강이 소설에서 말하려는 것", 경향신문, 2024.10.19, https://www.khan.co.kr/article/202410190900051
페미니즘 활동을 하며 변한 많은 것 중 하나가 동물권을 비롯한 생태환경에 대한 시선이다. 이전에도 반려견, 반려묘와 살았던 경험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동물권이나 환경 문제에 신경을 쓰며 살지는 않았다. 열악하고 잔인한 환경에서 키워지는 동물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약육강식 같은 것을 떠올리며 인간이 고기를 먹는 건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봄가을은 추억 속 단어가 되고 열대국가처럼 스콜이 쏟아지는 등 이상기후에 곤욕을 겪어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나라에도 망고나 자랐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패배주의로 냉소했다.
신기하게도 페미니스트 친구들 중에는 이런 나의 게으름과 패배주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친구들은 종 차별주의에 반대하며 동물의 사체를 ‘고기’라 부르는 것에 반대하고 채식을 실천했다. 더 많은 친구들이 공장식 사육의 잔혹함을 지적하며 그와 관련한 고기를 먹지 않았고 우유 대신 두유를 선택하기도 했다. 무차별하게 생산되고 버려지는 패스트 패션으로 오염되는 환경을 지키려 옷을 살 때 구제 제품을 먼저 알아보는 친구도 있었고 일회용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장바구니, 텀블러, 다회용 빨대나 수저를 들고 다니는 건 흔한 일이었다.
출처 : 이한, "에코도, 페미니즘도 어려운데 '에코 페미니즘'이요?", 한국일보, 2024.01.27,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2413270001072
전 글에 미래에 무릎이 아픈 것을 예방(양생)하기 위해 간헐적 채식에 도전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신념을 가지고 채식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친환경과 관련된 사업에 도전한 후 채식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자 한다.(나의 간헐적 채식을 도와줄 앱과 채식 쇼핑몰을 사업화할 생각이다)
채식하는 모두가 목표를 이루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