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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카이사르"

죽음

by 룡하

그러나 로마인들은 노예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자"라고 정의했다.


출처 : 연호탁, "노예반란과 카이사르의 등장", 대학지성 In&Out, 2021.04.04,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83


로마인들은 노예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자"라고 정의했다.



둘째 카이사르는 결국 생전에 공식적으로 신격화되어 최고의 신적인 명예들을 누리게 되었다. 물론 기원전 42년 원로원이 카이사르를 율리우스 신(Divus Iulius)으로 공포하고 있기 때문에, 카이사르의 생전 신격화는 현대학자들에 의해 계속 의심을 받고 있다.84) 그러나 기원전 42년의 조처는 새로운 의미의 선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원전 44년 3월 15일 이후 카이사르의 신격화에 반대했던 안토니우스에 대항하여 옥타비아누스가 자신의 지위를 합법화하고 고양시키는 수단이었다. 즉 카이사르의 입법이나 카이사르에 대한 조처들을 재확인하는 선언이었다. 문다 전투 이후 카이사르는 "모든 공화정적 규범을 넘어섰다는" 마이어의 언급은 짧지만 매우 시사적이다. 카이사르가 암살되기 직전 그의 초상이 새겨진 주화들이 대거 발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그의 신격화를 입증한다.85)


84) M.P. Charlesworth, 'Some observations on Ruler-cult especially in Rome', HTR 28(1935), 25; H. Gesche, Die Vergottung, 97.


85) 기원전 44년 이전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초상이 담긴 화폐들이 주조된 적은 없다. L. Kreitzer, 'Apotheosis'. 212.


출처 : 김경현. (2006). 율리우스 카이사르 생전의 신격화. 서양고대사연구, 19, 35-64.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는 동료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출처 : 김경현. (2012). 율리우스 카이사르(Iulius Caesar)의 리더십에 관한 역사적 고찰. 중앙사론, 35, 459-489.


카이사르는 생전에 공식적으로 신격화되어 최고의 신적인 명예들을 누렸지만,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는 동료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 했으니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자, 노예로 죽었다.


난 나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


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자, 노예가 아닌 배부른 소트라테스, 인문학을 즐기되 경제적 여유(풍요)를 가진 사람으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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